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 앞의 계절 Mar 01. 2021

차가운 시골의 남자



  차가운 도시 남자는 많다. 그러면 차가운 시골 남자는? 나는 물론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가 있고 시골도 있다. 그리고 남자는 많다. 단지 우리는 편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도시 남자는 차가울 것이고 시골 남자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차가운 시골 남자를 소개한다. 바로 우리 아버지다. 우리 동네는 면 소제지다. 시골이다. 는 헐렁한 옷에 몸을 넣고 다녔다. 접힌 소매는 콧물로 찌든 채. 과장법으로 말하면 핸드폰 대리점 앞에서 춤추고 있는 풍선처럼 창피한 줄 몰랐다. 다들 번지르 한데 나만 후줄근하다면 용서가 안 된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복장이라면 용서가 안될 것도 없다. 그 시절에서 가장 빛나던 것을 찾는다면 단연코 옷소매다. 그보다 더 반짝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덕지덕지 빛나던 코딱지들의 경연을 지금은 볼 수 없다. 후줄근한 나에겐 기갈나게 멋진 아버지가 있었다. 얼굴도 시골사람 답지 않게 하얗다. 너무 하애서 어떤 땐 병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버진 양복점 사장이다. 세탁소 사장님답게 복장은 항상 단정했다. 바지 주름은 아스팔트처럼 반듯했다. 동네에서 바지 주름을 세우고 다니는 사람은 우리 아버지뿐이었다. 동네 아저씨들은 대부분 주름 없는 바지 차림이었다. 미남은 아니지만 나름 멋쟁이 었다. 그런 아버지를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는 가게 앞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아버지를 보더니 명함을 내밀었다. 자기는 모 방송국에서 나온 사람인데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분명히 친구분들과 같이 있었다. 그런데 유독 아버지가 지목된 이유는 무얼까? 답은 간단하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얼굴이 희고 시골사람처럼 생기지 않았다. 어찌 보면 '시골의 도시남자?' 같다. 지금으로 말하면 '차가운 도시의 남자'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차림이었다. 얼굴은 희고 바지 주름은 빳빳하고 시골스럽지 않은 모습에 반한 것이다. 반대의 이미지에 끌린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사람은 방송국 PD였다. 구체적인 상황을 듣기도 전에 아버지는 싫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말을 잘할 자신도 없다고 거부했다. 더군다나 티브이에 나온 다는 말을 듣고 잔뜩 겁먹은 상태였다. 아버지는 여러 차례 거부했다. 그런데 PD는 포기하지 않고 아버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제가 아버님 할 말을 종이에 적어서 줄 테니 그걸 그냥 읽기만 하면 돼요' '그래, 할 말을 다 적어서 준다잖아, 그냥 한번 해봐' 옆에 있는 친구들도 거들었다. 못 이기는 척 아버지는 수락했다. 옆에 있던 친구분들도 함께 집 앞에 있는 다방으로 올라갔다. 그때 그 다방 이름은 '수정 다방'이었다. 구경삼아 동네 사람들 몇 명이 따라 올라갔다. 나도 몰래 쫓아갔다. 생전 처음 보는 카메라 기세에 눌러 우린 멀리 떨어져 숨죽이고 있었다. 다락방에서 소리 내지 못하고 있는 생쥐 같았다. 그 날의 콘셉트는 이러했다. 시골 다방의 역할 같은 거였다. 도시 사람들만 다방에 가는 건 아니다. 시골 사람들도 다방에 간다. 농번기가 끝난 사람들이 다방에 앉아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한다. 대충 그런 거였다. 아버지는 친구분들과 자리에 앉았다. 쌍화차가 나왔다. 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노른자가 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시절엔 쌍화차에 노른자를 동동 띄운 것이 유행이었다. PD는 아버지에게 답이 적힌 종이를 건넸다. 아버지는 그걸 외우지 못해 탁자 아래에 가지고 있었다. 커닝 페이퍼처럼 손에 쥐고 달달 떨고 있었다. 드디어 카메라가 돌았다. PD가 질문을 하면 아버지가 대답을 하는 형식이었다. '다방에 자주 오시나요?' ',,,,,,' 아버지는 말도 못 하고 얼굴만 울그락 불그락 하고 있었다. '컷' PD가 소리쳤다. 그리곤 아버지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냥 친구들과 얘기하듯이 편하게 하시면 돼요' PD가 편하게를 아무리 강조해도 아버지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굳은 얼굴은 쉽사리 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생전 처음 보는 카메라였다. 울렁증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 울렁증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다른 질문도 몇 개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컷이라는 단어만 수차례 들었던 것만 기억난다. 컷을 여러 번 당한 끝에 인터뷰가 끝났다. 열 번도 넘게 한 것 같다. 아버지는 책을 읽듯 커닝 페이퍼를 읽었다. PD는 그런대로 괜찮다며 '오케이'싸인을 냈다. 아버지는 다방을 내려오며 말했다. '세상에 말 몇 마디 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첨 알았네' 아버지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현재의 내가 해도 아버지처럼 떨었을 것이다. 그때 아버지를 생각하면 정말 멋졌다. 얼마 후에 아버지 모습을 티브이로 봤다. 늘 보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내가 아는 우리 아버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멋진 남자였다. 이런 걸 보고 차가운 도시의 남자라고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자연 스레 보였다. 그 당시에는 책 읽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티브이로 보니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편집 기술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아버지가 말을 자연스럽게 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느끼지 못했을 뿐.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주변에도 다방이 있다. 물론 카페가 훨씬 더 많다. 방송국과의 인연은 나도 있다. 개그맨 김학래와 임미숙이 하던 주부 퀴즈 프로그램이 있었다. 네 명이 나와서 퀴즈를 맞추는 거였다. 난 그때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인 상태였다. 7개월 조금 지날 때였다. 예심을 보고 합격을 해야 티브이에 나갈 수 있다. 책을 사서 열심히 공부했다. 예심을 보러 갔을 때 하염없이 길었던 줄이 생각난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예심을 통과했다. 녹화 날짜가 나왔다. 난 그때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휴가를 내고 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생방송은 아니라는 거였다. 의상 색깔도 말해준다. 뒤에 벽이 무슨 색이니 그 색을 피해 달라는 정도다. 난 임신복을 입고 갔다. 앞에선 카메라가 돌고 있었다. 문제를 말하는데 내 머릿속은 점점 하얘지고 있었다. 남들은 재빨리 버튼 누르고 대답하는데 난 그러지 못했다.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카메라 울렁증이 나한테도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혹시 울렁증도 유전인가' 보통 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것들은 가족력이 있다. 아버지가 당뇨면 아들도 당뇨가 있다. 그렇다면 울렁증도 병인가? 그런 의구심이 든다. 그럴지도 모른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아버지와 나, 이렇게 닮아 간다. 카메라 울렁증으로 닮아 가고 있었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배우려 하지 않아도 시나브로 닮아가고 있다. 이제 차가운 시골 남자는 없다. 진짜 차가운 남자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배에 똥이 찼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