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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싱인더레인 Dec 21. 2021

Episode17.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할 때

병원을 가는 날과 가지 않는 날

난임 휴직을 하니 내 시간이 ‘병원을 가는 날’과 ‘가지 않는 날’로 양분되는 느낌이다. 휴직을 해서 시간이 많은 데도 막상 시술 시기가 되어 병원에 다니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내 시간이 내 것이 아닌 느낌이랄까. 그건 아마도 내 몸이 주기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매번 그 시점을 수시로 확인하고 나서야 언제 배란이 될지, 자궁 내벽의 두께가 적당해질지, 생리가 나올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를 많이 해서 병원을 자주 간 편이었다. 장염부터 시작해서, 축농증을 달고 살았고, 감기도 자주 걸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가 날 데리고 병원에 왔다 갔다 한다고 고생하셨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짠하다. 아무튼! 고로 나는 병원을 다니는 것에 굉장히 익숙한 사람이다. 병원에서 접수를 하고,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 약국에 가서 약을 타오는 일까지... 어떻게 하면 빨리 할 수 있을지 고민할 정도로 덤덤하게 병원을 다녀오는 편이다. 그런데 난임 병원 다니기는 그 덤덤함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사실 병원을 며칠 전부터 긴장을 하는 편이다. 이번에 가서 선생님께 뭘 여쭤봐야 하나를 메모해두기도 한다. 병원을 다니던 초반에는 한 시간 기다려서 진료를 받으러 들어가서는 궁금했던 것이 뭔지 생각이 나지 않아 버벅거리다가 나온 일이 몇 번 있었다. 그 이후로는 긴장감에 잊어버리지 않도록 메모를 떠오르는 대로 해둔다. ‘운동을 언제부턴 조심해야 하는지, 머리가 아픈데 타이레놀을 먹어도 되는지, 주사 시간을 놓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주 소소하지만, 걱정되는 것들을 여쭤보는 게 어찌나 긴장되는지.. 병원을 다니고 반년 정도 지나자 그 긴장감은 좀 사라졌다. 난임 병원 다니기는 내가 여태까지 병원 다닌 역사상 최고의 난이도인 것 같다.      


일반 병원은 가끔 가기 귀찮으면, 참거나 미루지만 난임 병원은 그것도 허용이 되지 않는다. 혹시나 조금 늦게 가서 주기를 놓쳐버리면 이번 달 시술은 허공으로 날아가기 때문이다. 주기에 맞춰 내 몸 상태에 따라 적당한 약을 투여해 줘야 하기에 시술 전에도 여러 번 병원에 가야 한다. 그렇기에 직장을 다니면서 난임 병원을 다니시는 분들은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언제 잡힐지 모르는 병원 스케줄과 직장에서의 바쁜 일정이 겹칠까 봐 늘 조마조마한 기분. 나는 평소엔 병원에 혼자 가지만 이식을 받을 땐 남편과 함께 간다. 그런데 한 달에 딱 한 번 있는 그 일정도 남편의 회사 스케줄이 어떨지 수시로 신경이 쓰이니 직장 다니며 시술받으시는 분들은 오죽할까.      


난임 병원은 예약을 하고 가도 꽤 길게 기다려야 하는 날이 종종 있다. 그만큼 난임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다. 내 앞 순서에 난자 채취 시술이 잡혀있으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 그 공간에 있는 환자 모두가 병원을 다니며 고생하는 걸 알기에 기꺼이 참고 기다리지만, 가끔은 긴 대기 시간에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나’라는 갑갑함이 몰려올 때도 있다. 얼른 임신이 돼서 이곳에 오는 걸 그만 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 주로 길게 대기할 걸 예상하고, 읽을 책을 챙겨서 가는 편이긴 하지만, 책 읽는 것도 지칠 땐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오늘도 너무 많이 기다려. 남편은 그런 나의 투정이 지겨울 법도 한데, ‘우리 와이프 고생이 많네. 오늘 끝나고 맛있는 거 사 먹어’하며 돈을 부쳐주기도 한다. 이 맛에 투정을 부리는 것도 있다.     


병원을 부지런히 다니는 주기가 지나면, 즉 시술이 딱 끝나면, 나에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직장에서 큰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술을 마시거나, 동료들끼리 맛있는 밥 한 끼를 함께 먹지만, 시술이 끝난 것은 아직 다 끝난 것이라 볼 수 없다. 일주일 뒤 피검이라는 또 하나의 단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임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조심 움직인다. 그래서! 병원을 다닐 때보다 아니 그보다 더 스케줄을 비워놔야 한다. ‘괜히 무리했다가 착상될 배아가 떨어지면 어떡해.’라는 걱정을 주머니에 넣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     


이렇게 난임 생활을 하다 보니 ‘병원을 다니는 날과 다니지 않는 날’로 양분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병원을 다니는 날은 어쩔 수 없이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다니지 않는 날은 좀 더 자유롭고 싶은데 막상 그게 잘 안 된다. 아이가 찾아오고 일반 산부인과를 다니는 날이 오면, 정기검진을 받는 날에 기쁜 마음으로 병원을 다닐 수 있겠지. 그날이 올 때까지 지금의 무거운 발걸음에서 힘을 좀 빼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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