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시간은 낮다. 키를 낮춰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화단에 핀 꽃들. 백일홍, 페튜니아, 삼색제비꽃은 허리를 숙여야 볼 수 있다. 유치원에 가면 제비꽃 같은 아이들이 있다. 노란색, 보라색, 하얀색 옷을 입고 꽃처럼 환한 얼굴로 피어있다. 2월 말에 면접을 봤다.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과 같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설렌다. 초등학교 입학하는 신입생 같다. 그런 기분으로 학교에 간다. 신호등마다 안내 도우미 분들이 있다.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여러 번 해 본 경험이 있다. 오래전 이야기다.
유치원은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있다. 빠른 걸음으로 20분 정도다.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다. 초등학교 입구와 유치원 입구는 다르다. 초등학교 후문쯤에 유치원 입구가 따로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놀이터가 있다. 시이소를 지나 그네를 지나면 현관문이다. 복도 앞에서 발열 체크를 한다. 키 작은 아이들은 엄마나 할머니 손을 잡고 유치원에 온다. 바로 선생님들 손으로 바통이 이어진다. 나의 업무는 이슬반, 7세 반 어린이들 손은 잡고 반으로 안전하게 모셔다 주는 일이다. 서윤이는 7살이다. '선생님 손 잡고 같이 가요' 하며 손을 잡았다. '서윤이 손은 따뜻한데 선생님 손이 차서 어쩌지?' 했더니 한마디 한다. '선생님, 그럼 손을 태양에게 줘 보세요.' 한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알았어 태양에게 손을 줘 볼게' '그럼 태양이 선생님 손을 따뜻하게 해 줄 거예요' 한다. 태양에게 손 내주는 방법을 알고 있는 서윤이 키를 맞춰 걷는다.
준수는 7살이다. '여기까지 누구랑 손잡고 왔어요?' '할머니 손잡고 왔어요.' '할머니가 있어서 좋아요.' 한다. 민찬이는 내가 미안했던 아이다.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민찬이요'라고 대답한 소리를 내가 계속 못 알아 들었다. 서너 번 대답했는데도 불구하고 못 알아들으니 민찬이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미안한 나는 결국 가방을 슬쩍 훔쳐본다. 가방에 쓰여 있는 이름을 보고서야 민찬이라는 걸 알았다. 힘든 발음도 아니었는데 계속 못 알아듣고 딴 이름을 댄 내가 민망했다. 교실로 가는 길바닥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1에서 9까지 숫자도 쓰여있다. 아이들은 그림 안으로 발을 들여놓고 발을 콩콩 구르며 걷는다. '오늘 아침 뭐 먹고 왔어요?' '체스에 우유 먹고 왔어요' '빨대로 체스를 들었어요' 민우가 말한다. 체스를 이겨서 기쁘다는 표정이다. 이제 아이들은 이슬반으로 이슬처럼 사라졌다. 이슬이 걷힐 시간이다.
난 이제 누리반 친구들을 맞으러 간다. 누리반은 특수반이다. 4명인데 오늘은 한 친구가 결석이란다. 특수반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과 달리 유치원 차로 온다. 아이들 올 시간이 되면 현관으로 나가 아이들 손을 잡거나 안고 들어온다. 민우, 다운, 수현 이렇게 3명이 왔다. 난 다운이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간다. 다운이는 조용하다. 신발을 벗고 겉옷을 옷걸이에 걸고 교실로 들어간다. 한쪽 구석에 앉는다. 자동차를 꺼내 자동차끼리 연결한다. 기차를 만든다. 한참 그렇게 갖고 놀다가 가끔은 먼산 바라보듯 친구들을 바라본다. 친구들 탐색 중이다. 나도 탐색 중이다. 친구들이 무얼 가지고 노는지 구경한다. 아주 조용조용하다. 가끔 한 마디씩 말한다. 그 말을 나는 잘 못 알아듣는다. 그 말을 못 알아듣는 나를 원망한다. 난 다운 이만도 못하다. 다운이 말을 못 알아듣는다. 쉬운 말인데 왜 나는 못 알아듣는 걸까 원망하며 다운 이를 쳐다본다.
