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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써니 Mar 01. 2024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우연히 살인을 했습니다.”

[서평: 이방인]_죽음을 앞둬야 느끼는 '삶'.

이방인
저자: 알베르 카뮈 / 출판: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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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한 번쯤 들어본 작품이라면 제대로 공부해 보자!"

알베르 카뮈, 이방인, 페스트 모두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하다는 듯이 들어본 이야기 들이었다.  '어차피 한 번쯤 들어본 작품이라면 서양 문학 전공자로써 한 번 또 공부해 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번에도 책을 펼쳐들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페스트'를 먼저 읽었는데 3번을 읽어도 와닿지 않고 뭔가 정리가 안되는 느낌을 받았던지라 한 번 그의 작품 단계 중 첫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이방인'을 읽어보자는 데에서 이번 독서는 출발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작품 세계에 대한 완벽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

알베르 카뮈는 1942년 이방인, 1947년 페스트까지 연이어 성공시킨 유명한 작가이다.

1947년 프랑스 비평가상은 물론이요, 1957년 44살의 젊은 나이에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천재적인 작가라고 누군가는 칭할 것이다. 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작품 세계에 대한 완벽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

카뮈는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위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가 그린 작품의 청사진은 무엇이었을까?

부정 -> 긍정 -> 사랑이라는 발전 단계가 그것이다.

그리고 오늘 다룰 작품인 '이방인'은 이러한 세 단계 중에서 '부정'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앞으로 카뮈의 모든 작품을 다룰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페스트까지는 열심히 분석해서 서평을 남겨보고자 한다.


줄거리


여기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남자가 있습니다.

아니, 총을 쐈다고 인정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혐의가 아니라 사실이 되어버린 남자, 뫼르소가 있습니다.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방아쇠를 당긴 건 우연이었습니다."

치정, 원한, 돈 때문도 아니고 그저 밝게 빛나던 햇살과 우연이라고 성의 없는 항변을 하는 그.

게다가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살인을 저지르기 전날 발생한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다음날 여자친구와 해수욕을 즐기고 사랑까지 나누며 데이트를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의 행적은 어딘가 이상하게 보이죠.

그 결과 검사와 배심원은 그를 사회 부적응자로 생각하고 그가 계획적 살인을 저질렀다고 믿으며 살인을 저지른 그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살인자 뫼르소, 그의 1인칭 시점


객관적 사실만 본다면 사실 그의 사형은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살인자로 낙인이 찍혀 사형을 선고받은 뫼로소의 시점에서 상황을 본다 할지라도 과연 우리에게 이 상황이 똑같이 보일까?


 '나는 그저 묻는 말에 대답을 했을 뿐인데..'


Q.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유는?


A: 어머니와의 사이가 오랫동안 소홀했기 때문에 당장 눈물이 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사람마다 슬픔을 느끼고 애도하는 방식이나 속도는 다르잖아요? 어머니가 없는 집을 넓다고 느끼고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며 저도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고요.


*그가 대답을 할 수 없었던 이유*


그는 굉장히 무심한 성격에 말 주변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그의 연인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묻자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고는 중요한 게 아니야"라고 답을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과 결혼할 생각이 있는지 여자친구가 묻자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할게. 하지만 내가 그걸 원하고 원하지 않고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이 밖에도 살인자이자 사회 부적응자로서 낙인이 찍힌 그에게는 제대로 된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았고 어떻게 해도 그에게는 불리하게 재판이 흘러갔습니다.

그 결과, 그는 사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이방인'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뫼르소처럼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낯선 이방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슬픔을 크게 느끼지 않을 때에도 슬픔을 표현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순간에도 상대방의 기대에 맞추어 참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는 사회로부터 외면받거나 죽음에 몰리지 않기 위해. 즉 이방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매사에 무심하고 영혼이 없어 보이며 불확실하게 행동하던 그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생깁니다.

바로 앞서 말한 것 처럼 '죽음'이 그의 삶에 들어온 것입니다.


불확실한 삶 속에 들어온 확실한 죽음


늘 불확실하고 자신의 마음조차 무엇인지 몰랐던 그의 삶에 비로소 확실한 '죽음'이 들어오자 그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강렬하게 느끼기 시작합니다.


하루는 사형수인 뫼르소를 위한 기도를 하러 온 신부를 만나자

"죽으면 다 끝이야!!!"라고 소리칩니다.


물론 그가 제대로 된 재판을 받지 못한 것 또한 크지만 어찌 보면 죽음이야말로 피할 수 없는 삶의 부조리이기 때문에 뫼르소가 이렇게 외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종교에 의탁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라는 진리에 정면으로 돌파구를 내던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작가인 카뮈가 생각한 삶과 죽음의 큰 테마가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가능해집니다.


인간은 모두 사형수이다.


생명체는 모두 죽음이라는 대 전제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모두 각자의 집행 일이 다른 사형수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모호한 것들만이 있었던 여러분의 삶에 확실한 죽음이 다가온다면 여러분은 어떤 기분인지 궁금합니다.

죽음을 외면하고 관습대로 살아갈 것인가요?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기다릴 것인가요?

아니면 뫼르소처럼 죽음을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을 하던 과정에서 궁극적인 작가의 메시지를 이렇게 추측해 보았습니다.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삶의 부조리, 즉 죽음을 의식하고 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생각하는 현실주의자' 알베르 카뮈의 삶과 죽음의 경계


그는 죽음이라는 삶의 부조리를 안은 채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 인지 치열하고 고민하고 그것을 글로 써 내려가며 치열하게 싸웠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생각하는 현실주의자'라고도 불린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묻겠다.

죽음이 정해져있을 때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답은 그의 작품 속에~


이방인을 읽고 나서야 나는 페스트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질문에 대한 알베르 카뮈의 답은 '페스트'에 있었기 때문이다.

곧 페스트에 대한 서평도 올릴 예정이니 그전까지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태도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고전이 여태까지 살아남은 데에는 이유가 있지!

✍나의 한 줄 평✍


어문 계열, 인문학 관련 학과가 많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는 인터넷 기사들이 쏟아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인문학이 없는 세상은 나에게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깔끔하게 정리된 정보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요즘 시대에도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인문학도로써 크게 2가지 이유로 정의하자면 이렇다.


1.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나지 않은 배경을 연결 지어서 생각해 보게 해주기 때문.

: 당장 뫼르소처럼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뫼르소의 입장에 자신을 대입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거나 죽음을 안고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고 채워나갈지 고민해 보게 되었을 것이다. AI가 지정해 준, 유튜버들이 이미 지정해 준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생생하게 생각해 보는 능력! 이것이 인문학의 힘이라고 믿는다.


2. 언어적 유희와 표현의 확장

: 최근 고전 작품들을 다시 읽는 연습과 더불어 경제 매거진을 읽고 스크랩하는 습관을 기르면서 어휘가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것만 보면서 내가 관심 있는 용어, 관심 있는 표현, 내 수준에 맞는 표현만 접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언어들을 즐기고 누릴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이것을 잊고 살게 만들었던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했다.

고전이라 하면 정말 오래된 작품들이 많다.

짧게는 몇십 년, 길게는 몇백 년 된 작품들도 많을 거고 그런 작품들은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전달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 가지 추리 가능한 것은 오래오래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고전들은 내가 언급한 인문학의 장점과 필요성은 물론이요,

그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사고의 확장을 우리에게 선물해 줄 보물과도 같다는 것이다.

고전이라고 고리타분할 것이라고 생각 말고 다들 한 번쯤 도전해 보면 좋겠다.

그 시간은 정말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2024년 2월 29일 올해의 세 번째 독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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