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병 진급
삼철.
안녕. 오늘 퇴근 무렵에 눈이 내렸어.
눈 맞으면서 퇴근하는 것두 괜찮더라. 나도 모르게 참 좋단 생각을 했어. 거기두 눈 많이 왔어? 아무래도 거긴 여기보다 더 춥고 더 산속이라 많이 왔겠지? 하지만 예전처럼 좋지만은 않을 거 같애. 군대에서 낭만을 찾아보긴 힘들 테니깐.
내가 얘기했었지. 나 불면증인 거 같다구. 어제두 너한테 편지 쓰는 도중에 정말 졸려서 얼른 다 쓰고 누웠는데 또 잠이 안 오는 거 있지. 자야 하는데 또 졸립고 피곤한데 잠 안 오니깐 미치겠더라. 30분도 더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어. 그래서인지 낮엔 잠이 쏟아져서 주체할 수 없어.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도 사람 나름이지 나는 안되거든. 할 일은 많구 피곤하기는 하구 쉴 시간은 없구 참 슬프다. 요즘은 잠 좀 맘껏 푹 자봤으면 해. 언젠가 일요일 날 11시 다 되어서 네가 전화해서는 그랬었지. 벌써 일어났냐구. 근데 집에서 쉬는 날도 늦게까지 자게되질 않아. 아마 습관이 되어서 그런가. 늦어도 8시면 눈이 떠지거든. 물론 틈틈이 낮잠두 자고 일어났다 또 자기도 하지만은.
큰 일이야. 나는 잠이 많아서. 이래서 아주 아주 나중에 시집가서 어떻게 살까.
난 결혼한다면 굉장한 애처가를 만나야지 될 거 같아. 그래야 좀 편하지 않을까? 집안 일도 다 해주고 또 거기다가 나도 무척 아껴주는 생각만 해도 기분 좋다. 불면증 얘기하다가 얘기가 어째 이쪽으로 흘렀을까. 바보.
너두 나처럼 밤에 잠 못 이루는 일은 없겠지?
그래 그러면 안 되지. 잠도 많이 못 자잖아. 너는.
항상 피곤하지? 시간이 남아도 내무반에 안 있잖아.
화장실에 가 있거나 청소한다 그랬지. 요즘도 그래?
네 밑으로 쫄따구도 들어왔다며, 좀 편해지지 않았니?
쉽게 좋아질 리 없다는 걸 알면서두 괜히 자꾸 질문만
하게 된다. 이해해. 다 너 걱정돼서 하는 얘기니깐.
날씨가 추워. 감기 조심하고. 밥두 많이 먹구.
또... 은경이 생각두 하구. 솔직히 안 하지? 괜찮어.
다 알구 있어.
1998. 12. 10.
P. S. 진급했어? 일병으로?
진급했어. 일병으로...
추신에 대한 내 답변이다.
한 많고 탈 많았던 나의 쫄따구 이병 생활도 끝이 난 것이다. 작대기가 하나 늘었다고 해서 군바리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건 아니지만 나아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난 풀린 기수였다.
531기였던 나는 자대 배치 후 한 달 남짓 지났을 무렵 후임병이 생겼다. 이후 쉴 새 없이 쫄따구들이 들어왔다. 한 기수 5명이 후임으로 오기도 했다.
반면에 꼬인 기수도 있다.
506기 고참으로 기억하는데 그는 동기가 없었다. 게다가 후임이 518기였다. 일 년에 11 기수가 입대를 하니 이 고참은 1년 이상 막내 쫄따구였던 것이다. 병장을 달고도 식판 설거지를 하고 청소, 빨래 등등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30개월 중 훈련소에 있었던 기간을 제외하면 약 28개월 그중 13~4개월을 그것도 홀로 쫄따구 생활을 한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너무도 행복한 기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밑으로 천명이 들어와 봐라. 군대가 행복한가...
그것도 부족했는지 506기는 한 가지 불행을 더 겪어야 했다. 그가 입대해 자대에 와보니 동네 이웃인 동생이 4~5 기수 선임이었던 것이다. 동생은 공사의 구분이 과도하게 명확하여 기수 꼬인 동네 형을 몹시도 괴롭혔다고 한다.
군대에는 이런 말이 있다.
군생활이 특별히 힘들고 괴로웠던 사람은 자신의 후임을 매우 극단적으로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당했던 것 이상으로 되갚아 주거나, 반대로 그 고통을 알기에 절대로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거나...
이 506기 고참은 진정 후자였다.
소위 말하는 밥이나 계급에 따라 지켜야 하는 많은 불문율들을 없앴고, 기수 차이가 큰 후임들을 항상 인간적으로 대해 주었다. 나와의 간격도 컸지만 업무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잘 가르쳐주고 이끌어 주었던 고마운 군대 선배였다.
비단 군대에만 적용되는 단상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은 큰 상처가 있다면 대개 먼저 그것을 스스로 인내한다. 성공한 감내는 철저하게 상흔을 감추고 어떠한 형태로도 상처로 재발하지 않도록 처절히 노력하게 만든다. 반면, 실패한 은닉은 흉터마저도 스스로 난도질해 상처로 회귀케 하여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혈흔을 남기는 것은 아닐까...
같이 군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그의 전역 후에도 난 오래오래 기수 꼬인 고참을 생각했다. 덕분에 내 쫄따구 이등병의 상처를 인내하는 데 성공했다. 나쁘지 않은 선임이었다 생각한다.
아버지로 인한 내 상흔도 철저하게 감내해 흉터가 되었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한 노력은 오늘도 계속될 것이다.
네 애처가의 요건에서 집안일을 다 해주는 것을 제외한다는 전제 하에
은경, 넌 만났다. 애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