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보다 마흔 Aug 08. 2023

가자미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그날 나는 처음으로 가면을 벗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을이라, 더 수입이 많은 사람이 갑이라 늘 내 기분보다 남편의 감정을 더 우위에 뒀다. 동등한 부부이지만 남편이 가정 경제를 책임지니 아내로써 배려와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옷가지를 챙기고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하루 일과에 중요한 일이었고 나쁘지 않았다. 행복한 비명처럼 시장을 보고 푸짐하게 요리해 이웃과 나눠먹기를 즐겼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주부의 삶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글은 작은 점으로 시작됐으나 식빵처럼 점점 부풀어 올랐다. 집 안에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고 냉장고에 음식이 상하기 시작했다. 건조기에 빨래가 미처 나오지 못했고 소파 위에 옷가지가 뒹굴기 시작했다. 부엌으로 출근하는 시간이 서서히 줄어 들었고 외출하는 시간도 당연히 줄었다. 정성스레 차린 저녁상이 점점 멀어져 갔다. 남편은 포장 음식을 사 오기 시작했고 나도 감사히 그걸 먹기 시작했다. 남편의 응원과 격려가 점점 힘을 잃어가는 데 반해 내 재미는 점점 힘을 키워가고 있었다. 서로의 바람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퇴근하기 전에 저녁 메뉴를 물어보고 없는 재료를 사 오는 날이 많았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 맥주 한 잔을 곁들여 영화 보는 게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내는 방식이었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시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저녁에도 강의를 들었고 글을 쓰느라 시간을 보냈다. 매일 발행하는 글을 쓰고, 출간을 하고  간간이 청탁도 받으며 공모전까지 준비하느라 글에 바빴다. 화면 속 이들과 소통하느라 곁에 있는 남편과 소통하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다. 

"어머, 사장님 오셨어요? 어서 오세요."

마담처럼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그를 맞았다.

 "이 집이 이 동네서 젤 잘한담스?"

남편도 맞장구를 쳐 소꿉놀이 같은 시간을 보냈다. 어떨 땐 웬수 중의 상원수지만, 쿵짝 맞을 땐 이런 조합이 없다. 척하면 척이라 마담 놀이에 VIP 고객이 돼 현관문에 들어섰다. 

남편에게 음식은 사랑이다. 생계에 급급했던 어머님에게, 가정에 무관심했던 아버님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나에게서 얻길 바랐고 음식으로 채우길 원했다. 나는 그런 남편을 남자답지 못하다고 말하고, 그는 정성스런 음식을 차리는 걸 여자의 도리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이 등식이 납득되지 않아 남편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친정에서 음식은 그저 귀하고 감사한 것이었다. 맛의 형편을 따지지 않았고 누구도 그 맛에 시시비비를 걸지 않았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면 뭐든 맛있게 감사하게 먹었다. 밥상 앞에서 투정하는 걸 보지 못했다. 

"싱거우면 많이 먹고 짜면 조금만 먹으면 된다"라는 오빠들이었다. 

"행여나 맛이 없더라도 어찌 맛 없다는 말은 하는고?"라는 아빠였다.

이 집안이나 친정이나 두 안주인의 음식 솜씨는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다. 어머님도 엄마도 요리에 취미가 없으시다. 그러나 식구들이 보이는 반응은 전혀 닮지 않았다. 아버님은 수시로 음식의 맛을 지적하셨다. 지적이 아름다울 리 없다. 익지 못한 인격까지 덧붙여 배려는 꿀꺽 삼켰다. 처음 보는 서커스만큼이나 낯선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남편이 은근히 닮았다. 닮고 싶지 않은 모습이라 피해 가려 애쓰지만 교묘히 닮았다.

"다시는 나한테 밥 해달라 소리 하지 마!"

결혼해 처음으로 남편에게 큰 소리를 치고 화를 냈다. 놀란 남편은 동그래진 눈으로 쳐다봤다. 그 모습에 왠지 모를 용기를 얻어 떠 놓은 밥을 다시 밥솥에 비우고 구운 생선을 보란 듯 쓰레기통에  내리꽂았다. 결혼 초반에 잡지 못한 기세를 이제라도 해 볼 심상이다. 

"왜 맨날 먹어보지도 않고 불만부터 얘기하노? 어?  다시는 나한테 밥해 달라 소리 하지 마라."

가면을 벗어던졌다. 나도 화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선포했다. 별안간 솟구친 화에 나도 남편도 놀랐다. 

