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갔다.
딸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면서 몇 줄을 더 쌌다. 선생님과 에릭 요한슨 사진전을 보고 근처 공원에서 점심으로 먹기로 했다. 김밥 세 줄과 물 한 통을 작은 보냉 가방에 넣고 출발했다. 하얀 블라우스에 펄렁펄렁한 통바지를 꺼내 입었다. 집을 나가고서 혹시나 해 검색했더니 휴관이다.
"어린이 대공원 산책하러 갈까요?"
꿩 대신 숲을 제안한다. 비록 닭일지언정 숲이라면 언제나 찬성이다. 발바닥이 좋지 않아 두 시간 남짓 걷는 코스가 걱정이긴 하나, 거절하지 않았다. 옷차림도 엉뚱하지만, 숲은 언제나 옳다.
숲에 들어서자마자 물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바짝 마른 바닥을 보이는 날이 대부분인데, 장마로 인해 숲에 생기가 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발바닥 걱정인 내 등을 떠밀어주는 듯하다. 도심에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전혀 다른 무대가 펼쳐진다.
많은 나무 중에 편애하는 건 편백이다. 밑동부터 가지 끝까지 쭉 뻗은 기상이 그 이유다. 성질 급한 나 같기도 하고, 옆 눈 돌리지 않는 학자의 기개 같기도 하다. 정리벽 환자처럼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쭉쭉 뻗은 나무 아래 서면 싸매고 온 근심이 무엇이었는지, 뭣 땜에 여길 왔는지조차 잊어버린다.
이 숲은 몇 년 전 동반자를 따라왔다가 알게 됐다. 매번 다니는 코스 말고 샛길로 들어간 날 정글 같은 편백숲을 만났다. 경사도 완만해 누구나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코스다. 한 시간 남짓 올라가다 보면 갑자기 부채처럼 펼쳐지는 군락이 나온다. 마치 거인이 하늘에서 내리꽂은 것 같은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방심하고 걷다가 탄성을 지르는 곳이다.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는 행위는 그 자체로 희망이다. 고개가 숙여질 때 그곳이 나를 부른다.
엄마 팔순 때 제주도에 갔다. 두 분은 좋은 관광지 다 놔두고 의외의 것에 재미를 보이셨다. 하나는 성산일출봉 앞 VR 게임이었고 하나는 도깨비 도로를 지나고 내려오는 우거진 숲길이었다.
흔들리는 의자에 안경을 끼고 앉아 가상 공간을 날아다니는 VR이 무서우면서도 신기해하셨다. "아요, 은자저가부지 떨어지지 않게 의자 꽉 잡아요"라는 엄마의 당부마저 웃음이었다. 기껏 준비한 이벤트나 값비싼 공연엔 덤덤하시더니, 몇천 원짜리 게임을 전체 일정 중 제일 재미난 일로 꼽으셨다. 또 하나는 굽이굽이 산길을 내려올 때 두 분은 연신 감탄사를 쏟아내셨다. 차 세울 갓길이 없어 스쳐 지나온 게 여태 아쉬움으로 남았다. 한평생을 산골에서 살았으면서 숲이 저렇게도 좋을까? 의아했던 마음은 몇 해 지나지 않자 바로 내 이야기가 돼 버렸다. 어릴 적 먹었던 음식을 찾고, 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이 그리워지는 건 늙음의 동의어이자 회귀본능인지도 모른다. 이제 반쯤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이미 회귀를 준비하고 있는 걸까?
한 시간 남짓 산을 올랐다. 나무는 반기고 폭포 소리 우렁차고 새들은 수다스럽다. 선생님은 내가 길을 제대로 알고 올라가는지 의심한다. 오솔길이 뚜렷이 보이니 걱정 없다. 행여 끊기더라도 그곳이 나를 부를 것이다. 잃어도 잃은 게 아니니 태평이다.
"여기예요. 선생님"
편백 숲은 예고도 없이 갑자기 눈 앞에 펼쳐진다. 나만 알고 싶은 곳이자, 나만 알기엔 아까운 곳이다. 걸음을 멈추고 하늘까지 닿은 듯한 나무를 올려다본다. 태풍에 잔가지를 부러트리는 여느 나무와 달리 전력으로 버티다, 넘어질 땐 온몸으로 무너질 것 같다. 우러러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다. 갈증이고 그리움인 듯 환호한다. 가지고 온 걱정과 고민을 토해낸다. 그러거나 말거나 숲은 한결같다.
