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용하는 말인데요. 한번 따라서 해보세요. '알콩' 혓바닥이 입천장을 막았다가. 입이 동그랗게 모아 지네요. 입 안에서 동그라미들이 데구루루 굴러가는 것 같아요. 아니 콩이 굴러 가는 것 같아요. 그 동그라미나 콩, 혹시나 알 일지로 몰라요. 알은 씨가 될 수도 있어요. 만약 알이 씨라면 화분에 심어야겠어요. 베란다에 빈 화분이 있거든요. 그 알들이 콩콩콩 온 집안을 굴러다니기 전에 얼른 심어야겠어요. 화분에 심었어요. 흙도 잘 덮어 주었어요. 물도 듬뿍 주었어요. 그리고 햇살이 비치는 곳에 놓았어요. 알은 커다란 나무가 될지도 몰라요. 아니면 예쁜 꽃이 필지도 몰라요. 무엇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이번엔 '달콩'하고 소리를 내보세요. 달이 동구루루 굴러가는 것 같아요. 그 달. 혹시 하늘에 떠 있는 달인지도 몰라요. 그 달이라면 달도 씨가 될 수 있어요. 만약 달이 씨라면 화분에 심어야겠어요. 베란다에 빈 화분이 또 있거든요. 그 달들이 콩콩콩 온 집안을 굴러다니기 전에 얼른 심어야겠어요. 화분에 심었어요. 흙도 골고루 덮어 줬어요. 물도 듬뿍 주었어요. 그리곤 햇볕이 비치는 곳에 놓았어요. 달은 커다란 보름달이 될지도 몰라요. 아니면 토끼가 될지도 몰라요. 무엇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알콩이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달콩이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우린 서로 다르지만 같은 씨앗이 되었어요. 다른 화분에서 자라겠지요. 어떤 나무가 될지 몰라요. 어떤 꽃이 필지 몰라요. 어쩌면 조그만 알이 열릴지도 몰라요. 어쩌면 커다란 달이 달릴지도 몰라요. 알이 열매로 달리면 그 알을 한번 깨보고 싶어요. 달이 열매로달린다면 그 달을 톡 따 보고 싶어요. 알을 톡 하고 깨 보면 혹시 모르죠? 노란 병아리가 아장아장 걸어 나올지도 몰라요. 아니면 혹시 나비가 예쁜 날개를 파닥거릴지도 몰라요. 달씨에서 자라 달린 열매가 달이라면 나는 달도 따 볼래요. 달을 따서 흥부처럼 쓱싹쓱싹 베어 볼래요. 혹시 모르죠? 만약 마술램프가 나온다면 지니도 불러볼래요. 지니를 불러 함께 놀고 싶어요. 신나고 재미있는 게임도 하고 싶어요. 언제쯤 알콩이와 달콩이가 클까요? 빨리 자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날마다 물을 주고 있어요. 너무 많이 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하루에 한 번씩 베란다에 나가서 화분 옆에 쪼그리고 앉아있어요. 날마다 알콩이 달콩이 보는 재미로 살아요.
알콩이와 달콩이는 성은 다르고 이름은 같아요. 우리 반에도 성은 다르고 이름은 같은 친구가 있어요. 한 친구는 남자 친구고요. 한 친구는 여자 친구예요. 흔한 이름은 아닌데요. 우린 둘 다 서윤이에요. 여자인 서윤이는 남자 친구들이 남자 이름 같다고 놀리고요. 남자인 서윤이는 여자 친구들이 여자 이름 같다고 놀려요. 남자 이름, 여자 이름이 뭐 따로 있나요? 요즘에 그런 게 어딨어요. 남녀 공용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공평하게 나눠 쓸 수도 있는 거니까요. 옷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남자 옷 여자 옷 따로 입지 않아요. 자기 맘에 들면 입는 거예요. 친구들 눈치 같은 거 안 봐요. 그냥 편하게 살아요. 가방도 그래요. 엄마랑 가서 자기가 맘에 드는 걸로 골라요. 신발도 마찬가지예요. 각자의 개성이 있으니까요. 아이라고 무시하지 말아요. 요즘은 개성 존중 시대잖아요. 모든 게 다양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어요. 어른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우리를 단정 짓지 마세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생각이 있거든요. 알콩이든 달콩이든 서로의 길이 있거든요. 알로 가는 길도 달로 가는 길도 각자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그 길을 존중해주면 돼요. 특별나게 한 길을 고집하진 말아주세요.
어른들은 너무 성급해요. 알콩이와 달콩이가 싸울 때 보면 알아요. 싸우면서 크는 거라고 어른들은 말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싸우면 가만두지 않아요. 우리가 싸울 때 느긋하게 지켜봐 주면 좋겠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느긋하지 않아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우리는 서로 다투는 듯 보이지만 곧바로 화해하거든요. 그런데 그 새를 못 참고 어른들은 우리가 엄청 큰 싸움이라도 하는 듯, 무슨 큰일이라도 낸 듯 서로 갈라놓기 바빠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우리는 금방 풀리거든요. 금방 손잡고 또 놀거든요. 어른들이 문제예요. 어른들은 우리 보고 참을성이 없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세요. 누가 더 참을성이 없는지요? 오늘도 보세요. 알콩이와 달콩이가 장난감을 서로 가지고 놀겠다고 아웅다웅할 때 말이에요. 조금 기다려줬으면 둘 중 한 친구가 양보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 잠깐을 못 기다리는 게 어른이잖아요. 어떤가요? 이 글을 보고 있는 어른인 본인은요?
알콩이 화분에서 드디어 초록이가 나왔어요. 달콩이 화분에서도 초록이가 나왔어요. 정말 파릇파릇해요. 떡잎이 두장 올라왔어요.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쳐다봐도 그게 그거 같아요. 구분하기 정말 어려워요. 그 말, 어른들이 만든 거 맞죠? 우리가 만들었을 리는 없어요. 떡잎은 떡잎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물론 그 떡잎이 자라면서 어떻게 자라날지는 아무도 몰라요. 알콩이가 심은 씨앗은 알콩이가 심은 씨앗대로 튼튼하게 자랄 거고요. 달콩이가 심은 씨앗은 달콩이가 심은 씨앗대로 열심히 자랄 거예요. 지금 떡잎은 똑같아 보이지만 나중에 크면서 조금씩 달라지겠지요. 달라지면 달라지는 대로 인정하면서 살면 돼요.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거예요. 알이 되거나 달이 되거나 각자 콩콩 거리면서 우리는 재미나고 신나게 살아갈 거예요.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우린 서로 다르면서 같고요. 서로 같으면서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