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가장 재밌게 읽었던 책. 좋아하는 카페에서 온전히 몰입한 이후 온몸의 힘이 빠졌던 기억.
머리가 커지고 마음은 좁아지고 귀는 점점 닫혀갈 때는 역시 소설. 누군가의 삶에 풍덩 빠질 수 있는 반가운 시간.
“사진 찍을 때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무척 평범한 사람,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날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까 그런 순간과 만났을 땐 잘 알아보고, 한 곳에 붙박아둬야 한다는 걸 알 정도로...”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 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등산이라니, 참 전형적으로 사신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가을 풍경 속에 안긴 두 사람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쩐지 두 사람이,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들 같아서였다."
"모교에서 첫 강의를 '트고', 이 고장 저 고장으로 강의를 나가기 시작했을 때, 고속도로 주변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좀 심란했다. 여행 중 몇 번 오간 길인데도 그랬다. 풍경이 더 이상 풍경일 수 없을 때, 나도 그 풍경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 순간 생긴 불안이었다. 서울 토박이로서 내가 '중심'에 얼마나 익숙한지, 혜택에 얼마나 길들여졌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내가 어떻게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 잘 보였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球)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등굣길에 이 책을 찾아보게 됐던 이유는 - 듣는 귀를 잃어간다는 생각에, 많은 것들을 피상적으로 접하고 흘려보내기만 할 뿐, 몰입하지 못하는 것 같아 가장 최근 몰입했던 기억을 되짚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