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도시 살생부 '압축도시'만이 살길이다] 서평

<도시 재생을 바라보는 효율성의 관점을 비판하며>

by 마을너머

1. 압축도시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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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래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맞닥뜨릴 지방도시의 미래는 “이보다 더 안 좋을 수는 없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차악의 선택’을 고민해야 한다.

2. 지방도시 쇠퇴

3. 미래의 삶에 대한 고민 우린 어떤 삶을 살게 될까?

4. 어떤 선택이 우릴 행복하게 할 것인가?

5. 돈의 관점 말고 사람의 관점

6.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마강래는 그의 저서 『지방도시 살생부』를 통해 통렬하게 현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도시재생 사업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인구감소로 힘겨워하며 그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지방정부의 몸부림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해법으로 ‘스마트 축소’ 전략을 소개하며 압축도시만이 살 길이라고 웅변하고 있다. 그의 진단은 적확하며 해법은 효율적이다. 하지만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다.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한 불편함 때문이었을까?

이 책 ‘지방 도시 살생부’를 읽은 시기는 우연하게도 내가 LH 테마형 매입임대 시범사업 공모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시기와 겹친다. 압축 도시적 관점에서 본다면 인구 2200명이 사는 덕산면에 LH가 시중 임대료의 50%만 받는 임대주택을 보급한다는 결정을 한다면 정말 잘못된 선택일 것이다. 이런 현실 상황이 ‘스마트 축소’에 대한 내 생각에 영향을 끼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상황에 따라 세상을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들어가며...

골고루 나눠 갖지 말자!

어느 놀부 심술보를 턱에 붙인 혹부리 영감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려서부터 콩 한쪽도 나눠 먹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한국에서 골고루 나눠 갖지 말라는 말은 아주 자극적인 언사이다. 하지만 저자는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을 통해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의 메가 트렌드 시대에 지자체들이 살아남으려면, 적어도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하려면 저 정도의 자극적 언어를 선택해야 사람들이 관심이라도 가져주리라 판단한 듯하다. 20년 후 30%의 지자체가 파산하게 된다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하는 자기 확신이 있다면 그리고 그 해법을 알고 있다면 더한 말인들 못 할 이유가 없다.


1. 압축도시만이 살길이다.

지방 정부들의 눈물겨운 지방 살리기는 그리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인구가 줄고 있는 시와 군이라면 아무리 많은 재정을 투입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지방자치단체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축소를 인정해야 한다. 스마트한 축소만이 공멸을 막을 수 있다. 지방의 모든 도시가 수도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다. 모든 지방 도시가 수도권의 기능을 가질 필요도 없다. 행정이나 교육, 특정 산업이 특화된 지방 대도시가 수도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실현 가능한 방법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또한, 흩어진 인구와 산업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흩어진 인구와 산업을 모으지 않고 원도심은 비어 가고 외곽의 주거지역이 확대되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극심한 예산 낭비와 함께 유령도시를 보게 될 것이다. 끝으로 지방 소도시에 맞는 일자리를 육성해야 한다. 마을기업을 육성하고 대형 체인점의 무분별할 입점을 막을 수 있도록 일정 규모 이상의 면적을 제한하는 조례를 만들고 대형 마트의 규제를 강화하는 등 도시 스스로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2. 지방도시 쇠퇴

