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아가는연이 Nov 17. 2020

나는 정말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사람일까

 공부가 힘든 그대의 내면에서 벌어질 의문들, 세번째 글

 어쩌면 ‘세상에 대한 원망’ 그 이상으로 심각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부족’일 것 같다. 세상 탓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탓도 아닌 단지 내 탓으로 돌리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졌던 많은 기회를 스스로 보기 좋게 날린 것 같기도 하고, 원래 이런 시험은 할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연속되는 시험 실패 탓에 ‘나는 큰 시험에 약하기 때문에 합격 못 하는 사람’이라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다. 머리로는 이런 생각이 진실이라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낸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극복하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자꾸만 이런 부정적인 자가 예언이 실현된다는 생각에 더 괴로웠다.     


 어쩌면 수험생활과 같이 미래가 불확실해 보이는 상황에서는 누구나 자존감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더군다나 나는 이전부터 스스로 낮은 자존감을 가진 편이었으며, 그런 자신이 불만족스러워 더 자존감이 낮아지는 악순환을 낳게 되는 상태였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나 자신을 위해 매일 공부에 몰입했던 수험생 기간은 내게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초반부터 ‘나를 믿자’라고 강력히 결심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일주일에 한 번씩 세운 주중 공부 계획에 맞춰, 날마다 목표한 공부를 해내는 작은 성취를 통해 자존감은 꾸준히 오를 수 있었다.     


 꼭 낮은 자존감의 문제라기보다도 ‘내가 이걸 정말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일반적일 것이다. 각종 시험에는 도가 튼 약학대학의 동기들도 작년에 약사고시 공부를 하면서 ‘다른 사람은 다 붙겠지만 나만 떨어지는 거 아닌가’라는 걱정을 참 많이도 했다(그리고 우리 동기는 전원 합격했다). 누가 봐도 공부를 잘하는 그들이 자신을 남과 다르다고 여기는 심리의 이면에는, 어쩌면 그들이 이때까지 무엇을 이루기 위해 남들보다 더한 노력을 해 온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모두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남들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뛰어나거나 월등히 못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대부분 기우다. 나보다 더 앞서 무엇을 이룬 사람은 내가 보지 못하는 숨은 노력을 했었던, 하고자 노력하면 자신 앞의 길이 열리는 한 사람일 뿐이다. 특히 공부나 시험 준비와 같은 분야에서는 별 꼼수가 없다. 누구나 매일 도를 닦듯이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의 머릿속에 지식과 문제 풀기 전략을 습득하도록 자신을 도와야 한다.      


 자존감을 높이는 데는 남들보다 큰 성취를 할 필요도, 뛰어난 점이 있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내가 수험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지금부터 단 한 시간 동안, 세계에서 1등으로(어쩌면 공동 1등으로라도) 집중해서 공부하기였다. 매시간 강박적으로 눈에서 레이저를 쏘듯이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도, 집중이 덜 되는 날도 있었지만, 나 자신이 기계가 아닌 이상 당연히 그런 날도 있기에 불필요하게 자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컨디션이 좋고 집중이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들면 속으로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만 세계에서 1등이 되어 보자’고 주문을 외운 뒤 공부를 시작했고, 실제로 집중해서 공부해낸 날에는 그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다. 시험날만큼 멀리 볼 필요 없이, 그런 시간을 보낸 그 하루 동안은 정말 보람 있게 보냈다고 느꼈다. 1등으로 멋진 사람으로 지낸 시간이 쌓이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의심 따위는 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나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 경험 덕에 가장 좋은 점은, 해 봤기 때문에 또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스스로 확신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외모나 성격 콤플렉스에 대해 달관한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은 나일지라도 이만큼 열심히 해 본 경험 하나로, 지금은 어딜 가나 주눅이 들지 않고 당당할 수 있다. 다소 밥맛없게 들릴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난 진심으로 내가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하기’가 가장 중요하다지만, 스스로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마음속으로 다짐만 한다고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닐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지 않은 사람들도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 더 분명히 말하면 자신에게 그럴 기회를 만들어 주지 않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자신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확신이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해서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나를 위해서 필요한 인터넷 강의를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거나, 공부가 잘되는 장소로 나 자신을 밀어 넣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치 부모가 자녀 중에서도 될 성싶은 싹이 보이는 아이에게 집중적으로 기대와 투자를 하고, 사회에서도 영재성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더욱 투자하며 밀어주는 현상과 같다. 자신이 정말 제대로 공부해서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은 주변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공연 전날 엄격하게 성대 관리를 하는 프로 가수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나를 믿는 것은 이전 글에서 말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믿는 것과 이어지기도 한다. 가끔은 좁은 시야를 통해 보이는 내 앞의 현실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가 이 넓은 세상의 일부라는 넓은 마음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이 경이로운 세상, 넓은 우주 속의 일부로 존재하는 나라는 존재는 참 소중하고 신비롭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현실에서 쌓인 답답한 마음이 풀어지는데 꽤 도움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은 내 편이 아닌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