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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쁜샘 Jan 01. 2023

68세, 딸 바보

흥, 나도 엄마 아빠 있거덩

올케에게 톡이 왔다.

뼛속까지 경상도인 동생은 톡에서

응, 아니

정도가 다인데

서울뇨자 올케를 만나니 가끔 주고받는 톡이 즐겁다.


시누이 최고의 미덕은 올케에게 가급적 연락하지 않는 것이라고 먼저 시누이가 된 친구가 귀띔해주었다.


누나가 3명인 자기 남편과 결혼할 때

첫 만남의 자리에서 3명의 시누이들이

우리 갸한테 연락 잘 안 한다

니한테도 안 할 거니까 우리 생각은 하지 마라

그냥 외동이라 생각해라


그러면서 한때 일진이었다는 형님이

니 우리 상미이 버리면 죽는데이

하며 살벌한 웃음 한방 날려주시더란다.

 

살다 보니 너무 좋은 형님들이지만,

3분의 형님이 연락을 잘하지 않으니 시누이 신경 쓸 일 없고

도리어 자기가 먼저 연락하게 되어 좋더라며 니도 그러란다.


오지랖 넓은 제 친구가 동생 결혼 생활에 시누이 노릇 제대로 할까 봐 원천봉쇄 시킨다.


그런데 조카가 생기니 자꾸만 연락을 하고 싶다.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조카의 영상 좀 보내달라 하고 싶다.

그래도 친구가 귀띔한 삶의 지혜를 실천하려 참아본다.


그러던 올케에게 사진 한 장과 메시지가 왔다.


형님, 축하드려요


메시지 위로는 오늘 받은 내 표창장이 있고 그 밑으로는 펭수가 씰룩씰룩 엉덩이를 흔들며 꽃가루를 날리고 있다

 

우리 아빠가 동생네한테 메시지를 보냈나 보다.


횽님은 우리 집의 자랑~~ 기둥~~ 호호호~~~


경상도 사람, 그중에서도 안동 출신 우리 가족이 평소 주고받는 어휘들이 아니다.

서울 올케가 들어오니 집안의 어휘도 말랑말랑해진다.

내 마음도 간질간질하지만 왠지 쑥스럽다.


이 톡 인규가 보면 진심 비웃을 거야


했더니

아녜요 아까 인규 씨도 오~~~~ 이랬어요

자랑스러워하던걸요


한다


남동생에게 오~~~~

는 굉장한 감정의 표현이요 칭찬과 동의어다.


정말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응, 아니 일색의 동생이

오~~~~

했다고 하니 기분이 좋다





학교에서 상을 받았다

교육감 표창이다

이번 상은 스스로도 이 정도 했으면 표창값 했다 싶다.

올해, 그만큼 열심히 했다.


신설된 학급에 와서 3명으로 시작한 특수학급이 3년 만에 두 배가 되었다.

두 배라고 해도 6명에 한 명이 더 보태진 일곱 명이지만, 법정 정원을 넘은 숫자다.


학생수와 상관없이 예산은 정해져 있다 보니 돈 준다는 사업은 이 것 저것 따왔다.

나랏돈은 먼저 받는 사람이 임자인 눈먼 돈이라는데 학교에 들어오는 나랏돈은 10원도 감사 대상이니 돈과 함께 일도 많아졌다.


그래도 괜찮다.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니까.

프로그램 운영 계획을 보니 ESTJ, 이 여자도 콧노래가 살살 나온다.

어쩔 수 없는 특수교사인가 보다.


170만 원으로 일 년간 미술심리 강사도 부르고 장애이해교육까지 하려니 부족한 예산에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본다. 돈은 부족한데 하고 싶은 건 많다.

돈을 조금 쓰는 대신 품을 좀 더 들이기로 했다.

재료를 사서 배분하고 학습지는 직접 만들어 전교생 숫자만큼 칼라 프린트를 했다.

동영상도 찍었다.

얼굴이 나오는 건 왠지 쑥스러워 활동 과제와 손, 목소리만 나오는 영상을 찍었다.