"아니, 이 사람아 내가 뭐 어려운 거 부탁했나? 생선 하나 구워 달라는 데 그게 그리 잘못됐나?" 

그날도 퇴근 시간에 남편과 저녁 메뉴를 주고받았다. 가자미 사 둔 게 있으니 그걸 구워 먹기로 했다. 잠시 후 남편은 '꿀맛 가자미 구이' 레시피를 보내왔다. <매일메일은자> 마감 시간이 다 돼 제목만 보고 클릭하지 않았다. 글을 발송하고 다시 전자책 마무리를 해야 했다.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컴퓨터 도구가 문제였다. 블로그 하나로 연명하던 내가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을 쓰려니 골치 아프다. 잘 될 리 없다. 미리 캔버스로 표지를 만들고 워드에 쓴 원고를 pdf 파일로 옮겨 등록하려니 여기서 삐긋, 저기서 삐긋 당최 업로드가 되지 않는다. 남편 말마따나 프로그램 앞에만 앉으면 머리가 하얘진다. 결국 남편이 퇴근해 올 때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급하게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남편이 보내준 레시피를 대충 훑어보았다. 가자미 등에 칼집을 내고 머리를 잘라내고 구웠다. 정갈한 모습이다. 그러나 집에 있는 가자미는 별로 크지도 않을뿐더러 나는 머리 없는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선구이가 특별할 게 있나, 바삭하게 구우면 다 맛있지. 나는 레시피는 무시하고 기름 넉넉히 둘러 생선 구이집 요리처럼 튀기듯 구웠다. 껍질도 벗겨지지 않고 잘 구워졌다. 상차림을 도와주던 남편이 생선 접시를 보자마자 불만을 늘어놓는다.

"아니, 이거 내가 보내 준 레시피 아니네. 안 봤나?"

끝말에 원망이 섞여있다. 부하 직원을 대하는 질책 같다. 

"또 시작이다. 바삭하게 구웠으니 그냥 먹으면 되지, 먹어 보지도 않고 불만부터 얘기하노?"

머리를 떠나지 않는 전자책 업로드가 남편의 질책과 맞부딪혀 스파크가 일었다. 몇 시간을 붙잡고도 해결하지 못한 속상함에 남편의 질책이 얹혀 흘러넘쳤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던 남편이 내 태도에 어안이 벙벙하다. 내  화만큼이나 남편의 표정도 낯설다. 고양이를 반격하는 쥐다. 저녁식사는 이미 날아갔다. 나는 화가 난 채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고 남편은 맥주만 들고 TV 앞에 앉았다. 글이 될 리 없고, 영화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잠시 후 남편이 다시  맥주를 꺼내며 말한다.

"잘했다. 또 글 쓸 거리 생겼네, 또 써라 써!"

비아냥이다. 글 쓴다고 남편 대하기를 우습게 여기는 부인이 못마땅하다. 나도 미안하다. 그러나 사과하고 싶지 않다. 업로드를 먼저 해결해야 사과도 용서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작 한다는 말이 쓸 거리 생겼으니 또 글 쓰란다. 쳇, 언제부터 내 글 챙겨줬다고 그래. 쓰라고 하면 내가 못 쓸 줄 아나, 내가 아무리 잘못했어 봐라 내가 잘못했다고 쓰는가, 당신이 악역이지. 

남편 말대로 나는 싸운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는 다시 마담 집을 드나드는 VIP 고객이 되었다. 마담이 예전 같은 정성을 들이지 않지만, 오래된 의리로 찾아주고 있다. 

도구는 여전히 어렵고 나는 도움을 줄 사람을 찾는 걸로 어려움을 해결하고 있다. 여전히 요리엔 시간을 들이지 못하고 내친김에 남편은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바람직한 해결이라 할 순 없지만 부부라서 합의되지 않은 합의를 하며 살아간다. 

스물두 살, 연예를 시작하고 도저히 엄마 아빠의 허락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결단을 내려야 했다. 맥주와 햄치즈 안주를 앞에 놓고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했었다. 예고도 없는 이별 통보에 맛있는 안주가 넘어갈 리 없었다. 그 후로 우리는 다시는 햄치즈 안주를 주문하지 않았다.

가자미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이후로 가자미는 더 이상 내 식탁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좋아하는 생선이고 나도 좋아하지만 오래도록 눈길을 거부했었다. 

'수목 돌풍 세일' 마트 전단지에 싱싱한 가자미가 올라와 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스윽 미소 짓는다. 얼마나 싱싱한 놈인지 한 번 가봐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