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말해주는 것
딸램: 엄마, 머리 길이를 싹둑 자르고 나니까 머리가 한쪽으로 삐죽 나온다.
엄마: 늙어서 머리카락도 자꾸 보수화하나 봐. 자꾸 우향우네.
딸램: 드라이를 좀 하면 되지.
엄마: 그렇지 않아도 하도 염색을 자주 했더니, 머리카락이 약해져서… 펌도 드라이도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고 그래.
딸램: 드라이 살짝 하는 게 뭐 그렇게 큰 영향을 준다고 그래?
엄마: 약해지면 겁나고, 겁나면 보수적으로 바뀌는 거지. 나아질 거라고 해도 변화가 두렵거든. 그냥 내버려 둬. 외모에 신경 쓸 에너지도 없어. 어디 예쁘게 보일 데도 없고 이렇게 살다 죽을래.
딸램: 방법을 찾으면 되지. 그놈의 보수화, 하나도 안 웃기다.
엄마: 늙으니까 이제 웃기지도 않다니! 그것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딸램: 원래 가지고 있지 않았던 건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고, 가지고 있었던 건 쉽게 포기하네.
엄마: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게, 설마… 미모?
딸램: 그냥, 엄마의 보수화를 내가 이해하는 걸로 정리하자.
엄마: 앞이 안 보여도 꿋꿋이 나아가야 한다는 말은 다 틀린 말 같아.
딸램: 어, 말이 다르잖아. 전에는 뭘 하고 싶은지 몰라도 일단 공부는 해야 한다며?
엄마: 그러니까, 역시 모든 상황에 다 맞는 진리는 없는 거야.
딸램: 엄마가 그렇게 말하니까, 이 기회에 나 공부 좀 쉴까 봐. 앞이 잘 안 보여.
엄마: 정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패줄까 보다.
딸램: 큭큭.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 건데?
엄마: 유리문에 박았어. 안경에 습기가 차서 그 문이 닫혀 있는지 안 보였거든.
딸램: 열려 있으려니 하고 직진한 거야?
엄마: 응. 코피도 나고, 결정적으로 엄청나게 창피했어.
딸램: 그러니까,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제대로 확인했어야지.
엄마: 머리랑 코로 세게 두드렸지. 그랬더니 그쪽으로는 들어오지 말래.
딸램: 그 문 어디 있어?
엄마: 왜, 혼내주려고?
딸램: 아니, 난 그 유리문한테 배울 게 있거든. 엄마한테 ‘No’라고 말하는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