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물을 파는 사람이지,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다. 문학이든 신앙이든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을 가지고 우물을 파듯이 판다. 물이 나오면 다시 새로운 우물을 파기 위해 다른 땅을 찾아 떠난다." ㅤ 이어령, [메멘토 모리- 너 두고 나 절대로 안 죽어]
ㅤ 우물을 파다가 잠시 시선을 거두려고 이번 브랜드 내러티브 워크숍(Brand Narrative Workshop)을 신청했다. 모집 글을 보고 직감했다. 지금 내게 딱 필요한 낯선 눈이구나. '자신과의 거리 두기'. 그림을 그리던, 옷을 만들던, 비주얼 머천다이징을 하던 중간중간 일부러 멀리 떨어져 전체를 바라보던 그런 일 말이다(일할 때도 오버뷰 안 보면 혼났지). 독서도 그런 맥락에서 여러 지점이 겹친다. 다만 이번에는 시각 이외에도 다른 감각들과 현실적인 실체가 필요했다. 타인 앞에서 발성되는 자신의 목소리와 문자로 써 보는 것처럼. ㅤ ㅤ 한 번 고개를 젖혔다 내리면 미처 못 봤던 게 보일 터였고, 역시나였다. 우물 안에서는 안 보였던 바로 그것..! 바로 우리의 '고객'이었다. 아직도 착 감기지 않는, 여전히 알 게 많은 학생과 학부모님....! ㅤ ㅤ 그동안 회사를 다닐 때 고객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부분이었다. 고객은 그 브랜드의 고객이었고, 나의 주 업무는 그 브랜드의 옷과 공간으로 고객에게 가닿는 일이었다. 활용할 자료는 풍부했다. 타깃 분석은 대학교 때도 좋아하는 일이었다. 분석한 바를 토대로 전략(또는 액션 플랜)을 짜고 적용하고 바로 달라지는 결과를 보는 것도 짜릿했다. ㅤ ㅤ 그렇지만 이제야 보니 그것도 어느 정도 규모 있는 회사에서 누릴 수 있는 행운이었다. 막상 실컷 만들어 놓은 우리 브랜드에서는 어떻게 파헤쳐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그냥 소홀히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익명으로 설문조사 링크 좀 돌릴걸. 그동안 구체화 좀 더 해놓을걸... 막상 따져보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후회가 엄습했다. 역시 사람을 잘 알려면 질문을 많이 하고 많이 들어봐야 한다!! 어디서 힌트가 활어처럼 튀어 오를지 모르니. 그래도 필요하단 것조차 몰랐다는 사실을 이번 워크숍 덕에 인지할 수 있었다. 잡힐 때까지 파보려 한다. ㅤ
마지막으로 이 일이, 브랜딩이 끝이 없어 안도했다. 끊임없는 변화의 당위성을 얻은 거 같아 왠지 모를 위로가 됐다. ㅤ "아이덴티티= 프로세스"라는 말이 내게는 현재진행형 시제로 들렸는데, 곧 "어차피 이야기는 네가 죽을 때까지 계속될 테니, 그저 묵묵히 가라"는 뜻 같았다. 계속 파보기, 그러다 또 다른 곳을 파보기. 그것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였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과거와 현재를 있는 그대로의 '자산'으로 보고, 신중하게 톺아보는 만큼 미래는 설득력을 얻는다. 평생을 변하고 자라는 언어를 따라 브랜드 역시 움직이는 과정 그 자체였다. 브랜딩의 기본 속성이 밝게 떠올랐다. ㅤ ㅤ 목마른 자가 먼저 우물을 판다고, 누가 나를 먼저 알아봐 주길 하염없이 기다리지 않고 돌아다닌다. 질문의 수만큼 나의 시야가 넓혀지는 건 자명하다. ㅤ ㅤ + 이 글을 쓰던 중 문득 가장(사실 유일하게) 좋아했던 전공 수업인 이은정 교수님의 <패션 마케팅>이 떠올랐다. 브랜딩이라는 이름이 지금처럼 대중화되기 훨씬 오래전이었지만 언제나 수업의 중심은 "아이덴티티"였다. 그때도 참 흥미진진하게 들었는데. 그랬던 두 개가 갑자기 이렇게 훅 연결됐다. 그러고 보니 나는 원래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새삼 신기하다. 역시 세상은 메타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