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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애 Jan 28. 2024

열정적인 어른께 박수를

며칠 전 치과에 다녀오는 길, 8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허둥대며 지하철에 오른다. 

'여기에 적힌 곳을 찾아가는데'라며 옆에 있던 나에게 쪽지를 보여준다. 거기에는 '인천 남동체육관'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인터넷을 열어 확인한 후 자세히 알려 드렸는데 못 미더웠는지 옆에 있는 젊은 아가씨에게 또 물어본다. 그 아가씨도 역시 핸드폰을 꺼내 자세히 설명해 준다. 또 나에게 물어본다. 어디서 갈아타야 하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두 번을 갈아타야 하고 시간은 두 시간 정도 걸리겠다고 알려 드렸다.

 

할머니는 또 나에게 트로트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본다. 나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지하철에 사람들이 많은데 큰소리로 말하는 할머니와 대화하기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랑곳없이 할머니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할머니가 지금 남동체육관을 찾아가는 이유는 이번 주말에 트로트가수 콘서트를 보러 가야 하는데 그날 한 번도 안 가본 곳을 찾아가려다 늦기라도 하면 낭패이니 오늘 미리 가는 연습을 해 보는 거란다. 오늘 뿐만이 아니라 내일은 버스로 가보고 지하철과 비교해 당일 편리한 것을 이용할 거라고 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또래의 할머니가  나이를 물어본다. 82세라고 하니 자기랑 갑장이라며 금방 친해진다. 


갑장할머니가 요즘 트로트 공연 티켓사기가 어렵다던데 어떻게 샀느냐고 물어보니 손자가 사주었다고 한다. 

'아이고 손자 잘 두셨네, 요즘 그런 손자가 어딨어' 할머니가 부러운 듯 이야기한다.

'손자가 티켓 사주기 기다리지 말고 우리 팬클럽에 들어와 나랑 같이 콘서트 장에 다닙시다.' 팬클럽에는 젊은 사람들이 있어서 부탁하면 티켓을 살 수 있다며 다음번에 부산콘서트가 있는데 같이 가자고 제안한다.

'내 친구들은 다 귀찮다고 노인정에 가서 밥이나 얻어먹는 게 편하다네. 나 참 답답해서, 나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전국 콘서트 다 쫓아 다닐 거야. 현장에 가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느껴져, 이렇게 좋은 세상에 왜 노인정에 쑤셔박혀있는지 정말 한심해, 나랑 같이 다닙시다.' 라며 한 번 더 제안한다. 그 할머니도 생각이 있는지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한다. 80대에 젊은 가수 팬클럽에 가입해 전국 콘서트에 다닌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요즘 TV에도 트로트프로가 많은데 물론 현장하고 다르겠지만 80대 어른이 굳이 멀리까지 콘서트를 보러 다니실까'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본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실현했는지. 그동안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나이탓하며 이 나이에 그건 해서 뭐 해'라며 망설였던 일이 반성이 되었다. 

그 연세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서슴없이 하시는 할머니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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