민우는 컵을 가지고 논다. 컵 쌓기 놀이를 한다. 높이 쌓아 놓고 발로 차 부순다. 그러고는 하하하 신나게 웃는다. '컵이 아야 해요' 하면 호 해준다. 그렇게 쌓았다가 부수고 다시 쌓았다가 부수는 놀이에 집중한다. 지치지도 않고 컵을 가지고 아주 잘 논다. 컵 가지고 놀 때 텐션이 아주 높다. 너무 신나게 깔깔깔 웃는다. 난 속으로 생각한다. ' 난 저렇게 호탕하게 신나게 웃어본 적이 언제였나?' 반성한다. 저렇게 순수하게 박장대소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렇게 신나는 일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삶이 나에겐 없었다는 말이 된다. 난 어쩌면 민우보다 못한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저렇게 신나 하는 건 정말 첨 본다.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일이 나에겐 없었던 것 같다. 텐션이 높았다가 어느 순간 뚝 떨어진다. 잘 놀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를 지른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수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내게로 오더니 손을 잡는다. 붙임성이 좋다. 자기하고 놀아달라는 거다. 한참을 손잡고 놀더니 바로 또 다른 놀이를 찾아 떠난다. 다른 쪽에서 놀던 수현이가 갑자기 내 손을 잡는다. 그러더니 선생님들 방을 열어달란다. 거기에 뭐가 있다고 열어달라는데 무슨 소린지 난 알아듣지 못한다. 순간 난 단순하게 생각했다. 내가 문을 열어주면 수현이가 찾겠지 싶어 문을 열어줬다. 그런데 수현이가 찾는 것은 거기에 없었다. 거긴 단순하게 선생님들 개인 방이었다. 그냥 그 방이 궁금해서 열어달라는 거였다. 아마 호기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른 선생님이 오셔서 수현이 손을 잡고 다른 곳으로 시야를 돌렸다. '열어 달란다고 다 열어주면 안 됩니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해주세요'그 선생님이 한 마디 하신다. 난 그때 깨달았다. 무조건 아이들 말을 들어주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들 심리를 파악하려면 아직 멀었구나 싶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각자 자기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지고 식탁에 앉는다. 오늘 반찬은 두부된장국, 오이무침, 고기 장조림, 김치다. 다운이는 밥과 고기만 먹는다. 수현이는 두부도 먹는다. 민우는 반쯤 먹다가 안 먹는다고 입을 닫는다. 입을 닫는 것으로 안 되겠는지 소리를 친다.' 안 먹어, 안 먹어''그만 먹어, 그만 먹어' 결국 숟가락을 놓는다. 억지로 먹일 순 없다. 아이들의 식사가 끝난다. 아이들 먹는 모습을 보니 내 모습 같다. 나도 어릴 적에 먹고 싶은 반찬만 먹었다. 입에 맞지 않는 것들은 아예 입에도 대지 않았다. 누리반 아이들도 먹고 싶은 반찬만 먹는다. 억지로 먹일 수가 없다. 싫은 것은 싫다고 확실하게 표현한다. '오이 먹을까요?' '싫어, 안 먹어요' 한다. 아이들은 순수하다. 좋고 싫고 명확하다. 어른들처럼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는다. 싫어도 좋은 척 좋아도 싫은 척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놀이터로 나간다. 아직 찬바람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다. 그러나 햇살이 좋다. 아이들은 미끄럼을 타고 시이소를 탄다. 이슬반, 풀잎반 아이들도 놀이터로 나온다. 아이들에게 시선은 고정된다. 놀이터를 빙빙 도는 아이들, 바닥에 구멍을 찾아 손을 넣는 아이들, 뛰어다니며 술래잡기하는 아이들. 그 틈에서 누리반 아이들 찾는 시선은 바쁘다. 오늘 처음 만난 친구들인데 낯설지 않다. 이슬반 서윤이가 와서 아는 척을 한다. '야, 아침에 만난 선생님이다' 너무 반갑게 아는 척해준다. 눈썰미가 좋다. 나보다 좋다. 아침부터 놀이터에 나가자고 계속 '놀이터' 놀이터' 외치던 다운이는 열심히 미끄럼틀을 탄다. 민우는 놀이터 바닥에서 구멍을 잘 찾아낸다. 아이들이 많아지자 누리반 아이들 찾기가 어려워진다. 누리반 친구들과 이슬반, 풀잎반 친구들 모두는 잘 어울리며 논다.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편견이 없다. 나는 그 아이들이 어울려 보는 것을 보며 반성했다. 저렇게 어울리며 잘 노는 아이들을 어른들의 잣대로 자꾸만 갈라놓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섞여 노는데 누가 누군지 구별이 어려워진다. 누리반 선생님이 친구들 이름을 부른다. 다운이는 곧바로 모이고 수현이는 미끄럼틀 한 번만 더 타고 간다며 미끄럼틀로 올라간다. 민우는 들어가기 싫다며 떼를 쓴다. 그러다 세 친구는 선생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간다. 민우는 복도 의자에 앉는다. 교실로 들어가기 싫단다. 한참을 앉아 떼쓴다. 선생님이 열심히 달래 보지만 효과는 없어 보인다. 한참을 그냥 두고 본다. 선생님도 민우도 어려워 보인다. 그렇게 앉아 있다가 조금씩 잦아든다.
우리 아이들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유치원 다닐 때였다. 거리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른다. 나중에 사준다고 했더니 곧바로 길거리에 드러눕는다. 떼가 시작된 것이다. 이럴 땐 정말 난감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난감하다. 그런 경우 대부분 내가 먼저 손을 들고 항복했던 것 같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때문에 창피해서 빨리 결정을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길거리에 드러누우면 분명히 엄마에게 회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어떻게 했길래 애가 저럴까?' 그런 눈초리를 그냥 무시하긴 어렵다. 그리고 곤혹스럽다. 곤혹스러운 눈길을 빨리 피하는 방법을 난 택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눈길이 무서워서 그런 결론을 냈다. 그런 경우 잘못하면 아이의 버릇이 나빠진다. 무조건 떼쓰면 된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될 수도 있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시선을 맞추며 보냈다. 비록 어른의 시선이지만 낮은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해봤다. 제대로 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적응해 보았다. 낮은 시간은 낮은 시간대로 흥미롭다. 보람 있다. 키 큰 어른으로서 보냈던 시간보다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된 것 같다. 어린이는 될 수 없지만 어린이의 기분으로 돌아가 본 날이다. 어린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과 어른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다르다. 순수하거나 순수하지 않다. 이슬 같거나 이슬 같지 않다. 풀잎 같거나 풀잎 같지 않다. 이것이 어린이와 어른의 다른 점이다. 나는 오늘 나와는 또 다른 세계로 발돋움했다. 난 키 작은 어른이 됐다. 낮은 시간의 아이들에게로 가는 길은 내가 낮아지는 수밖에 없다. 허리를 숙이고 나이를 숙이고 마음을 숙이고 나는 낮은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