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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상혁 Jan 05. 2024

2024년의 시작 그리고 감기

3. 일상의 평온함을 바라며.

 2023년의 끝자락인 12월 30일, 김포공항에는 함박눈이 내렸다. 이날 이른 아침부터 눈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공항에 도착했을 때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온통 새하얬다. 평소 같으면 눈이 내려 좋아했을 법도 한데, 일본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앞에 두고는 불안한 마음이었다. 항공사 수속 카운터에서 수속을 하고 짐을 부치고 항공권을 들고 면세 구역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넓은 창 너머 활주로를 바삐 오가는 제설 차량들이었다. 그 사이 눈은 더 굵어지며 빠른 속도로 지면에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제시간에 뜨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걱정과는 달리 탑승 시간보다 약 5분 늦게 탑승이 시작됐다. 이 정도라면 양호한 거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변 사람들도 불안한 기색에서 안도하는 얼굴로 변해갔다.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데도 비행기가 뜰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비행기라고 하는 최첨단 기술의 응집체가 나오기까지의 과학적이고 수학적이며 기술적인 모든 것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기내 내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기내 안전 방송을 시청했다. 방송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장이 방송을 했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에 기장의 방송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눈이 많이 와서 비행기 양 날개에 쌓인 눈을 제거하는 제설 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예정 출발 시간보다 1시간 이상 지연이 예상된다는 사과 방송이었다. 비행기를 많이 타 보았지만 기내에서 앉은 상태로 제설 작업을 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레미콘 같이 큰 차량이 비행기 옆으로 다가오며 날개 쪽으로 뜨거운 물을 뿌려 쌓인 눈을 쓸어냈다.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 옆으로도 제설 작업을 기다리는 비행기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공항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갔다.


 비행기는 예정 시간보다 1시간 30분이 지연돼 출발했고 하네다 공항에는 예정 시간보다 약 2시간 늦게 도착했다. 사실 나는 일본 집에 오기 3일 전부터 감기에 걸린 상태라 매우 불안했다. 혹시 코로나나 독감이면 출국을 못 하기 때문에 겁을 먹고 병원에서 검사를 했었다. 다행히 코로나도 아니고 유행하는 독감도 아니었지만, 나는 무척 아팠다. 한국에서 해야 하는 쌓인 일들을 어떻게든 마무리 짓고 일본 집으로 가야 마음이 편할 거 같아 무리해서 일을 하긴 했다. 그렇다고 잠을 못 잔 것도 아니었다. 다른 때 보다 더 잘 챙겨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직장에서 친한 동료들과 저녁밥을 같이 먹은 거 외에 외출도 안 했는데 어디서 탈이 난 걸까 생각했다. 감기가 심해지면 출국을 할 수 없고 출국을 한다고 해도 열이 심하면 일본 입국이 어렵기 때문에 나는 필사적으로 열을 내리려고 계속 타이레놀을 먹었다. 일 하면서 마스크를 썼고 집에서 자면서도 마스크를 쓰고 잤다. 감기가 더 심해지면 일본 집으로 갈 수 없다는 두려움이 컸다.

 타이레놀 덕분일까 다행히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열이 나지 않았고 나는 열화상기를 무사히 지나 입국 심사를 거쳐 짐을 찾고 입국장 밖으로 나왔다. 일본은 봄처럼 화창하고 우리나라 평년 겨울 기온보다 높았다. 감기에 걸리기도 했고 한국은 영하의 날씨라 나는 내복을 입고 있었는데, 입국장 밖으로 나와보니 나는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가까운 화장실로 달려가서 내복을 벗고 머플러도 캐리어 가방에 모두 넣은 뒤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추웠다가 더웠다가 하니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진 듯했다.


 리무진 버스표를 파는 데서 버스표를 사면서 판매원에게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너무 덥네요. 이렇게 기온이 높았나요?"

 땀을 줄줄 흘리면서 내가 뜬금없이 이렇게 묻자 일본인 판매원이 다소 놀란 듯했지만 상냥하게 웃으면서 '한국보다는 덜 춥지요. 일본이 따뜻한 편이지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일본어로 말을 했는데도 한국인이라는 것은 금방 티가 나는 듯했다. 중국인이나 기타 다른 아시아인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딱 '한국'이라고 하니 신기하면서도 나 역시 여러 아시아 사람들 중 한국인이나 일본인을 쉽게 구분해 내는 걸 생각하면 일본인 버스표 판매원의 눈썰미도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마치다 버스 터미널'까지 오는데 1시간 10분이 걸렸다. 나는 버스 안에서 감기약 기운으로 계속 잤다. 버스에 내려서 JR 전철을 갈아타고 '하시모토' 우리 집까지 오는 전철을 탔다. 퇴근 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을 거 같아 걱정이 됐다. 캐리어까지 있는 상태로 전철을 타면 폐가 될 거 같아 망설였지만 다행히 연휴 기간이라 전철 안은 텅텅 비어있어 나는 편안하게 앉아서 집까지 왔다.

