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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Mar 05. 2021

겨울은 조금씩 바스러지고

 



  겨울은 점으로 시작된다. 점은 선이 되고 선은 그림이 된다. 겨울 풍경이 된다. 글씨가 된다. 계절이 되고, 겨울이 된다. 겨울은 점점 가라앉는다. 계절이 앉아 있는 동안 나도 가라앉는다. 둥글게 몸만 말지 않았을 뿐, 모든 것이 안으로 쪼그라든다. 계절을 다 끝낸 나뭇잎처럼, 바닥에 떨어져 바람에 뒹굴며, 둥글게 스스로를 껴안고 있다. 머지않아 그 낙엽은 나무의 거름이 된다. 그 거름을 밑바탕으로 나무는 다시 봄을 맞는다. 봄을 맞은 나무는 다시 새싹을 틔운다. 생은 그렇게 반복된다. 생은 환이다.  


  고요하다. 얼마나 지나야 이 고요가 소란이 될 수 있을까? 생각만 하다가 시간을 보낸다. 무방비 상태로 자판만 두드린다. 그렇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단지 시간을 자판으로 보내고 있다. '빨리 나를 다른 곳으로 안내해, ' 매일 다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지치면 자판 바로 앞에 펼친 글자를 파고든다. '뭐, 특별한 게 있나?' 페이지는 난감하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 '특별한 거라니, 하나도 특별할 건 없어, 특별한 걸 기대하는 거야?' 반문한다. 나는 왜 특별한 것을 페이지에서 찾고 있는 걸까. 우스운 일이다. 특별한 걸 찾으려면 내가 먼저 특별해야 된다. 그러나 난 특별하지 않다. 특별하지도 않으면서 특별한 것을 찾으려는 생각부터 잘못됐다.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자, 그럼 다시 단추를 모두 다 풀어헤친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시작은 언제나 좋다. 색색의 머플러다. 어떤 것을 두를지 고르기만 하면 된다. 단색에서부터 혼합색까지 선택하면 된다. 요즘은 단색의 머플러는 흔치 않다. 예전의 손으로 짜던 머플러들도 한 가지 색을 고집하지 않았다. 중간에 포인트 색을 가미하곤 했다. 현실이 그렇다. 한 가지 색으로 굴러가진 않는다. 김밥과 같다. 여러 가지 재료가 혼합해서 맛을 낸다. 편한 것을 추구하면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안에서 무너진다. 안이 무너지면 밖으로 나갈 일이다.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리저리 쏘다니며 생각을 정리해 본다. 시끄러운 마음이 정리된다. 벤치에 앉아 떠나는 계절을 그냥 바라만 봐도 가슴이 시리다. 


  나에게 눈길조차 건네지 않는 네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옆에 바람이 와서 앉는다. 소리도 없이 소문도 없이 허락도 없이 그냥 앉는다. 눈에 보이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보폭이 좁다. 언제 걸어왔는지 언제 걸어서 저만치 갔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어 더 아련하다. 그런 것들은 화를 내지 못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들에겐 슬픔이 없을 거야? 단정 짓는다. 애절한 게 없는 게야, 쉽게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뒷모습을 본 적 없다. 뒷모습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선 논하면 안 된다. 보이지 않는 뒷모습도 모습은 모습 이리라. 네 마음을 추스리기 어렵다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거다. 


  마음을 울렁이게 만드는 것들을 무언가를 두드린다. 누구의 마음이든, 누구네 집 창가든 조용히 다가와 살짝 흔들어 놓고 간다. 미미한 그리움을 던져 놓고 간다. 한 움큼의 소란을 투척한다. 찬 공기가 한바탕 마음을 훑는다. 창문을 비추는 그 햇빛에 귀를 기울여도 좋을 시간이다. 가끔 그 빛으로 소식이 전해진다. 뜬구름 잡는 것처럼 빛은 간절하다. 빛에도 뿌리가 있다. 그 뿌리가 우리를 숨 쉬게 한다.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뿌리는 서서히 싹을 틔울 것이다. 땅 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도구가 된다. 땅이라는 문을 열고 바깥이라는 세상으로 홀연히 뚫고 나올 것이다. 흙처럼 붉은 마음이 툭툭 털고 일어선다. 아주 작은 돌멩이가 섞여 있다. 너에게로 다가갈 마음이 생긴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다가간다. 구미가 당긴다. 누군가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활짝 핀 햇살이 말괄량이처럼 뛰어다닌다. 두근두근 마음이 설렌다. 


