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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HOOP 리슙 Nov 12. 2023

정체성은 현재진행형


"나는 우물을 파는 사람이지,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다. 문학이든 신앙이든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을 가지고 우물을 파듯이 판다. 물이 나오면 다시 새로운 우물을 파기 위해 다른 땅을 찾아 떠난다."

이어령, [메멘토 모리- 너 두고 나 절대로 안 죽어]

    

우물을 파다가 잠시 시선을 거두려고 이번 브랜드 내러티브 워크숍(Brand Narrative Workshop)을 신청했다. 모집 글을 보고 직감했다. 지금 내게 딱 필요한 낯선 이구나. '자신과의 거리 두기'. 그림을 그리던, 옷을 만들던, 비주얼 머천다이징을 하던 중간중간 일부러 멀리 떨어져 전체를 바라보던 그런 일 말이다(일할 때도 오버뷰 안 보면 혼났지). 독서도 그런 맥락에서 여러 지점이 겹친다. 다만 이번에는 시각 이외에도 다른 감각들과 현실적인 실체가 필요했다. 타인 앞에서 발성되는 자신의 목소리와 문자로 써 보는 것처럼.


한 번 고개를 젖혔다 내리면 미처 못 봤던 게 보일 터였고, 역시나였다. 우물 안에서는 안 보였던 바로 그것..! 바로 우리의 '고객'이었다. 아직도 착 감기지 않는, 여전히 알 게 많은 학생과 학부모님....!


그동안 회사를 다닐 때 고객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부분이었다. 고객은 그 브랜드의 고객이었고, 나의 주 업무는 그 브랜드의 옷과 공간으로 고객에게 가닿는 일이었다. 활용할 자료는 풍부했다. 타깃 분석은 대학교 때도 좋아하는 일이었다. 분석한 바를 토대로 전략(또는 액션 플랜)을 짜고 적용하고 바로 달라지는 결과를 보는 것도 짜릿했다.


그렇지만 이제야 보니 그것도 어느 정도 규모 있는 회사에서 누릴 수 있는 행운이었다. 막상 실컷 만들어 놓은 우리 브랜드에서는 어떻게 파헤쳐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그냥 소홀히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익명으로 설문조사 링크 좀 돌릴걸. 그동안 구체화 좀 더 해놓을걸... 막상 따져보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후회가 엄습했다. 역시 사람을 잘 알려면 질문을 많이 하고 많이 들어봐야 한다!! 어디서 힌트가 활어처럼 튀어 오를지 모르니. 그래도 필요하단 것조차 몰랐다는 사실을 이번 워크숍 덕에 인지할 수 있었다. 잡힐 때까지 파보려 한다.


마지막으로 이 일이, 브랜딩이 끝이 없어 안도했다. 끊임없는 변화의 당위성을 얻은 거 같아 왠지 모를 위로가 됐다.

"아이덴티티= 프로세스"라는 말이 내게는 현재진행형 시제로 들렸는데, 곧 "어차피 이야기는 네가 죽을 때까지 계속될 테니, 그저 묵묵히 가라"는 뜻 같았다. 계속 파보기, 그러다 또 다른 곳을 파보기. 그것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였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과거와 현재를 있는 그대로의 '자산'으로 보고, 신중하게 톺아보는 만큼 미래는 설득력을 얻는다. 평생을 변하고 자라는 언어를 따라 브랜드 역시 움직이는 과정 그 자체였다. 브랜딩의 기본 속성이 밝게 떠올랐다.


목마른 자가 먼저 우물을 판다고, 누가 나를 먼저 알아봐 주길 하염없이 기다리지 않고 돌아다닌다. 질문의 수만큼 나의 시야가 넓혀지는 건 자명하다.


+ 이 글을 쓰던 중 문득 가장(사실 유일하게) 좋아했던 전공 수업인 이은정 교수님의 <패션 마케팅>이 떠올랐다. 브랜딩이라는 이름이 지금처럼 대중화되기 훨씬 오래전이었지만 언제나 수업의 중심은 "아이덴티티"였다. 그때도 참 흥미진진하게 들었는데. 그랬던 두 개가 갑자기 이렇게 훅 연결됐다. 그러고 보니 나는 원래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새삼 신기하다. 역시 세상은 메타포야.



여기서 '자산'은 과거와 현재에서 발굴한 것을 의미함.


칼 융의 개별화, 에릭슨의 상호작용


++ 또하나 생각났던 여준영 대표의 롱블랙 인터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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