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만 하면 다 끝날 줄 알았다. 2개월 동안 프로게스테론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다니면서 얼마나 그 시간이 끝나기를 고대했는지 모른다. 그 끝엔 행복만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나의 성격 탓인지 아니면 임신이라는 과정이 원래 그런 것인지 그 끝엔 또 다른 힘듦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임 병원에서는 9주차 진료를 끝으로 2주 뒤에 일반 산부인과로 전원하라며 그동안의 진료기록을 다 출력해서 주었다. 그다음 내가 할 일은 어느 산부인과, 어떤 선생님께로 갈지, 태아보험을 어떻게 들지를 정해야 했다. 갑자기 큰 결정을 두 개나 하려니 머리가 복잡했지만 남편과 의논해서 일주일 정도 남겨 두고 다 정했다. 난임 병원을 다닐 때는 일주일에 두세 번 병원을 갈 때도 있었기에 ‘2주 후’라는 시간은 내게 굉장히 먼 시간처럼 느껴졌다. 아기가 잘 있는지도 너무 걱정되어 배가 조금이라도 아프면(그게 화장실을 못 가서 생긴 통증이라 할 지라도) ‘아기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했다. 다행히 초기에 보였던 출혈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내 뱃속을 자체적으로 확인할 수가 없으니 갑갑한 마음이 들어 결국은 (전원할 병원은 종합병원이라 예약을 잡기도 힘들고, 거리상으로도 멀어서 차선의 해결책으로) 동네 산부인과에 가보기로 했다.
난임병원 진료 때는 늘 질식 초음파를 봤었는데 10주차가 넘어가니 번거롭게 옷을 갈아입을 필요 없이 편하게 누워서 초음파를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아기는 주수에 맞게 잘 자라고 있었고, 심장박동 소리도 좀 더 우렁찬 느낌이었다. 이렇게 확인하고 나니 당분간 또 안심하고 지낼 수 있겠다 여겼다. 물론 그 다음주에 전원병원에서의 진료가 잡혀있어 믿는 구석이 있어 더 그랬다.
진료를 보고 나서 안정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니 문득 내가 이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내내 임신기간을 보내면 안 되겠다는 각성이 들었다. 나의 불안감이 전해져 아기한테도 좋지 않고, 무엇보다 난임 기간 동안 마음 편하게 있지 못했던 내가 그 이후로도 힘든 마음으로 지낸다는 것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나름 이 기간을 잘 보낼 몇 가지 당근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임신 기간 동안 내 몸을 제대로 대접해주기로 했다. 비싸더라도 유기농 제품을 사 먹고, 최대한 몸이 편할 수 있는 쪽이면 돈을 들여서 물품을 구입하고,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면 한동안 하지 못할 취미생활도 실컷 해보기로 했다. 음악 감상, 그림 그리기, 여행, 혼자 카페에 가서 카페라테를 사 마시는 소소한 일들까지... 육아로 힘들 때 임신 기간 중 즐겼던 일들을 떠올리며 위안 삼을 수 있도록 잘 놀아보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