  샐러드 같은 동네다. 모양은 다양하고 양은 흘러넘친다. 작은 그릇, 큰 그릇에 가득 채워놓은 느낌이다. 그 안에 담기지 않는 것들이 있다. 동네 너머에 세 넘실거리는 머리카락을 본다. 헝클어진 누군가의 마음을 닮았다. 상처를 받은 게 분명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지만 그건 아니다. 내가 나에게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모르는 나의 다른 표정일 수 있다. 공기가 싸늘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 있기 마련이다. 익숙해진 공기가 아니라는 걸 느꼈기 때문일 게다. 기타 소리가 도착한다. 손님 없는 카페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선율이 건너오는 동안은 행복하다. 슬픔을 밀어내고 있다. 욱여넣은 것들이 밀여 나온다. 음악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환호성 소리가 들린다. 속에서 부르짖는 내면의 소리다. 그것은 함성이다. 진지하다. 시간은 금방 간다. 이야기도 거의 끝나간다. 두렵고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는 아니다. 가볍고 외롭고 쓸쓸한 이야기다.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인 이야기다. 


  선물처럼 그대의 탁자 위에 놓인 한 권의 책처럼 그냥 누워 있는 이야기다. 너는 그냥 편한 자세로, 하던 일 그대로 하면서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이야기다. 다만 하늘이 빗방울을 지상으로 떨구듯이, 함박눈을 소리 없이 펑펑 퍼붓듯이 하는 일이다. 아니지 그건 너무 과장됐다. 두런두런 별들이 속삭이는 저녁을 당신 베란다에 갖다 놓듯이 조용히 할 일이다. 비틀어진 하루도 흔들리는 나뭇가지도 그저 온몸으로 계절을 음미하듯 그리 할 일이다. 신발과 신발이 만나는 현관을 벗어나 어딘가로 떠날 일이다. 요란한 비 때문이 아니라, 함박눈 때문이 아니라, 아득한 파란 하늘을 바라보러 갈 일이다. 아쉬운 것은 집에 두고 나갈 일이다. 술렁이는 마음을 데리고 나간다. 가지고 있던 연필 하나를 데리고 간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연필이 부러지면 깎으면 될 일이다. 가끔 페이지에 낙서를 해도 좋고 굵게 선을 그어도 좋다. 


  천천히 한 문장씩 읽어도 좋다. 집중을 안 해도 좋다. 느리게 읽어도 좋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불안 같은 거, 연필 흑심에게나 줄 일이다. 연필은 흑심을 품고 있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있다가 심심할 때 한 번씩 그를 불러내 같이 놀자. 그는 지우개를 모자로 쓰고 이곳저곳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모자를 뺏어 네가 써놓은 글귀들을 싹싹 지워라. 모자가 없으면 그냥 네 손으로 어떻게 해본 던 지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난 내일을 하면 그뿐. 남의 이야기를 훔치려 하지 마라. 


  혹시 약이라도 한 알 먹어볼까? 분홍색 알약은 어떨까? 파란색 코팅 약은 어떨까? 고민 고민하지 마라. 어떤 알약이든 먹어보라. 좋은 생각이다. 비닐장갑 낀 생각들을 벗겨내는 일은 좋다. 연고를 발라보는 것도 좋다. 그래도 연락이 안 되면 전화를 걸어본다. 연락이 올 것이다. 미리 도착한 겨울이 너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우리 언제 만날까? 내가 지금까지 무슨 말을 한 거지? 나도 모른다. 내가 말을 끌고 다닌 게 아니다. 말이 나를 끌고 다닌다. 순식간에 말이 벌어진다. 그 틈새에 낀 게 다. 무수히 많은 점들로 이루어진 말이다. 나는 그 점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점들이 모여 말이 될 것을 믿는다. 너에게로 가는 말, 너에게 가 닿는 말이다. 오늘 이 글은  내가 쓴 글이 아니다. 글이 나를 끌고 다니며 쓴 글이다. 내가 글에 휘말려 들어간 자국이다. 깊이 파인, 아니 살짝 스크래치 난 상처다. 아물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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