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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때까지 피아노 치고 싶다

by 민정애



나는 오늘도 피아노 앞에 앉는다. 10년 이상 거의 매일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꼭 피아노를 친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축복이 내게 쏟아지는 듯하다. 손끝에서 흐르는 음정 하나하나가 마치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반짝인다. 피아노는 이제 내 삶의 일부이자, 내 안의 작은 우주다.


어릴 적 내가 다니던 시골 초등학교에는 풍금이 있었다. 풍금 치는 선생님 주위에 둘러서서 노래했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아련하다. 피아노라는 악기를 처음 본 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이다. 음악 선생님의 손끝에 의해 들려오던 맑고도 깊은 피아노 소리는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선생님은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여선생님이었는데 피아노 치는 모습이 마치 천사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음악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그때는 누구에게도, 부모님께 조차도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모두가 힘겹게 살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내 꿈은 속으로만 간직한 채 그렇게 사춘기를 지나 청년이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어렵게 모은 돈으로 피아노를 샀다. 바쁜 시간을 쪼개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이래 봬도 그 어렵던 시절에 혼수품으로 피아노를 가져온 여자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그 열정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 교육이 우선이었다. 살아 내기 바빠 나의 꿈은 또다시 뒤로 밀려났다. 그렇게 아이들이 공부 마치고 결혼해서 자기들 둥지 만들어 나가고 드디어 내 시간을 되찾았다.


58세 때는 큰 수술도 받았다. 수술 후 회복 기간에 다시 미루었던 피아노에 대한 꿈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그날부터 73세가 된 지금까지 매일 하루를 피아노 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큰 병을 이겨낸 것도 어쩌면 피아노 덕분이라 생각한다. 나는 1,000곡이 넘는 악보를 가지고 있다. 가요, 팝송, 재즈, 영화음악까지. 악보만 있으면 뭐든지 연주할 수 있다. 젊은 시절 재즈 반주법을 배웠던 기억으로 매일 연습하고 있다. 음악의 세계는 끝이 없다. 여덟 개의 음계로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멜로디가 탄생되는지, 지금도 여전히 신기하고 경이롭다.


언젠가부터 나의 피아노 연습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SNS는 낯설고 어려운 세계였다.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할머니의 독학 피아노'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친구에게 내 채널을 알려 줬더니 "그렇게 해 가지고는 아무도 안 봐"라고 잘라 말한다. 그 말에 기가 죽어 한동안 올리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허접하다.


요즘 나는 양원근 작가의 베스트 셀러<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 싶다>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다. 제목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 제목을 패러디해 '할머니의 독학 피아노'를 '나는 죽을 때까지 피아노 치고 싶다'로 바꾸고 다시 나의 피아노 사랑을 기록하기로 했다. 편집할 줄도 몰라 그대로 올린다. 아무도 안 보면 어떤가, 중요한 건 완벽한 연주가 아니라 나의 진심이 담긴 순간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피아노를 치고 싶다' 정말로 이 말은 내 마음 그대로를 담은 말이다.


물론 내 연주를 들으면 어떤 사람은 시시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피아노에 진심이다. 어린 시절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지켜왔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아름다운 멜로디에 시적인 가사가 얹힌 곡을 연주할 때의 황홀경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것이 피아노가 내게 주는 선물이다.

나의 채널에는 지금까지 약 50곡 정도의 연주가 올라가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악보는 아직도 천 곡 이상 남아 있고, 또 매일 새로운 음악이 태어난다. 이 곡들을 다 올리려면 나는 아마 죽는 날까지, 아니 죽는 그날 아침까지도 피아노 앞에 앉아있을 것 같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내 채널을 찾아와 보았으면 좋겠다. 연주의 완성도보다도, 한 할머니의 꿈과 열정, 그리고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한 삶의 이야기 자체가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용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튜브 채널: <나는 죽을 때까지 피아노 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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