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순조로웠다.
퇴근 후 지친 몸을 뉘어 아이가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는 것도
충분히 익숙해질 만큼 시간이 흘렀다.
아이의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우리는 마음껏 놀고, 책 읽고,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 아이를 봐주시던 친정엄마가
일을 마치시고 우리 집에 오시는 시간이
뒤로 밀리는 상황이 생겼다.
하원시간 이후 육아 공백이
갑작스레 2시간 정도 생겼다.
아이는 유치원을 마치고 피아노, 미술,
태권도 학원을 매일 두 군데씩 돌아야
친정엄마나 나, 둘 중 누군가의 퇴근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육아 공백을 메우기 위하여
학원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 당시에 아이 또래들은
예체능은 물론이고 공부방, 혹은 학습지
하나 정도는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들에게 아이가 힘들어하지 않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대답했다.
"우리 애는 너~무 재밌대요.
그리고 예체능 위주라서 힘들어하지 않아요."
다른 아이들이 재밌어한다길래
우리 아이도 그렇겠거니 생각했다.
집에서도 혼자서 그리고, 만들기 하는걸
좋아하니깐 퍼포먼스 미술학원도 재밌어하겠지?
피아노는 집에서 나랑 같이 놀이하듯이
배워봤고, 아기 때부터 클래식도
들어왔으니깐 괜찮겠지.
내가 일 하느라 애가 몸으로
에너지 발산할 일이 없잖아.
그러니 태권도 학원에서 에너지 발산해야지.
요즘은 태권도뿐만 아니라 줄넘기랑 생활체육도
요일별로 돌아가면서 한다는데 훨씬 재밌겠지.
학원 선정도, 차량 픽업-드롭 시간도
여간 맞추기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을 세팅했다.
그리고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엄마. 나 학원 계속 다녀야 해?"
한 달 즈음 지난 어느 날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술학원에서 작품을 가져와서 자랑도 하고,
피아노나 태권도 학원에서 보내오는 사진에는
항상 아이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담겨있어서
큰 걱정을 않고 있었는데.
아이의 예상치 못한 질문은
화창한 하늘에 떨어진 날벼락이었다.
이유를 묻자 아이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태권도는 같이 수업을 듣는
아이들의 성향이 활발하고 활동적이라서
정적인 것을 즐기는 아이에게 버거웠나 보다.
피아노는 선생님이 10분 정도 같이 계시고
나머지 시간은 독방에서 연습을 하는데
독방에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워서 울었다고 한다.
미술은 아이는 다른 색, 혹은 다른 재료로
표현하고 싶은데 선생님은 집에 들고 갈 결과물이 부모에게 보이기 때문에 최고의 결과물을 위해서 색과 재료도 정해주셨나 보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태권도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예상은 했으나 피아노와 미술은 꿈에도 생각 못한 부분이었다.
집에서는 혼자 방에 들어가서 놀아도 괜찮았고, 미술은 워낙 아이가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거부반응이 당황스러웠다.
학원 선생님들께 상담을 해도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속상한 마음이 컸지만 학원 선생님들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그렇게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일곱 살 여름방학이 끝난 직후에
차로 10분 떨어진 새 보금자리로 이사 가게 되었다.
다니던 학원들은 차량 지원이 되지 않아서
그만둬야 했다.
그만두니 오히려 속 시원했다.
친정엄마도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는걸 보기
안타까우셨던 건지 직장에 이야기해서
어렵사리 시간을 다시 원래대로 맞춰주셨다.
육아 공백이 발생하지 않으니
학원을 가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다니던 학원을 안 보내자니
두 달 동안 들인 돈이 아까웠다,
아이가 힘들어한다고 금방 그만둬버리면
쉽게 포기하는 어른으로 자라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우리 아이와 잘 맞는 다른 학원이 있을 거야.
이사한 곳 근처에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몇 달 뒤면 학교에 입학을 하기 때문에
마냥 집에서 놀게 하는 것도 어쩐지 불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다행스럽게도
마땅한 학원이 없었다.
첫 번째 실패를 겪고
학원을 고르는 기준은 이러했다.
첫째, 차량 지원이 될 것
둘째, 부모에게 보이는 것보다
아이를 바라보는 선생님이어야 할 것
셋째, 지나친 선행보다는 아이 속도에 맞게
현행과 복습 위주로 진도를 나가야 할 것
이러한 조건은 많은 학생이 수업받는
학원에서는 맞추기가 어려웠다.
아니면 내가 그런 학원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
결국 나는 학원을 보내고는 싶었으나
내 기준에 맞는 학원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가정에서 코칭하는
자기 주도 학습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자기주도학습.
들어는 봤지만 막막했다.
그렇다고 모든 학습을 과외로 할 수도 없고,
워킹맘이 옆에 붙어 앉아서 하나하나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의 이런 답답한 마음은 아랑곳 않고
학원을 안 가게 되어서 아이는 무척 좋아했다.
이사를 한 데다가 학원도 안 가서
심심해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아이는 유치원에서
친구랑 많이 노니깐 괜찮다고 쿨하게 말했다.
그래, 네가 좋으면 됐다.
너의 웃음, 그거면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