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에 집중하다가 알맹이를 놓치고 있지는 않나요?
스타트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용어, 린스타트업.
린스타트업은 빠르게 제품을 만들어 출시하고 이에 대한 성과와 고객 피드백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선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경영 방법론입니다. 최소한의 기능을 담은 MVP (Minimal viable product)를 출시해 고객 피드백을 얻고 다음 개발에 반영하는 과정을 무한 반복하는 거죠. 이 MVP가 고객이 원하는 모든 기능의 집합체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저도 린한 조직을 표방하는 스타트업에서 일을 해봤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저는 경영자들이 갖고 있는 린 스타트업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MVP를 통해 테스트해야 하는 것은 우리 서비스가 가진 차별점이 고객의 구매 의욕을 불러일으키는지입니다. 이를 테스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MVP에 우리 제품의 USP가 들어가야겠죠. 그런데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 특히 창업 경험이 적은 초보 대표들은 MVP를 빨리 출시하는 데에 급급합니다. 조직이 테스트해야 하는 알맹이는 다 뺀 채 겉 껍데기만 출시하는 거죠.
교육 스타트업에서 직무 교육 플랫폼 런칭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플랫폼을 기획하는 당시에는 단순히 강의 영상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프로젝트(과제) 수행과 강사의 피드백을 통한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커리큘럼 제공 + 주 1~2회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통한 강사와 수강생의 직접 소통(질의응답, 토론 등 라이브 콘텐츠 제공) + 학습 매니저의 수강생 밀착 관리를 통해 온라인 환경에서도 강사와 수강생의 적극적인 인터랙션이 발생하는 플랫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이트의 빠른 런칭을 바랐던 경영진의 의사결정으로 인해 결국 동영상 강의 + 수강생 실습 프로젝트 피드백으로 플랫폼을 굉장히 단순화하여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수강생의 실습 프로젝트와 피드백의 경우 기존의 온라인 강의 사업을 진행하던 플레이어들이 쉽게 도입할 수 있는 특징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차별점 없이 서비스를 출시한 거죠. (개별 코칭권을 추가 구매하면 강사 이메일을 통해 수강생의 프로젝트에 피드백하는 방법으로도 충분히 과제에 대한 피드백이 가능합니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없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인터랙션의 '인'자도 못 만들고 서비스를 접어야 했습니다.
다음은 건너 건너 듣게 된 여성용품 스토어의 이야기입니다. 이 회사는 다이어리에 월경 정보를 기록하면 생리 주기에 맞춰 생리용품을 필요한 만큼만 정기 배송하는 서비스를 기획했습니다. 생리대를 필요한 만큼만 필요한 시기에 배송하면 집에 쌓아둘 필요도 없고 편리하겠죠. 경쟁사도 적고요. 서비스 기획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린하게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고 사용자를 확보하기 위해 정기배송 기능 없이 생리 다이어리 기능만 갖고 앱을 우선 출시해버린 겁니다. MVP를 통해 테스트해야 했던 알맹이를 빼고 그냥 빨리 출시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10대 여성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진행했는데 이도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10대 청소년은 보통 직접 생리대를 구매하지 않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마트에서 장 볼 때 생리대를 함께 구매하거나 어떤 사람들은 그냥 부모님이 사주시는 생리대를 그냥 쓰기도 합니다. 생리 다이어리로 포지셔닝하면서 10대 회원을 수만 명이나 모았지만 서비스의 핵심이었던 생리대 정기 배송 및 여성용품 스토어 기능을 오픈하였을 때 전환으로 이어지지가 않는 거죠. 빠른 출시와 회원 확보라는 단기적 성과에 급급하다 보니 정작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테스트할 수 있는 고객을 타겟팅하지 못한 거죠.
린하게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왜 우리가 생각한 대로 성장하지 못할까?
이런 고민을 하고 계셨다면 우리가 정말 린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그냥 "빨리"에 초점을 맞추고만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세요. 우리의 핵심이 MVP 안에 들어있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와꾸가 후지더라도, 이 MVP로 얻을 수 있는 숫자 (회원수 같은 정량적 지표)가 낮더라도 알맹이는 놓쳐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