 집에 도착한 순간, 짐을 풀지도 않고 간단히 샤워만 하고 나는 바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다행히도 거실 일부에 '온돌'(일본은 바닥 난방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10년 전후로 지은 맨션에서 바닥 일부에 '유카 단보(床暖房)'라고 하는 우리나라 '온돌'과 비슷한 난방을 설치한 집들이 많다.) 기능이 있어 나는 우리나라처럼 따뜻한 방바닥에 몸을 눕힐 수 있었다. 수많은 꿈을 꿨고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12월 31일 '섣달그믐'을, 일본에서는 '오오미소카(大晦日)'를 맞이했다.


 12월 31일은 한해의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섣달그믐'이고, 일본에서는 '오오미소카(大晦日)'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보통 이 날에 '도시코시소바-해넘이 메밀국수-(年越しそば)'를 먹으며 NHK의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戦)-고하쿠우따갓센'을 시청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가정이 많다. 올해는 일본 연예계의 큰 기둥이자 매년 '홍백가합전' 출연진의 절반을 차지하는 '쟈니즈'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 '쟈니즈' 소속 가수들이 한 명도 출연을 하지 않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예년과 달리 '홍백가합전'이 속 빈 강정처럼 내용이 알차지 못한 방송을 해서 나는 중간에 보다가 채널을 돌렸다. 감기로 인해 정신이 몽롱하기도 했고 약기운에 계속 졸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배가 고파서 낮에 잠깐 마트에 들러 사 온 '해넘이 메밀국수'의 불어버린 국수 가닥을 몇 가닥 먹고 다시 이불에 누웠다. 그렇게 2023년의 마지막을 보냈다.


 2023년, 돌아보면 너무 힘들고 괴롭고 초조하고 불안했으며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던 나날들이었다. 나 자신을 지키는 것과 동시에 내가 지켜야 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며 지낸 시간들, 사소하고 자잘한 일로 마음 상하고 괴로웠던 날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로 잠시 미소 짓기도 하고 함박웃음을 웃기도 했던 날들, 순간순간 행복하다는 말의 의미를 새삼 생각하게도 했던 날들, 그 모든 날들을 생각하며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2024년 1월 1일은 노토반도(能登半島)의 진도 7의 지진과 함께 시작되었다. 새해 벽두부터 큰 지진과 지진해일 경보 알람으로 화들짝 놀라 이불 밖으로 나왔다. 감기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해야 할 일들도 제쳐놓고 계속 누워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배를 탔을 때처럼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해서 눈을 떴다. 지나가는 지진인가 보다 했는데, 그때부터 휴대폰에서 요란한 경보음이 잇달아 울렸다. NHK를 틀자마자 여자 아나운서가 다급하고 긴박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바로 도망가세요. 텔레비전을 보지 말고 지금 바로 도망쳐야 합니다. 되도록 높은 건물로, 높은 건물이 없다면 높은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지진해일이 옵니다. 지금 옵니다. 몇 번이고 겹쳐서 덮칩니다. 바로 도망가세요. 지금 도망가세요. 뒤를 돌아보지 말고 자신의 몸을 지키세요. 도망가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동일본대지진을 생각하세요. 그때도 지금처럼 지진해일이 왔습니다. 지금 지진해일이 덮쳐옵니다. 도망가세요. 지금 바로 도망가세요!"


 이 지진으로 현재까지 90명이 넘는 사람이 희생됐고, 아직 건물더미 아래에 깔려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도 수없이 많다고 들었다. 뉴스를 보면서 엄습해 오는 공포와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희생당한 분들의 면면이 떠올라 한동안 텔레비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일본에 오자마자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었다. 한국에서는 땅이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일상을 분초 단위로 바쁘게 살아 매일 전쟁 같은 날들을 우당탕탕 보냈다. 이제 겨우 일본 집에 돌아와서 그토록 눕고 싶었던 이불 속에 들어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지진이라니, 그것도 진도 7이 넘고 지진해일까지 덮쳐온다니, 1월 1일은 일본의 설연휴라 친인척들이 다 같이 모여있는 날인데 하필이면 이런 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이러나 싶었다.

