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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Feb 08. 2021

영화 <소울>1: 사명이란 없다

영화 <소울> 리뷰 및 감상 1편

*이 글은 영화 <소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간으로부터의 완벽한 분리를 꿈꾼 적이 있는가? 시험만 합격하면, 취업만 하면, 돈 얼마를 모으면 하는 현실적인 문제부터 로또에 당첨되면, 유명해지면,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되면 하는 다소 허황되거나 이상적인 가정까지, 그게 무엇이든 간에 특정 '사건'이 여태까지의 비루하고 별볼일 없던 삶을 끝내고 미래의 완전무결한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은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실제로 그 사건이 일어난 후, 그 믿음이 깨졌던 경험도 있는가?

  우리는 보통 시험 합격이나 취업, 또는 부의 축적과 같은 세속적인 목표를 달성한 후에 허무가 오는 이유를 자신이 아닌 타인의 욕망을 쫓았기 때문이라고들 생각한다. 세상의 욕망과 스스로의 욕망을 구분하는 일은 언제나 우리의 삶에 있어 중요한 과제이지만, 그렇다면 나 자신의 오롯한 욕망에 바탕을 둔 목적 달성은 언제나 더 확실하고 오래가는 행복을 보장할까?







  영화 <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는 피아노를 연주할 때 가장 행복한, 다시 말해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인물이다. 세상과는 무관한 자신의 고유 욕망을 찾아낸 이들이 마주하는 다음 과제는 현실과 이상 사이 그 어딘가에서 그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역시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미 수도 없이 다루어진 탓에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이런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내 놓을 결론은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이젠 무책임하게 들릴 지경이다.


  대중들의 이러한 피로를 모를 리 없는 픽사는 조로 하여금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하게 하지 않는다. 정직원 채용 계약서를 받아들었을 때와 유명 재즈 뮤지션 '도로테아 윌리엄스'의 밴드 합류 제안을 받았을 때의 조는 이미 너무나도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물론 이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엄마와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 조명되긴 하지만, 이것은 극의 주요 소재가 아닌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운 좋게도 운명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에서부터 실패한다),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그 일을 지속할 뚝심도 있고, 재능까지 겸비한 조에게 대체 어떤 숙제가 남아있단 말인가.








  밴드 합류를 코앞에 두고 불의의 사고를 겪은 조는 죽음의 문턱에서 사력을 다해 도망치고 '유 세미나'와 고양이의 몸을 거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삶으로 돌아온 후 목표했던 대로 클럽에서의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친다. 이는 모두 조가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 세미나에서 자신의 전당을 본 조는 여태까지의 삶이 초라하고 무의미했다고 느꼈고, 그 무의미함이 유의미함으로 바뀌는 순간이 바로 오늘 저녁, 도로테아의 밴드에 합류하는 첫날이라는 사실에 그토록 돌아가고자 애를 쓴 것이다. 조는 고양이의 몸으로 탄 덥고, 냄새나고, 지치고 무기력한 가득한 지하철에서 도로테아의 밴드에 합류만 하면 완전히 새로운 삶이 펼쳐질 거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클럽에서 멤버와 관객의 환호 속에서 첫 연주를 마치고 조가 탄 지하철은 여전히 덥고, 냄새나고, 승객들은 예민하다.


  알 수 없는 허무함을 느끼며 귀가한 조의 눈에 22의 영혼이 조의 몸에 들어가 남긴 흔적들이 들어온다. 피자 끄트머리, 베이글 조각, 엄마의 실타래, 데즈가 준 사탕, 그리고 나무 씨앗까지 하나같이 사소한 것들 뿐이다. 조는 그것들을 보며 자신의 몸에 기억으로 남아 있는 22의 경험과 감각, 그리고 즐거움을 떠올린다. 음식의 다양한 맛, 몸을 간지럽히는 지하철 환풍구 바람, 떨어지는 낙엽... 22의 감각을 떠올리던 조는 무의미했다고 느꼈던 삶에서 충만하고 즐거웠던 순간순간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조는 '테리'에게 잡혀 유 세미나로 돌아갔을 때 지구 통행권을 얻은 22에게 자신의 몸에 있었기 때문에 음악을 좋아하고 불꽃을 찾을 수 있었다고 쏘아붙였지만, 사실은 오히려 목적이 없어 순간을 즐길 수 있었던 22가 그의 몸에 있었기 때문에 그 역시 일상의 순간, 즉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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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와 다른 인물 및 설정, 그리고 총 감상평은 후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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