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인다면 분노하라

태어나 처음으로 자살에 대해 생각해봤다

by 민진


태어나 처음으로 자살에 대해 생각해봤다.


비가 내리고 있다. 베란다 창문으로 걸어가는 우산들이 보인다. 창문을 여니 세찬 빗줄기가 방충망을 치고 들어온다. 방충망을 열고 밑을 쳐다보니 쏟아지는 빗줄기가 아파트 입구 쪽 도로위로 쏟아 떨어지고 있다. 조금만 몸을 더 숙이면 그 비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겠다. 그럼 이 모든 것이 끝난다. 의자를 가져와 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밖을 보니 몸이 바깥쪽으로 휘청 쏠리는 기분이다. 무섭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조금더 몸을 기울여보니 아찔하니 정말 떨어질 것 같다. 난 오싹한 기분에 서둘러 의자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혹시나 떨어질까봐 서둘러 방충망을 닫고 베란다에 있는 것만으로도 겁이나 방으로 들어왔다.


아빠가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내가 먼저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죽을 수도 있겠다 싶으니 더럭 겁이 났다. 죽고 싶다는 것은 엄살이었나...아니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이 무서운 건가.


예전에 어느 책에서 가장 고통 없이 확실하게 죽을 수 있는 자살 방법은 추락사라고 읽었던 것 같다. 추락사는 떨어지는 동안 기절을 해서 의식이 없는 채로 땅에 떨어져 즉사한다는 것이다. 그냥 떨어지기만 하면 되니 아주 간단하게 보였다. 그러나 나중에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실제 119 구급대원의 인터뷰에 따르면 추락사를 시도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이 있는 채로 바닥으로 떨어져, 갈비뼈가 으스러지고 온몸이 박살나는 고통을 오롯이 느껴야 한다고 한다. 또한 몸 안의 근육과 조직들이 아스팔트 바닥 위에 고기 덩어리들처럼 널브러지는 끔찍함을 살아있는 채로 지켜봐야한단다. 나도 모르게 상상하게 되는 그 현장의 끔찍함에 온몸에 우박만한 소름이 돋았다. 게다가 머리로 떨어져 두개골이 박살나지 않는 한, 대부분은 중환자실에서 끔찍한 고통을 겪다가 죽어간다고 한다. 추락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는 목을 메는 것은... 알아보니 그것도 끔찍하기는 추락사나 막상막하인 것 같다. 목을 메면 눈이 괴물의 그것인 것처럼 튀어나오고 혀도 입 밖으로 길게 늘어지며 온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온갖 분비물이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 아... 싫다. 죽는다면 깔끔하게 죽고 싶다. 향에 취해 편할 것 같았던 번개탄도 알고보니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리고, 죽지 않고 깨어나게 되면 치매가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치매는 절대 안된다. 손목을 칼로 긋는 것은 동맥이 생각보다 깊이 있어 일반인들이 칼로 자기 손목을 긋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한다. 깊지 않더라도 바늘로 찌는 것도 싫은데 칼로 긋는 다는 것은 ... 싫다. 그렇다고 가장 실패 확률이 높다는 약을 먹는 것은 음... 생각보다 많은 양을 먹어야 한다는데 이건 또 어떻게 구하나...


모두 다 자신이 없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처럼 차를 몰고 그랜드캐니언 같은 절벽으로 질주하며 추락하는 것은 달리는 차의 속도를 빌려 순식간에 깔끔한 죽음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지만 이렇게 죽자고 코로나 시국에 미국에 있는 그랜드캐니언까지 간다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다. 그랜드캐니언 급은 아니더라도 국내에서 적당한 장소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당한 장소를 찾아낸다 하더라고 차가 없는 나는 차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차나 장소가 다 준비된다 하더라도 운전을 안 한지 너무 오래돼서 운전 연수부터 받아야 되는 것 아닌가 싶다.


뭐하자는 건지...죽겠다는 건지, 살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솔직히 죽는 건 무섭고, 살아서 견뎌내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핑계가 많은 것이 아직은 살고 싶은 것 같다.


러시아의 시인 푸슈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유명한 시가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건 몰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라는 시구는 어디선가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푸슈킨의 시구처럼 참고 견디더라도 즐거운 날이 절대 올 것 같지 않은 그런 절망적인 순간들이 있다. 삶이 나의 뒤통수를 후려친 것 같은 그런 순간.

2020년 참는다고 조금도 나아질 것 없는, '죽음'이 차라리 희망으로 보였던 끝모를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아버지를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우리를 패대기친 삶이라는 것에 맞짱이라도 뜨고 싶을 정도로 열 받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