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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Aug 08. 2023

삶과 죽음의 경계


삶이 전부인 사람이 있었다. 살아내는 것이 전부인 사람, 살아내기만 하면 되는 사람, 그 사람이 급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당뇨 합병증을 앓은 지 오래됐다. 작고 통통한 아주머니였다. 아들만 셋을 낳아 여자아이를 보는 눈이 애틋했다. 나를 볼 때도 당신도 하나 더 낳았으면 딸을 낳았을지 모른다며 하소연인지, 넋두리인지를 읊기도 했었다.

당뇨 합병증은 점점 심해져 약으로 치료하는 데 한계가 와 최근엔 혈액투석을 하고 계셨다. 일주일에 두 번 병원에 다니신다더니, 혈색 없이 파리한 모습이 영 예전 같지 않았다. 억척같이 일해서 자녀들 키워 보내고 살만하니 병을 얻어 지리한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 

저녁 먹고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받는다. 시답잖은 안부를 나눈다. 입맛은 있는지, 수술한 다리는 시리지 않은지, 엄마가 밥을 잘해주는지를 묻고 시어머니는 안녕하신지, 남편과 아이들은 별일 없는지, 뻔한 서로의 안부를 탁구공처럼 주고받는다. 정상적이지 않음이 자연스러운 거란 걸, 건강이 욕심이란 걸 이제 받아들이신다. 특별한 것 없는 안부가 끝나자, 아빠가 마을 소식을 전해주신다. 사고 소식이다.

옆집엔 큰아들이 몇 년 전에 귀농해 나이 든 엄마랑 살고 있다. 젊은 날에는 구포 시장에서 신생아 용품 가게를 했었다. 아는 사람이라고 거기까지 찾아가 큰아이 출산용품을 샀다.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손님을 맞고 터줏대감처럼 시장 생태에 익숙해진 듯했다. 

작은 시골 마을이다 보니 뉘 집에 숟가락이 몇 개며, 그중 몇 개가 굽었는지도 다 알고 있다. 그 비밀이란 것이 숨겼다가 들켜 버리는 음지의, 암묵적인 것이 아니라, 기어이 허물어지는 둑처럼 당신들 입에서 자연스레 터져 나온다. 평생을 보고 산 사람들이다 보니 시커먼 내장까지 다 안다. 켜켜이 끼어두고 있어 봐야 어차피 다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아신다. 숨길 것도 가릴 것도 없이 배우자와 자식의 치사부터 각종 실패담이 만담처럼 펼쳐진다. 도시물 먹은 내게도 낯선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인 듯, 샌드백을 치는 선수처럼 격렬하다.

몇 해 전 장사가 안돼 가게를 접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부인과도 이혼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외국 여성과 재혼했으나 그마저 오래가지 않았다는 소문도 들었다. 최근엔 도시 생활 접고 시골에 들어와 가까운 곳에 직장을 얻어 트럭을 몰고 출퇴근하고 있었다. 옆집이라 친정 갈 때마다 인사도 나누었다. 마을에서도 억척같기로 유명한 아주머니와 도시에서 살다 온 아들의 불협화음은 종종 담을 넘어왔다. 일주일 내내 일했으니 주말엔 늦잠을 자겠다는 아들과, 일평생 누려본 적 없는 단어가 큰아들이라고 이해될 리 없는 아주머니 간의 실랑이다. 아들 손 필요한 일들이 밀려 있으니 부지런한 해와 늦잠 부리는 아들의 부조화가 고함이 돼 나온다.

우리 마을은 '솔밭'이 유명하다. 마을 오른편이 병풍처럼 숲을 이루어 오른팔을 휘감은 듯 마을을 감싸고 있다. 솔밭을 따라 마을을 오르내리는 길이 있다. 정자에 앉아 있으면 누가 오가는지가 다 보인다. 아직 해도 뜨거운데 일하러 나가는 사람을 보며 숙덕거리기도 하고 주말에 오가는 자식들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한다. 숲이 끝나는 곳에는 주차를 할 수 있는 빈터가 있다. 자녀들이 하나둘 귀농하면서 자동차 숫자가 늘어간다. 그 땅에 두세 대 주차가 가능하다.

옆집 오빠 트럭도 거기가 지정석이다. 평지가 아니라 완만한 경사가 졌다. 후진하던 오빠가 길가에 앉아있던 아주머니를 미처 보지 못한 모양이다. 사고가 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다. 귀신에 씌었단 말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사태가 심각했다. 119 불러 급히 병원에 갔으나 아주머니는 운명하시고 말았다.

차분한 아빠와 달리 나는 더듬거린다. 사고를 낸 오빠와 돌아가신 분 모두 딱하게 됐다. 한 동네서 일어난 일이라 얼마나 곤란할지 뻔하다. 게다가 오빠 트럭은 보험도 안 들어 있다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병원에 다니며 그렇게 살려고 아등바등했는데..... 쯧쯧"

아빠는 사고를 낸 오빠보다 사고당한 아주머니에게 더 마음이 가는 모양이었다. 살기 위해, 살아내려고 애쓰던 사람이 어이없이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인사도 예고도 없이. 안주인을 잃은 아저씨와 세 아들의 황망함은 말해 뭘할까.

작은 가슴으로 숨쉬기엔, 작은 집이 더 작아 밤 산책을 나섰다. 비가 훑고 간 마을이 숨통이 틔워준다. 

지난주 나도 경미한 사고를 겪었다. 지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카페에 갔다가 주차하는 중에 순식간에 차가 고랑에 처박히는 사고를 당했다. 고랑이었기 망정이지 앞이 뚫려 있었다면 더 치고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악셀을 밟은 모양이다. 다행히 둘 다 안전벨트를 풀지 않아 몸은 다치지 않았지만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이랑 모자가 바닥에 떨어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놀란 나머지 둘 다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자 주변에 있던 분들이 와서 안부를 물어보셨다. 당황한 우리를 다독이며 견인차, 보험회사에 연락을 취하란 안내도 해주었다. 

사고는 예고편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죽음도 마찬가지다. 나를 비켜 갈 갈듯 착각하고 산다. 어쩌면 지난주에 세상을 떠날 수도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오만하다.

소크라테스는 산파술을 통해 죽음이 '소멸이 아니라 이승에서 저승으로의 이주'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 과정이 익숙하지 못해 이승에만 집착한다. 저승에 간 사람이 그곳을 입증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습자지처럼 얇은 종이 위에 생과 사를 올려두고 산다. 언제 그곳에서 떨어질지도 모르면서 무사안일하다. 행복. 끝을 꽃이라고 쓴 시인처럼 나는 끝에서 행복을 떠올린다. 코너에 몰린 생쥐처럼 딱 한 가지 단어만 남긴다. 죽음 앞에서 유일하게 떠안아야 할 단어이지 않을까. 저승 문 앞에서 미련 없도록 '기꺼이' 행복하기. 톨스토이가 말 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 현재에 살기. 오늘을, 내일도 누릴 수 있을 거라는 착각 거두기, 어제도 내일도 아닌, 지금 여기에 최선을 다하기로 별표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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