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사실 저 역시도 남성 리더가 무뚝뚝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여성 리더가 차가운 태도를 보이면 무의식적으로 좀 더 따뜻한 모습을 바라게 되더라고요. 저도 여성은 따뜻하고 친절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많이 놀랐죠.
저자: 저도 사회 초년생 때 10년 차 정도 되는 여자 과장님들을 보면서 '왜 저렇게 싸늘할까, 좀 더 친절할 수는 없나?'라고 생각하곤 했어요. 그런데 제가 한 6년 일해보니까 그때 그분들이 왜 그랬는지 알겠는 거예요. 싸늘함이 자기를 보호하는 막이 됐다는 사실을 저도 터득한 거죠. 그분들도 친해지면 좋은 분들이었는데, 처음부터 다정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면 만만하게 대하는 경우들이 생기니 '싸늘함의 막'을 두르셨던 것 같아요.
지혜: 이제는 필요 이상의 친절함과 다정함을 내려놓으려고 해요. 일을 할 때는 '불필요한 친절함'보다는 '쓸모 있는 싸가지 없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도 사회 초년생 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어서 친절하게 행동하려고 했는데요. 자신을 낮추면서까지 친절할 필요는 없다는 데 동의합니다.
민영: 뭔가 계기가 있어야 본인이 깨닫고 변하게 되죠.
에리카팕《언니, 밥 먹고 가》(81~85쪽)
23년 7월 29일,좀처럼 사계절을 알 수 없는 교보문고 매대에서 혼자 유유히 여름을 흥얼거리던 표지는 마치 제철 과일 같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평소에 잘 안 먹더라도 괜히 계절 바뀔 때마다 한 번씩은 집어 들게 되는 자두 복숭아처럼 자연스레 손이 뻗쳤다. 속 안엔 각자의 속도로 영글어가는 열 세명의 인터뷰이가 오밀조밀 차 있었다. 이거면 충분히 마음보신 좀 하겠다 싶어 구매한 책은 놀랍게도 몸보신 효과까지 있었다. 보다가 실제로 배고파졌기 때문이다. 한동안 바쁘고 번잡하다는 이유로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터라 모처럼의 식욕이 반가울 지경이었다. 식당에 들러 간만에 제대로 된 한 끼를 먹고 나니, 그제야 사람 사는 맛이 났다. '다 먹고살자고 근면도 하고, 성실도 한다는' 저자의 다정한 잔소리와 정성껏 차린 인터뷰 덕분이었다. 밥이 단순히 일을 위한 연로로만 치부되지 않도록 마음 영양부터 살뜰히 챙겨준 텍스트셰프의 책은언제 펼쳐 봐도 든든할 것이다.
24년 8월 8일, 《언니, 밥 먹고 가》의 출간 1주년 기념으로 [보연정]에서 진행된 북토크 역시풍요로웠다. 아무리 좋은 말도 가시를 빼곡히 붙여서 얘기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나쁜 말도 견디고 지나갈 수 있도록 혹은 밑거름 삼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는데 작가님은 책 그대로 후자이셨다. 그리고 참 우아하셨다. 오늘은 특별히 '뮤지엄 버전'으로 꾸며서 그렇다고 하시지만 제스처부터 귀걸이까지 모두 자연스러운 고상이었다.
책처럼 북토크도기깔나고 맛깔나게 말아주신 덕분에 두 시간이 파스타처럼 슈루룩 말려 들어왔다. 팟캐스트를 시작으로 조만간 더 많은 곳에서 빵빵 터지실듯하다.ㅤ
여담이지만 원래대로라면 평일 북토크 참석은 불가능했을것이다. 늘 화수목금토 밤 10시까지 수업을 하기에.그렇지만 생일과 좋아하는 작가의 북토크가 겹치는 기적 같은 날이 평생 살면서 얼마나 되겠는가? 다행히 여러 도움과 양해와 여름방학 덕분에 수업을 당길 수 있었고, 행복한 성덕이 될 수 있었다. 에리카팕 님과 보연정 님 그리고 같이 자리에 계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세상에는 정말 멋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캬!ㅤ 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