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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다는 한마디

by 민수석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서

25년을 회사에 바친 김 부장이 명예퇴직을 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아내는 조용히 다가가

말 대신 따뜻한 포옹을 건넵니다.


그리고 아주 짧지만 진심이 담긴 한마디.


고생했다, 김 부장.”


앞으로 무엇을 할 건지 묻지 않고,

책임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지난 세월을 잘 버텨온 사람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위로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리고 문득, 첫 번째 해고를 당했을 때의 내가 떠올랐습니다.


그때의 나는 어땠을까.

그동안 애써온 나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준 사람은 있었을까.

되돌아보니 대부분의 말은

앞날에 대한 걱정과 막막함을 더 얹는 이야기였습니다.


회사에서는 더는 필요 없는 사람처럼 취급받고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떠밀린 김 부장이었지만,

적어도 가정에서는 인정받고 위로받았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지난 25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런 위로는

떳떳하게 살아온 시간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회사라는 세계에서는 누구나 대체 가능한 존재일지 몰라도

가정에서만큼은 단 하나뿐인 사람이니까요.


두 번의 정리해고를 겪었던 나 역시

언젠가 마주하게 될 마지막 출근을 생각하며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소망이 생겼습니다.

마지막 날, 가족과 치킨을 먹으며

“그동안 고생했어”라는 따뜻한 저녁을 맞이할 수 있기를.

그 장면만 떠올려도 오늘을 조금 더 힘내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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