도시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곳에 그 도시가 생길만한 이유가 있기에 생겼을 거라는 사실이다. 석탄산업이 발달하던 때엔 정선, 태백 등지에 탄광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였고, 물길을 이용한 물자의 수송이 중요하던 시기엔 전국의 포구들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원산과 함께 전국 2대 포구로 불리었고 평양 대구와 함께 조선 3대 시장에 손꼽혔으며 현대식 은행 중 하나였던 한일 은행이 서울, 부산에 이어 세 번째 지점을 낸 도시, 상업, 유통, 해운의 중심지였던 강경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저 옛 영광의 전리품으로 간직하고 있는 젓갈 시장만이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1914년 호남선의 개통 등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강경은 빠르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지금 같은 도시재생사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의지가 있는 정부도 없었다. 한때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상업, 수운의 중심도시는 그렇게 우리 기억에서 사라졌다. 지금은 그 시절 지어진 근대 건축물을 중심으로 관광산업을 일으켜 보기 위해 논산시가 고민하는 것으로 보이나 그 성과가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만약 이런 일이 현대에 일어난 일이라면 논산시장은 어떤 정책을 펼 수 있을까? 해운의 중심지이고 그 역량을 바탕으로 전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상업 유통의 중심지가 급변하는 운송수단의 교체 때문에 그 지위를 잃게 될 처지에 놓였다면, 그것이 운송수단의 교체이든 생산기술의 변화이든 말이다. 아마도 지자체는 그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해 각종 정책지원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지원에도 불구하고 100년 전 일어난 일은 현대에도 똑같이 재현되지 않을까? 조선산업의 쇠퇴로 일자리가 줄어들기 시작한 거제의 예나 미군이 떠나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두천, 자원 고갈로 힘겨워하는 정선 태백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특정 산업에 치우쳐 있거나 특정 소비집단 혹은 지하자원에 기대어 발달한 도시들은 급격하게 그 지위를 잃었고 차이가 있다면 이는 비교적 현대에 일어난 일이기에 정부에 의해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었고 법을 만들고 혜택을 주어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만들어 주거나 특정 산업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등 도시의 쇠퇴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아서 막대한 재정을 들여 만든 각종 사업도 근본적으로 도시의 쇠퇴를 막지 못하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그 생명이 다한 도시들을 인위적으로 다시 세울 방법이 많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유일한 방법은 유의미한 일자리를 창출하여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게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고용할 수 있는 직장은 대다수가 수도권에 모여있고 기업들도 집적의 이득을 누리기 위해 서울로 서울로 모이고 있는 현실이다. 거기에 더해 아파트를 통한 부의 창출이라는 전 국민적 도박판이 성행하는 마당이어서 국민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의 수도 이전 공약도 일개 판사들이 경국대전이니 관습 헌법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엎어버리는 상황에서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벗어나는 일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이 위기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3. 미래의 삶에 대한 고민 우린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아주 먼 옛날 기록이 없던 시절 인류는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 자기 무리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고 안정적인 먹거리를 구할 수 있는 곳에 최초의 정착지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후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너른 들판과 큰 강이 있는 곳에 도시가 만들어지고 문명이 시작되었다. 이후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인류의 대부분(유목민은 제외하고)은 농업에 종사하였고 이는 인류의 등장 이후 가장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서기 500년에 살았던 농사짓는 김 씨나 서기 1500년에 살았던 농사짓는 박 씨는 변함없는 농부의 삶을 살았다. 1000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생활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대는 다르다. 2011년의 나와 2021년의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겨우 10년이 흘렀을 뿐이지만 그 변화는 과거 1000년의 변화와는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변화할까? 미래에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답을 알고 있다면 큰 부자가 되거나 시대의 영도자가 되지 않을까? 다만 대체로 동의하는 방향은 있다. 한국만 놓고 본다면 ①출산율, 출생률의 지속적 감소로 인한 노동인구의 감소. ②생활 수준의 향상과 의료혜택 및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노인 인구 증가. ③고도화 자동화되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필요 노동인구의 감소 등 위에 열거한 현상만으로도 미래의 모습이 그리 밝아 보이진 않는다. 인구 문제는 도시의 존속 여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고 『지방도시 살생부』에서도 인구 문제를 지방도시 소멸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이런 현 상황에서 모든 지방도시를 살리기 위해 산업단지를 조성하거나 관광을 위한 축제를 만들거나 원도심을 비우고 외곽의 신도시를 만드는 등 무분별하게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고 이를 막기 위해 스마트 축소 전략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압축적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깊이 공감한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현실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흔히 미래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그리면 유토피아라 하고 부정적으로 그리면 디스토피아라고 이야기한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극단적인 빈부의 격차와 일자리가 없는 지하도시 부랑자의 삶은 논외로 하고 최대한 긍정적인 미래의 모습을 그려 본다면 인공지능과 자동화되는 공장의 영향으로 주 4일 일하고 메타버스 가상현실의 실현으로 노동 대부분을 가정에서 하며 기본소득을 바탕으로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가 사라지는 삶을 살게 된다면 도시는 어떤 형태여야 할까?


4. 어떤 선택이 우릴 행복하게 할 것인가?

스마트 압축을 통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 이야기하지만 모여 살기에 생기는 부작용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집값의 상승, 범죄율 증가, 환경의 오염 등 집적의 장점이 효율적 자원의 이용이라면 그 이외의 것은 모두 단점 아닐까? 국토의 활용 측면에서 본다면 압축도시로 인해 사람이 살지 않게 되는 농촌 지역은 어떻게 할까? 국내 농업이 차지하는 총생산 비율이 낮다고는 하나 그나마 근근이 지키고 있는 농업을 포기하자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수십 킬로미터 농장으로 출퇴근을 해야 할까?

압축적 도시가 기존의 도시들을 바탕으로 외곽으로의 확장을 지양하고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이야기라면 미래의 삶의 형태에도 적합한지 고민해 봐야 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압축도시는 사람의 삶의 관점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는 삶의 터전이고 공간은 사람의 삶을 규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 생각한다. 그런 공간의 구조에는 반드시 거리가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압축적 환경의 아파트 생활과 집적된 공간에서 살도록 강요받아 왔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 중소도시들이 쇠퇴의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라는 현실에 밀려 다시 한번 압축된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 행복의 관점에서 본다면 적합한 해답 일지 고민스럽다. 어떤 공간과 형태가 인간에게 더 유익하고 인간을 행복하게 할까? 모든 개개인이 다 같은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집적된 공간 형태를 더 선호할 수 있고 누군가는 자신만의 공간을 여유롭게 사용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없이 대한민국 모든 국토가 효율성의 논리에 맞춰 집적된 형태의 도시로만 존재한다면 이는 문제이지 않을까?


