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혼술남녀 PD였던 한빛이 이야기
http://v.media.daum.net/v/20170418103602823
https://www.facebook.com/creal20/videos/681340698716470/?pnref=story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 다만 달라진 점은 있다. 더 이상 가장 좋아라 하던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보지 못한다. "도깨비"를 보려 할 때도 이내 영상 뒤편에서 일하고 있을 너와 네 동료들 모습이 떠올라 이내 노트북을 덮었다.
tvn은 내가 가장 좋아라 하는 방송사였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상당수는 tvn에서 방영됐다. 그렇기에 나는 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진심으로 축하했다. 내심 기자가 되길 바라는 주변의 시선을 말할 때, 나는 네가 하고픈 PD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거란 말을 건넸다. 어른들의 인식 속에 자리한 케이블사와 우리 세대에게 지금 그리고 앞으로 tvn이 지니는 의미는 정말 다를 거란 말도 했다. 본인이 정말 하고픈 꿈을 좇아 이룬 모습을 힘껏 응원했다.
오랜만에 만난 너는 즐거워 보였다. 화제가 바뀌었을 뿐 사실 익숙한 모습이었다. 방송국이라는 새로운 일터에서 매 순간을 열정으로 살면서 겪고, 떠오르고, 하고픈 것들에 대한 썰을 쉴 새 없이 풀어놓았다. 너는 우리가 평소 좋게 평가했던 PD들의 사석에서 모습을 이야기하기도,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현재 방송가의 트렌드와 앞으로 변화될 방향에 이야기를 하기도, 콘텐츠 시장의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 해외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바일에 맞춘 콘텐츠와 AR, VR 같은 이야기를 했다. 얘는 또 언제 이렇게 새로운 영역에서 방대한 지식과 견문을 쌓았나 싶었고, 정치·사회문제 외에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범주가 넓혀졌음이 반갑기도 했다. 무엇보다 스러져가고 삶을 부정하고 비관하는 이들을 만나다가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는 너를 만날 때면 그 활력이 부럽고, 반가웠고, 또 자극이 됐다.
사람들은 줄곧 나에게 왜 너를 만나는지 물었다. 너는 사람들 앞에서 자주 위악적으로 굴기도 했고, 그놈의 '전체 판의 그림'을 생각하며 욕을 먹는 역할을 도맡기도 했다. 멀리서 봤을 때 너는 오해하기 쉬운 사람이었다. 나름 억울하고 할 말이 많을 일이 있을 때도 일정 부분 자신의 책임이 있다며, 그리고 그놈의 '도의' 때문에 그냥 자기가 모든 욕을 먹고 사라지기도 했다. 나 자신이 중요하기에 나에 대한 다른 말들을 견디지 못하고 정정하고파하는 나와 달리, 너는 묵묵히 스스로를 탓하는 사람이었다. 대화를 나누다가 간혹 스쳐 지나간 이들의 이름이 나올 때면, 너는 네가 가진 미안함과 그렇기 때문에 나름의 배려로 그들에게서 비켜섰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앞에서 실컷 센 척하는 모습을 보다가 정작 이런 여린 모습을 발견할 때면 너가 어떤 사람인지 갸우뚱하곤 했다.
촬영장에서 스탭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네 유서를 처음 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나는 정말 너를 몰랐구나, 너는 충분히 강한 사람이라고, 어딜 가든 잘 지낼 사람이라고, 그러면서 맥주 한잔 마시자던 그 연락들을 다 거절했는데. 10월 그날 이후, 사람들의 연락을 받는 대로 참 많이 만났다. 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잘하는 걸로라도 풀고 싶었다.
지금도 문득문득 눈물이 울컥하고 올라올 때가 많다. 네가 어떤 열정으로 모든 일에 임했는지를 잘 알다 보니 이 구조 속에서 허망히 꺼져버린 네 삶이 곧 내 삶과 같고 우리의 삶과 같다는 생각에. 그리고 한없이 단단해 보이던 네가 속으로 앓았을 아픔을 생각하면.
대선 후보들이 네 이름을 얘기하더라. 신나 했을 네 모습이 그려진다. 평소와 달리 조금은 덜 퉁명스럽게 반응해줄 수 있는데.
내 주변의 아픔은 내게 새로운 다짐의 돌을 하나씩 쌓아 올리게 한다. 나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4월 28일(금) 저녁 7시에는 시민추모제가 있을 예정이다.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대책위원회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tvn.honsul.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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