이야기를 잘한 것 같은데 경상도 사투리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다시 표준어 뉘앙스 장착하고 찍으니 얼추 괜찮은 영상이 만들어졌다.


학생들도, 선생님들 반응도 괜찮았다.

품을 들인 보람이 있어 뿌듯하다.


전교생 대상으로 활동을 했으니 남은 예산은 오롯이 우리 반 아이들 차지다.

미술심리 선생님들을 격주로 모시기로 했다.

그런데 마침 미술치료 강사 파견을 받으시겠냐고 지역 한 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올레, 횡재했다.


매주 계획했던 수업을 예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격주로 하고 있었기에 단번에 오케이를 했다.

시 외곽에 있는 학교가 장애학생 미술 수업을 위해 강사를 모시려 하니 오겠다는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먼저, 그것도 미술치료 강사를 무료로 보내주겠다 하니 절이라도 하고 싶다.


일 년간 그렇게 우리 반 학생들은 미술심리, 미술치료 수업을 매주 듣고 조끔씩 조금씩 변했다.


물감을 주면 칠갑을 하던 녀석들이 찬찬히 그림을 즐기게 되었다.

형태가 없던 다운증후군 아이의 그림에 눈코입이 생겼고 심지어 웃고 있다.

칼로 목을 자르는 사람, 배를 찔러 피가 나는 사람을 주로 그리던 차갑고 무시무시했던 2학년 아이의 그림에 따스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작게 계획했던 교내 작품 전시회가 학교 연구학교 발표 일정과 겹치면서 지역 관내 선생님들과 교육청 장학사님들이 보고 가시고 학부모님들이 와서 꽃도 달아주셨다.

우리 반 학생들이 미술대회에서 상도 받고, 한 명은 초등부 대상으로 교육감상도 받았다.




부모님께 상장을 찍어서 보내드렸는데

그걸 동생 내외에게 보내셨나 보다.


남들은 내가 북을 치든 장구를 치든 별관심이 없는데

부모님은 관심이 많다. 대통령 표창도, 교육부장관 표창도 아닌 교육감 표창이지만 자랑스러워하신다.


11살 아들과 9살 딸에게 엄마 상 받았다고 하니

와~~

한번 보고는

엄마 보드게임하자

아냐 솜사탕 만들자 한다


지그들 상 받았을 때는 칭찬도 엄청하고 벽에 붙여두고 뷔페도 먹으러 갔는데.

에라이.


그래도 남편은 상장수여식을 해준다

표창장

머시기 초등학교 교사 땡땡땡

까지만 듣고 배고프니 밥 해달라고 했다.

남편이 어묵탕을 끓여줬다.


올케가 파티 안 하냐고 하길래

낼모레가 필리핀 출국이라 파티대신 짐 싸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게 파티지 뭐.

아니 해외여행 짐 싸기 하니 파티보다 더 좋지 뭐.


책을 많이 쓰는 교육유튜버 한 분이 말하더라.

책을 하도 많이 출간하니까 아들 둘은 이제 새 책이 와도 뜯어보지도  않는단다.

남편도 돈이 벌리기 전까지는 관심도 칭찬도 없었단다.

돈이 벌리기 시작하니 이제 관심도 생겼다고.


세상은 깜짝 놀랄 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다

이걸 기억하면 글 쓰는 작가에게 생기는 섭섭병, 서운병이 사라진단다


베스트셀러작가, 구독자가 10만이 넘어가도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으니

남들 의식, 서운병은 쿨하게 버리란다


그래도 괜찮단다

시골에 계신 70이  넘으신 부모님이 돋보기를 끼고 작은 글자를 하나씩 읽어나가시니까.

노인네들이 본인과는 상관도 없는 교육서, 육아서를 꼼꼼히 읽으시며 딸을 자랑스러워하신단다



그래서 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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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으면 동생네한테 자랑하고

또 친구 모임 가서 커피 한잔 돌리며 자랑하실

68살 딸바보, 우리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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