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끝이 없다.
세상을 이제 조금 알겠다 싶다가도,
뒤돌아서면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이제 조금 배웠다 싶다가도,
조금만 더 앞으로 가면 또 고개를 갸웃거린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나는 나쁘게 말하면 예민한 사람, 좋게 말하면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가시 같은 말에는 칼로 찌른 듯 소스라치게 아파하고,
어느 날은 가슴에 총이라도 맞은 듯 뻥 뚫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단 몇 시간만 따뜻하게 해 줄 핫팩 같은 말은 하루종일 기분 좋아 행복해하고,
어느 날은 구름 위로 둥둥 띄어놓은 것처럼 즐거운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그렇게 쉬이 웃고 쉬이 눈물을 흘리지만,
올라간 입꼬리와 눈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가벼웠던 순간은 없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이라면 누군가에게 위로나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쓴 <넘어지면 어때,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되지>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겪은 고통과 고난들을 공개하면서 넘어져도 괜찮다 말해주고 싶었다.
나와 너의 고통은 같을 수 없겠지만, 우리가 겪은 일은 다르겠지만 넘어짐을 겪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 나 같은 사람을 통해서 위로받으라고.
그렇게 심리학 공부도 시작했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이해해 준다면 세상을 조금 더 따듯하게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었다.
내가 상대방의 사연을 겪어봐야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고
나는 이해하는 게 아닌 단지 '척'에 불과했음을.
나를 통해 위로받을 단 한 사람을 위해 시작한 공부가 그의 고통을 더 증대시킬까 염려된다.
내가 모든 고통을 다 겪어볼 수 없기에, 공감하는 '척'이 상실감을 더 돋울까 걱정된다.
내가 하는 공부가 진정 내담자를 위한 것이 맞을까, 나의 욕심은 아닐까.
슬픔을 더 공부해야겠다.
더 많이 아파보아야겠다.
당신의 슬픔에 작은 한마디라도 첨언할 수 있는 존재가 되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