5. 돈의 관점 말고 사람의 관점

『지방도시 살생부』를 읽으며 계속 든 생각은 왜 모든 관점이 정부 혹은 지방정부의 재정과 관련된 이야기만 하지? 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지방정부의 재정을 잘 사용하는 방법에 관한 참고서랄까? 재정으로 필요 없는 산업단지 만들지 말고, 축제 만들지 말고 외곽 아파트 단지 만들지 말고 압축적으로 잘 써야 적자 안 나고 파산 안 한다. 쓸데없이 넓게 퍼져 살아봐야 도로 깔고 유지 보수하는데 ‘돈’ 많이 들고 수도관 길어지니 물 새서 ‘낭비’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압축적으로 모여 살면 사람이 더 행복할까? 그렇게 아끼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 행복한 삶의 형태는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 혹자는 당장 도시 하나가 사라질 판인데 한가한 소리 한다 할 수도 있다. 맞다 당장 문경, 태백, 정선의 인구가 몇만이 아닌 몇천으로 줄 수도 있다. 어떤 지방 소도시는 아예 인구가 0명이 될지도 모른다. 그게 재정을 잘 못 써서 그런 걸까? 그 돈을 다르게 쓰면 일자리가 늘어날까?


6.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지방도시 살생부』에서는 지방 도시가 쇠퇴하는 이유로 출생률이 줄고 그나마 있는 인구도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떠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 왜 좋은 일자리는 대도시에만 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합리성과 효율성이다. 합리성과 효율성은 공장들을 집적화하는 것이 유리하다 판단했다. 부모들은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다. 합리성과 효율성은 여러 명의 아이를 낳아서 투자 가능한 재화를 분산시키는 것보다 한 아이만 낳아서 집중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판단했다. 아이를 지방에서 키우는 것보다 서울에서 키우는 것이 더 유리하다 판단했다. 본사를 지방에 두는 것보다 서울에 두는 것이 더 유리하다 판단했다. 이 모든 판단은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만 그 결과는 지방 쇠퇴와 수도권 포화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스마트 축소와 압축적 도시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합리성과 효율성만을 가지고 생각한다면 왜 압축도시에 남아있겠는가? 서울로 가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데 말이다. 근본적으로 압축도시는 수도권 집중화 현상으로 인한 지방 도시 쇠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 나가며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있겠으나 도시가 그 생명력을 다 하면 사라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논산시 강경읍이 전국 3대 시장에서 그 지위를 잃고 인구 1만도 안 되는 소읍으로 변한 것이 뭐 그리 큰일이겠는가? 맛있는 젓갈 시장으로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으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 아닐까? 하지만 근본적으로 서울 중심의 대도시가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빨아들이고 있는 거대한 구심력의 문제라면 이는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지방 도시들을 효율적으로 압축한다는 구상은 근본적인 해결의 방법은 아닌 것 같다. 효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집적의 효과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지방도시 쇠퇴의 근본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효율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기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대를 쌓아가며 서울로 서울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여온 결과가 지금의 현실 아닐까? 그렇다고 지금처럼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산업단지를 만들거나 온 나라를 썰렁한 축제의 도시로 만드는 천편일률적인 방식의 재정지출은 지양해야 함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하는 것 아닐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중심이 돈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인데 수도관이 좀 더 길면 어떻고 도로가 좀 더 길면 또 어떻겠는가 정부가 그 돈 아까워 말고 사람들 편의를 위해 투자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사람이 돈보다 더 귀하다는 신호이지 않을까? 좀 덜 좋은 직장에서 좀 덜 벌면서 살아도 국가가 나를 보호해 준다는 생각을 온 국민이 한다면 왜 아이를 안 낳겠는가? 불안하지 않으면 출산율은 올라갈 것이다. 내 자식이 지방대를 나와도 직업을 구하는 데 문제가 없다면 내 고향을 떠날 이유가 있겠는가? 미래 사회는 더는 노동 집약적 산업의 시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효율성 극대화를 위한 노력보다는 다름에 대한 존중과 지향의 다극화 추구가 훨씬 경쟁력 있는 사회로 인정받지 않을까? 집적의 효율 추구보다 비효율의 심미적 가치가 더 존중받는 사회가 온다면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해질 것이다. 그 결과로 문경시는 문경면이 될 수도 있지만, 수도권의 집중화 현상도 줄어들지 않을까? 그 문경 면에서 행복한 사람 2000명이 산다면 굳이 10만 문경시를 그리워할 필요가 있을까? 온 나라가 행복한 2000명 마을로 가득한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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