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훤림 Mar 24. 2024

넌 그러니? 난 이런데!  03

사회문제 대화편 첫번째

5. 사람이 없는 시스템     



딸램: 엄마, 몇 개 안 되는데 저기 무인결제기에서 계산하자.


엄마: 싫어.


딸램: 계산대에 줄 서 있는 사람이 우리 앞에 열 명도 더 되는 것 같아.


엄마: 사람들이 많으면 이 업체에서 결제하는 사람을 더 두는 게 맞지.


딸램: 여기 계산대는 한 사람만 담당하나 봐. 줄이 아무리 길어도 계산원을 늘리지 않더라.


엄마: 무인결제기를 이용하라고 일부러 사람을 늘리지 않는 거야.


딸램: 그러니까 우리도 그냥….


엄마: 이런 게 그림자 노동이라니까. 셀프 결제에, 키오스크에, 사람들이 자꾸 하라는 대로 대신 일을 해주면 아르바이트 자리가 줄어드는 거야. 가난한 학생들, 아줌마들, 노인들이 일할 파트타임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기업은 이윤을 늘리는 거고, 우리 모두는 손해를 보는 거야.


딸램: 저번에도 셀프주유소 피하느라 뱅뱅 돌고, 엄마가 그런다고 일자리 늘려주지도 않아. 엄마는 되게 피곤한 사람인 거 알지?


엄마: 할 수 있는 건 해보는 거야. 빌어먹을 무인시스템이 실은 인간을 고려하지 않는 시스템이고, 결국은 사람이 없고 돈만 있는 사회시스템을 만들고 있으니까.




딸램: 엄마 말이 일리는 있지만, 난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아. 엄마는 독립운동 하듯이 늘 그러지만, 어떻게 보면 러다이트 운동 같은 류의 느낌이라고.


엄마: 너 요즘 은행 가봤니?


딸램: 아니, 굳이 뭐 하러. 인터넷 뱅킹 쓰면 되는데.


엄마: 은행에 가면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이 오십 명에서 백 명씩 번호표 뽑고 기다려야 해.


딸램: 그렇게나? 시간이 오래 걸리겠네.


엄마: 은행들이 지점을 하나씩 폐쇄하고 합치고 있어. 직원을 줄여 비용을 줄이고 대신 고객들의 시간을 빼앗아 은행의 배를 불리는 거야. 


딸램: 다들 돈이 중요하니까. 대신 인터넷 뱅킹이 생겨서 편리한 것도 있잖아.


엄마: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검정비닐 봉다리에 현금 넣어놓고 장판 밑이나 장롱 밑에 두었다가 잊어버리고 태워 먹고 그렇게 되는 거야.



딸램: 아, 그 생각은 못해 봤네.


엄마: 사람들이 우리 인구의 20%나 되는 노인 인구는 생각도 안 하지. 러다이트 운운하기 전에 노인들의 인권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딸램: 인권이라….


엄마: 더 웃긴 건….


딸램: 안 웃기기만 해봐.


엄마: 알았어. 바꿀게. 더 기가 막힌 건, 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은 완벽할 정도로 유인시스템이 아주 잘 가동된다는 거야.


딸램: 그건 그만한 돈을 지불하니까.


엄마: 거봐. 역시 무인시스템이 편리하거나 발전한 시스템이 아니라는 게 확실하잖아. 러다이트 운운할 일이 아니라니까! 


딸램: 알았으니까, 이제 제발 계산하고 가자.     




6. 뭐든지 미리미리



딸램: 다음 선거 때는 비행기 타고 가서라도 꼭 재외국민 투표할 거야!


엄마: 정치에는 1도 관심 없다며? 


딸램: 아무래도 투표는 해야겠어.


엄마: 왜 갑자기?


딸램: 요즘 CNN이나 BBC 뉴스 보면 얼마나 쪽 팔리는 줄 알아?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엄마: 그러게 엄마가 얘기할 때는 내내 딴청이더니….


딸램: 거기서 거기인 줄 알았어. 이 정도로 후진을 심하게 할 줄은 몰랐지.


엄마: 정치도 공부처럼 벼락치기는 안돼. 미리미리 신경도 쓰고 관리해야 해. 나중에 일 벌어지면 뒷감당하기 힘들어.



딸램: 거기에 벼락치기 공부가 왜 나와?


엄마: 성적도 안 나와서 속상하다길래….


딸램: 엄마는 왜 대화의 결론이 늘 교훈을 얻는 것으로 끝나야 하는 거야?


엄마: 넌 왜 같은 일을 반복하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거야?


딸램: 그런 사람이니까 엄마랑 대화하지. 아니었으면 벌써 엄마한테 입 닫았지.

작가의 이전글 넌 그러니? 난 이런데!  0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