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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가는연이 Oct 22. 2022

서른 살의 가을, 반려자 인연에 대한 생각

가을 타는 나이 서른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길가의 나뭇잎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시간은 서른 살의 시월 말을 향해 다가왔다. 원래 계절에 대한 선호가 없었는데 작년부터인가 사계절 중 가을을 제일 좋아하게 되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가을 우체국 앞에서’와 같은 가을 곡들은 딱 내 취향이다. 12월 한 달은 너무 행사가 많고 정신없이 지나가기에, 한 해 마무리까지 좀 더 시간 여유가 있는 가을이야말로 올 한 해와, 더 길게는 내 30여 년의 인생까지 되돌아보기에 딱 좋은 시간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그렇듯이 한 해가 다르게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점점 더 알아가고 있다. 30년이나 되어서야 나 자신에 대해서 이만큼 알게 되었는데, 지금으로부터 10년, 20년 후면 얼마나 더 알게 될까 사실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나 자신에 대해서 더 깊게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누구나 딱 몇 가지 특성으로만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가 인간이다.


 20대 때의 나는 사실 멋지게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했다. 부지런하고 지혜롭고 강인한, 그냥 누가 봐도 멋진 사람으로 나를 봐주길 원했다. 그래서 나는 내 장점을 항상 내세우길 좋아했고, 단점은 스스로 외면하는 경향이 있었다. 평소에는 꼭꼭 잘 숨겨왔던 단점들이 극한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나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할 때마다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나는 실제로 꽤 진취적인 편이고, 항상 새로움을 접하며 더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을 연료 삼아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내 성향은 스스로도 마음에 든다. 그리고 꽤 큰 고난이 닥치면 오히려 태연해지고 대범해지기도 하는 강인한 면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나는 본질적으로 꽤 연약하고 예민한 사람이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내 감정을 풀어낼 수 있도록 곡 안의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고 나름의 기승전결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작은 일에 우울해진 적도 많고, 종종 걱정이 생기면 밤에 잠을 잘 못 이룰 때가 있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일부러 슬픈 영상을 보고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마음을 정화해야 한다. 꽤 예민하고 연약한 나는, 50살, 60살이 넘어도 이런 성향을 계속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내가 생각하는 인격적으로 완벽한 이상적인 사람은 될 수 없다는 걸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부터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야, 타인의 불완전함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행복한 연애를 하며 자연스럽게 결혼도 하고 싶은 사람이고, 반려자 인연을 찾는 것이 인생의 중요하고 큰 과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소개팅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가는 편이고, 낯선 사람과의 일대일 면접을 꽤 즐기기도 한다. 친구들과 소개팅 후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보는 눈이 높아져 큰일이야’라는 말을 자랑처럼 하고 다녔던 게 비교적 최근이었다. 그렇게 말하고 다니면서도 진심으로 눈을 낮출 생각은 사실 없었다.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인만큼 상대방도 여러모로 모든 걸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아주 어렸을 때는 그냥 나 좋다면 환영인 시절도 있었는데, 나도 이제 나름 좋은 직업도 가졌고 성격도 좋은 편이니(남들이 나보고 착하다고 하니), 이리저리 재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계속 이런 상태로 지낼 수도 있었겠지만, 소상히 밝히기는 힘들어도 내게는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될 만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을 상품처럼 이리저리 재며 ‘서로가 결혼 상대가 되어주는 일종의 거래’를 하기 좋아 보이는 사람이 아닌, 진짜 서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만 하는 사람이란 걸, 나도 모르게 잠시 감고 있던 눈이 떠지듯, 불현듯 깨달았다.


 이제 어떤 사람을 보고 첫눈에 반하거나 두근거리는 것은 외모에 홀린 것이지 진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사람의 집안 배경이나 재산을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 아니다. 내가 아는 내 반려자 인연이란, 인생이란 여정에서 가시밭길도 같이 헤쳐 나갈 수 있는 든든한 사람이며, 한쪽에서 크게 양보하지 않고도 각자 생각하는 방식대로 인생을 즐기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첫 만남에서는 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인생관이나 가치관,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반드시 물어보게 된다. 그가 하는 이야기가 내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지, 또 내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나 또는 내가 배울 부분을 가지고 있는지 대해 파악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이 한 방향이 아닌 양방향으로 일어나며 서로가 그들의 빛나는 점을 발견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면서 존중이 생겨나고 이러한 존중이 밑바탕이 되었을 때 진정한 사랑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깊숙이 깨달은 상태는 아니었던 것일까.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뒤돌아보니 보였다. 나는 인간이기에,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실수를 했다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지 않을까.


 지나간 인연은 정말 인연이 아니었다고, 스치는 인연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마음 편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조건과 외모로 눈이 가려져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인 ‘순수한 마음’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다. 나는 항상 강하고 멋있을 수 없는 한 인간이기에,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의 약한 모습까지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의 준비와 자질이 있는 사람, 그런 소중한 인연이 내 앞에 나타난다면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내가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고 다짐한다. 


 이렇게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는 걸 보니 나는 정말 제대로 가을을 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서로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그 사람이 이왕이면 너무 늦지 않게, 서른한 살의 가을쯤에는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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