폭포수 옆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김밥과 김치를, 선생님은 오렌지를 가져오셨다. 글쓰기가 에너지를 많이 쓰는 정신노동이라지만, 몸 쓰기는 그야말로 육체의 노동이라 입맛의 바로미터가 된다. 김밥 석 줄이 금방 사라진다. 조금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양 적은 선생님도 오늘 제법 실력을 발휘하신다.
점심 식사가 끝나자 선생님은 가방을 열어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신다. 색연필이 나오고 조그마한 종이 뭉치가 나온다. '어반 스케치'를 하잖다. 숲속 미술 시간이다. 수학과 미술은 학창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제일 어려운 과목이다. 사진 찍은 걸 따라 그려 보자고 하신다. 좀처럼 꿀리지 않는 내가 그리기도 전에 작아진다. 얼마 만에 색연필(켈리그라피용)인지. 올라오면서 몇 장 찍은 편백을 펼쳐 놓는다. 쭉쭉 뻗는 나무니, 그저 쭉쭉 그으면 될 것 같다.
아뿔싸! 15cm 정도 되는 작은 종이에 일직선 하나가 제대로 안 그어진다. 마음이 삐뚠 걸까? 왜 선이 안 그어지지? 한 그루에서 끝나고 마는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삐뚤다. 선 긋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수학과 미술이 어려웠던 게 모두 기본기 부족 탓이었던가? 본 건 있는 김 여사처럼, 원근감을 표현하고 싶지만 아예 능력 밖이다. 빗물 잔뜩 머금어 고동색이 된 나무를 표현하려 했으나 불에 탄 듯 새카매졌다. 수습하려고 덧칠해 보지만 마음만 더 새까매진다. 선생님 그림을 컨닝해 잎사귀와 하늘을 찍어 넣으니 그나마 보기 흉한 기둥이 좀 가려졌다. 웅장한 숲을 조그마한 종이에 가둬놓고 "피카소가 울고 가겠네~"라며 자화자찬한다. 꼴사납다. "멀리서 보면 아무도 몰라"라며 우리는 진실을 외면한 채 웃었다. 좋아하는 숲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그림을 더하니, 조그마한 가슴이 요술램프에서 나온 '지니'처럼 부푼다.
그림을 냉장고에 붙여 놓고 숲이라 우기고 있다. 아이들은 성의 없는 대답을 하고 그나마 남편이 '의외'라는 듯 종이와 펜의 재질을 묻는다. 그의 질문이 칭찬이라 착각하며 집에 숲을 끌고 온 나를 대견해한다.
경남 고성 동시 동화 나무숲(동동이 숲)에 가면 '열린 아동 문학상' 수상자 이름을 나무 아래 돌덩이에 새겨놓았다. 원하는 나무를 선택하면 그 나무 아래에 돌덩이 상장을 선물로 주신다. 숲을 거닐다 보면 여기저기 공룡알처럼 놓인 상장을 볼 수 있다. 연세 지긋한 선생님은, 올해 처음 동동이 숲에 간 나에게 상을 받는다면 어떤 나무를 선택하고 싶냐고 물어보셨다. 편백이다. 편백 아래 내 이름이 써진다면 그곳은 환희와 소멸의 장이 되어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영광과 죽음의 하모니가 편백에서 이루어진다면 죽음마저 문학상감이 될 테다.
숲을 좋아하는 것만큼 건강에 대한 두려움도 든다. 여기를 내 발로 올 수 없을 때는 어디에 마음을 풀어 놓고 가다듬어야 할까? 누군가의 도움, 자연의 위안마저 필요 없어지는 때가 과연 올까? 그게 사람일까?
숲을 빠져나온다. 잘 가라는 인사도, 또 오라는 인사도 하지 않는다. 올 때 반기지 않았던 것처럼 갈 때도 태연하다. 이만큼이면 한 달 치 영양제가 되려나 싶다가도 떠나기도 전에 아련하다. 내가 숲이 되고 싶다. 발바닥이 아파도, 그리움이 쌓여도 언제든 닿을 수 있는 숲, 내가 그 숲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