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정원사의 시간>전시에 관하여
미술관에서 정원일을 이야기하다. 흰 벽으로 둘러싸인 미술관 안으로 식물을 들여온다. 현대인들이 자신의 일상 공간에 식물을 들이는 것처럼 사람의 공간으로 여겨지는 곳에서 식물과 함께하는 삶을 이야기해본다. 크고 작은 정원을 직접 만들고, 찾아다니며, 식물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왜 일까? 가속화된 현대문명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왜 그것에 역행하는 듯한 속도와 행위를 동반하는 식물과의 일, 정원을 꿈꾸는가?
식물은 고유한 공간과 시간을 달고 다닌다. 하나의 화분을 집안에 들이는 것은 구분된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정원을 만드는 것, 정원에 걸어 들어가는 것은 일상 그대로에는 없던 또 다른 세계를 만나고 이를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 이 전시는 정원과 정원일을 통해 알게 되고 가질 수 있게 되는 시간과 공간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 답해보고자 하였다.
식물은 흙과 함께 공간을 점유한다. 그리고 동시에 공간을 비운다. 물질로 이뤄진 그것은 분명 공간을 채우고 있지만, 고요한 호흡으로 서있는 식물의 정적인 공간은 때로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는 틈으로써 다가오기도 한다. 흔들리는 가지는 바람의 존재를 알리고 마르고 무른 그 잎은 공기와 온도의 촉감을 전한다. 식물을 낳고 키우고 묻는 흙의 공간 안에서 우리는 유한함을 통해 무한함을 본다. 담장이 처진 ‘닫힌 공간’이라는 뜻의 정원(庭園/Garden)을 만들고자 하는 것도 그것이 자연의 무한함을 경험하게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 뙈기의 작은 땅에서 흙을 돌보고 식물을 가꾸는 행위를 통해서 사람들은 유한한 인간을 둘러싼 시공간을 넘어 그 끝과 시작을 알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보고 느끼며 제한된 일상의 폭을 넓히고 그 안에서 자유함을 느낀다. 이 점에서 정원과 미술관은 닮아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닫힌 공간, 그러나 유한한 물질재료를 다듬고 가꾸어낸 인간의 행위를 통해 무한한 관념과 실제에 관한 이야기를 생산하고 경험하게 하는 곳. 그것이 다만 자연의 체취를 지닌 식물과의 관계인가 아니면 사람의 손과 생각이 덧입혀진 인공의 무엇인가의 차이일 것이다.
이 전시는 공간이자 시간으로서의 정원에 대해 개념적으로 접근해보고자 하였다. 식물과의 일이 일어나는 곳,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살아있는 식물과 대면하는 일 또는 그것을 가꾸어가며 시간의 흐름을 경험하는 일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 산이나 숲을 찾아 들어가는 것과 정원을 만드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이 전시는 특히 정원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간성에 주목하였다. 작은 땅이라도 그 공간에서 흙을 일구고 식물을 가꾸며 돌보는 행위는 어느 순간 멈추어버린 듯 반복되기만 할 뿐인 현대인들의 일상에 잃어버린 시간을 회복시킨다. 직선적으로 빠르게 소모되는 것만 같은 시간이 정원에서는 느리고 영원한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봄에서 시작하는 문명의 시간질서와 달리 가을을 출발점으로 보는 정원사의 사계절은 순식간에 과거로 밀려나는 현재를 붙드는 현대의 시간성과 달리, 눈에 드러나지 않는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보다 단단하고 근원적인 흐름 위에 일상을 위치시킨다.
담장이 처진 닫힌 공간 속 식물과의 일을 벌이는 정원에서 왜 시간은 느려지고 풍부해지는가?
정원이라는 공간의 골격을 추상화한 전시장에서 식물의 자리에 들어간 작품들을 통해 이같은 물음에 답해보았다.
강운의 구름 그림은 인간이 만든 유한한 공간에 자연의 무한함을 담는 정원과 캔버스의 유사함으로 구체적인 공간과 시간이되 자연의 섭리로 이를 뛰어넘는 정원과 예술의 자유함을 이야기한다. 임택의 프레임 안 대나무 정원은 복잡한 인간사의 거울처럼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그 시작과 끝이 없는 정원의 서사적인 시간을 보여준다. 빈 그릇에 노지의 흙을 담아 잡초일지 꽃일지 모를 싹을 틔우는 김원정은 긴 호흡의 기다림, 그 예측불가능함, 사회적으로 정의되지 않는 것이기에 분석되지 않는 식물의 느린 시간성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이에 반해 정원에서 일어나는 돌봄의 행위에 주목하는 김이박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땅 속의 일과 그 경계를 이야기하는 최성임의 작품들은 유무형으로 쌓여가며 이어지고 움직이는 관계의 언어로 정원의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예술의 언어를 통해 작품들은 생명의 원리로 질서화된 정원이 주는 시간성이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깨닫고 어떤 힘을 얻게 하는지 되묻는다. 식물과 함께 하는 공간과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 크고 작은, 어떤 형태의 정원이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식물의 일과 사람의 일은 비밀스러울 정도로 언어화하기 어렵다. 그 안에 들어가는 경험을 통해서만 설명할 수 있다. 이 전시는 그 신비스러운 경험에 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