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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애 May 16. 2024

나에게 물어본다.

잘 자고 일어났는데 고관절이 아파 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이 온다.

다치지 않았으니 괜찮겠지, 하고 하루를 지냈는데 이튿날 더 아파 디딜 수가 없다.

가까운 곳에 있는 정형외과는 의사가 무뚝뚝해 가고 싶지 않지만 걷기가 힘든 상황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오늘도 역시 무뚝뚝하다. 엑스레이 결과 고관절에 석회가 약간 끼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나이가 들면 뼈가 석회질이 된다는 건 초등학교 때 자연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있다. 

석회질이 되면 잘 부러진다는 것도 같이 배웠다.

그때는 이론으로 배웠고 지금은 몸으로 실감한다. 

의사의 처방은 소염제와 물리치료이다. 물리치료실로 향하며 의사에게 물어본다.

'앞으로 어떻게 관리하면 될까요?'

'방법 없어요. 노화현상이에요.' 예상했던 대로 무뚝뚝한 말투다. '정말 정 떨어지는 대답이다. 

같은 말이라도 웃으며 부드럽게 할 수도 있을 텐데.

뻔한 대답이 나올 줄 알면서 물어본 내 잘 못이지 누굴 탓하나.

무뚝뚝한 의사 탓해서 무엇하리, 내가 늙어서 그렇다는데. 

'자식, 그래도 이 늙은이의 서글픈 마음을 좀 더 다정한 말로 달래주면 어디가 덧나나.' 


히포크라테스 시대는 의학도들에게 수사학을 먼저 가르쳤다고 한다. 수사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미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문장과 언어 사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의사라면 환자의 마음을 먼저 어루만져줄 수 있는 언어의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의사의 말 한마디가 환자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몸의 병 고치러 왔다가 의사의 불친절한 말투 때문에 마음의 병을 얻어가는 느낌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의사의 무뚝뚝한 표정과 무심하게 내뱉는 말투가 계속 나를 따라온다.


그 의사는 그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말투로 얼마나 자신의 인품을 학대하는가?

우리는 남에게 학대를 받으면 참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의 언어로, 행동으로, 마음으로 얼마나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마음에서 간신히 그 의사를 떼어내고 나의 깊은 곳의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나를 얼마나 존중했는가?

나는 나를 얼마나 대우했는가?

나는 나에게 얼마나 친절한 말을 했는가? 

나는 나에게 진정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 보았는가? 

나는 마음, 언어, 행동을 얼마나 신중하게 했는가?


우리가 아플 때 더 힘들어지는 이유는 의사의 말 한마디에 너무 휘둘리기 때문이다. 의사가 무뚝뚝하고 불친절 하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나에게 아직은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여기까지 잘 왔다고 다정하게 전해본다.

나를 진정으로 아끼고 존중해 줄 사람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푸른 하늘을 가슴 가득 담는다. 아파트 담장의 연보라색 라일락도 오월의 향기를 우아하게 날리며 내 귓전에 속삭인다.  

너 정도면 멋진 할머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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