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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Mar 23. 2021

빛을 감는 알갱이들

  


  알맹이란 말보다 알갱이란 말이 좋다. 정이 간다. 알갱이들은 따로지만 뭉쳐있다. 모래, 쌀, 커피, 콘프레이크, 견과류 들이 그렇다. 뭉친다는 것은 여럿을 한 곳으로 모이게 만든다. 한 곳을 바라본다. 눈길 머무는 곳이 같다. 약간의 설렘이나 긴장이 동반된다. 그곳은 성이 되거나 밥이 되거나 간식이 된다. 뭉쳐있지만 따로 있다. 혼자 떨어져 있다.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 한 곳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가끔 쉬어가도 된다. 성이 완성되지 않아도 좋고 밥과 간식이 안 되어도 좋다. 성을 쌓으려고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설레는 마음이 없다. 설레는 언덕을 올라가려면 누군가와 함께 가야 한다. 누군가가 싫다면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다만 같은 곳을 바라볼 때 느낄 수 있는 동질감은 없다. 오로지 자기만의 나로 갈 수 있다. 저곳을 같이 보자고 강요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본연의 자신으로 존재하면 그뿐이다.


  점심시간, 식사 후 동료들과 차를 마신다. 차 마시는 취향이 서로 다르다. 녹차에서부터 커피까지 다양하다. 나는 커피를 마신다. 아니, 나는 시를 마신다. 알갱이 커피를 잔에 톡톡톡 덜어낸다. 그런 다음 뜨겁게 끓인 물을 붓는다. 알갱이가 든 컵에 펄펄 끓어오르는 물을 붓는다. 뜨거운 온도에 몸을 부르르 떨며 빙그르르 돈다. 그러다 온 몸이 녹아든다. 자기의 온몸을 내어주는 알갱이들, 바라보면 한편으론 멋지다. 온몸을 다해 나에게 오고 있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는 김수영 시인의 말처럼 커피 알갱이들이 온몸을 다해 나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시는 바로 알갱이 커피다. '시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라고 특정되어 있는 것은 없다. 스님들이 말하듯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듯 어떤 것이든 시가 될 수 있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나는 물에 스며든 김수영을 마신다.                                                         


  한 낮, 햇살이 좋다. 햇빛 알갱이들이 퍼진다. 알갱이들은 틈을 파고든다. 모든 것들은 틈이 있다. 꽉 짜 맞춰진 벽돌 담벼락 사이에도 조그만 틈이 있다. 돌 틈 사이로 스며든다. 너와 나의 틈 사이로 끼어든다. 그네와 그네 사이에서 그네를 탄다. 시소에 앉아 시소를 타기도 한다. 아이들 웃음소리에 넘어지기도 한다.  미끄럼틀을 타기도 하고 정글짐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회양목 잎사귀로 파고들기도 한다. 쥐똥나무 가지에도 내려앉는다. 라일락 커다란 잎사귀에도 스며든다. 윙윙 대는 벌들의 조그만 날개 위에도 햇살이 스친다. 정오의 알갱이들은 잘 익은 맛이다. 아침의 태양 알갱이들은 약간 떫은맛이다. 저녁의 알갱이들은 살짝 탄 맛이 날 때도 있다. 커피도 볶는 정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 알갱이들도 온도에 따라 맛이 다르다. 난 정오의 알갱이들이 좋다. 마음의 온도도 정오의 알갱이처럼 따뜻했으면 좋겠다.


  태양은 내가 자는 동안에 밤을 감고 또 감을 것이다. 하늘이 자는 동안에 별은 밤을 감고 또 감을 것이다. 구름이 자는 동안에 빗줄기를 감고 있을지도 몰라. 비 오고 난 뒤 하늘 높이 뜬 무지개도 일곱 색깔을 감고 있을지도 몰라. 감아 놓은 밤을 조금씩 풀어 빛을 지상으로 보내 줄 것이다. 지상의 빛줄기는 사물에게로 나에게로 보내질 것이다. 감아 놓은 별을 조금씩 풀어 밤하늘이 별이 저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것인지도 몰라. 무지개가 감아놓은 빛들은 어느 곳으로 파고들까? 어쩌면 가장 예쁜 빛깔의 알갱이 들일지도 몰라. 이리로 와르르르 저리로 와르르르 빛의 알갱이들이 몰려다닐지도 몰라. 그런 알갱이들이 꽃을 피우는 것인지도 몰라. 꽃송이를 조용히 들여다보면 혹시 태양이나 하늘의 잠꼬대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 구름이나 무지개가 뀌는 방귀 소리가 들릴지도 몰라. 그러다 어느 순간 빗줄기라도 흠뻑 내리는 날이면 그동안 감아놓은 빛들이 모두 사라질 수도 있어. 그렇다고 슬퍼하긴 일러.  그런 날은 그런 날의 감성을 살리면 돼.  물방울 영롱한 알갱이들의 축제도 볼 만할 거야, 어떤 알갱이들이건 나름대로 자기만의 독특함이 서려 있거든.  방울의 물방울에서 무지개도 뜰 거야. 난 봤거든. 한 아이가 비눗방울을 후후 부는 거야. 그 물방울 속에 깃든 싱그러운 온갖 빛들이 세상을 공중을 떠도는 걸 봤어.


  김수영을 마시고 산책을 나간다. 혼자서 조용히 걷는다. 담벼락, 개나리가 활짝 폈다. 계절이 샛노랗다. 그 옆에 진달래도 피었다. 핑크 핑크 하다. 나무들은 초록을 준비 중이다. 발아된 것들은 이내 빛깔이 된다. 빛깔은 나무가 되거나 꽃이 되거나 담벼락이 되기도 한다. 초록이 되거나 분홍이 되거나 고동이 된다. 그 빛깔들은 바람이 빚어낸 것일까? 아니면 햇살이 빚어낸 것일까? 구름이 빚어낸 것일까? 어떤 것이든 중요치 않다. 지금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는 게 중요하다. 지붕 위에도 전봇대에도 지나가는 아기에게도 빛은 골고루 퍼진다. 빛은 골목을 따라 까르르르 웃음으로 번진다. 웃음은 집을 나설 때마다 따라나선다. 웃음의 모습은 서로 다르지만 빛의 모습은 같다. 우린 누군가의 빛을 받아 자라고 있다. 지금 이만큼 자라고 있는 나는 누구의 빛을 받고 살고 있는 것일까? 어떤 색으로 자라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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