 TV를 보고 있으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해 지진의 피해를 다 알 수 없었으나, 1월 2일 날이 밝자마자 방송에서 보도되는 내용은 참혹했다. 지진으로 갈기갈기 찢긴 도로며 무너진 건물, 지진해일로 쓸려나간 가옥과 농토들이 보였다. 늘 느끼는 거지만 자연재해 앞에 인간은 너무나 약하고 약한 그야말로 미약한 존재 그 자체였다. 그 순간,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었다. 지붕이 있는 집에서 따뜻한 방이 있고 먹을 것이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날 오후 5시가 넘은 시간 시끄러운 뉴스 알림 소리로 다시 NHK를 켰다. 이번에는 내가 이틀 전에 도착한 하네다 공항에서 일본항공과 해상보안청 항공기가 충돌해서 일본항공은 화재로 뒤덮여 전소하고 해상보안청 비행기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폭발한 사고가 있었다. 일본항공의 승객과 승무원은 전원 탈출하여 한 명의 희생자도 나오지 않았지만,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 물자를 수송하려던 해상보안청 항공기의 승무원 6명 중 5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네다 공항에서 비행기 충돌 사고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일뿐더러 비행기 전체가 전소하는 사건은 요 근래 볼 수 없는 사건이라 깜짝 놀랐다. 더구나 나는 이틀 전에 하네다공항에 도착해 일본에 입국했기 때문에 내가 이틀만 늦게 일본에 오기로 했다면 일정이 틀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4년이 시작되자마자 연이은 대형 자연재해와 사고로 일본의 설 연휴 신년 분위기는 일제히 사라지고 각 방송국의 신년 버라이어티쇼 대신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 등이 채워지게 됐다. 하네다 공항 일부 활주로 폐쇄로 국내선과 국제선은 결항을 줄을 잇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내용을 들으며 나는 멍하니 시간의 흐름 속에 있었다. 그래도 일본항공에 타고 있던 367명이나 되는 분들이 모두 무사히 탈출하고 생명에 지장이 없다니 불행 중 다행이구나 생각했다. 삶이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인데 아등바등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잠시 허탈하기도 했다.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인데 미래가 어쩌고 앞날이 저쩌고 했던 나 스스로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되도록이면 평온하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을,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귀한 것을, 저 멀리 어딘가에 아직 만나지 못한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고 있는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월 2일에는 일본인 지인 가족들의 신년 파티에 초대를 받았지만 나는 감기로 인해 가지 못한다고 죄송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이 분들은 내가 일본에 살면서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정을 나누며 지낸 몇 안 되는 일본인들 중 가장 친하게 지내는 가족 분들이다. 일본에서는 가족 이외의 타인을 신년 파티에 초대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며, 내가 일본에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를 초대했다는 것은 이분들이 나를 가족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고마운 마음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 때문에 즐거운 신년 파티를 망칠 수도 있고 감기를 옮길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가지 않고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지진이 일어나고 비행기가 폭발하고 내 몸은 감기가 나을 기미가 없으니, 해야 하는 일도 많은데 그저 쉬라고 하는 하늘의 계시인가 싶어 내리 누워 잠만 잤다. 그 덕분인지 다음 날인 1월 3일에는 한결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약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 해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식탁에 앉았다. 샤워를 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온몸에 기운이 빠질 수 있을까 싶었다. 그동안에 한국에서 무슨 정신과 힘으로 하루하루를 그토록 강건하게 보낼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물을 한잔 마시고 있는데 인터폰이 울렸고 일본인 지인의 가족들 중 일부가 우리 집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는 놀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아케마시떼 오메데또 고자이마스-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내가 감기에 걸려 누워있다는 것을 알고, 일본인 지인 가족 분들이 안쓰러운 마음에 남은 음식을 싸가지고 우리 집에 찾아온 것이었다. 이럴 수가,,, 이렇게 감사할 수가,,, 나는 마스크를 쓰고 일본인 지인 가족들을 맞이하며 반쯤 잠긴 목소리로 신년 인사를 건넸다. 반년만에 보는 얼굴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감기로 아파서였을까, 지진과 비행기 폭발로 가슴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샤워만 해도 온몸에 힘이 빠져 밥상을 차릴 기운도 없는 차에 설음식을 바리바리 싸 온 정성 때문이었을까, 일 때문에 일본에 오지 못하고 한국에서 바삐 살아 연락도 자주 하지 못했던 분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나를 챙겨주다니, 가족도 아닌, 피 한 방울 안 섞인 외국인을 말이다.


 나는 우리 집 2인용 작은 식탁에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진 일본 설음식을 보고 잠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를 보며 잘 왔다고 돌아와서 반갑다고 활짝 웃는 일본인 지인들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성이 담긴 음식을 하나씩 맛보며 기운을 차려가는 나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웠다고, 내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다정하게 둘러앉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고 서로의 다친 마음을 위로하며 따뜻한 말로 감싸주는 이 순간들이 그리웠다고, 음식을 넘기며 마음속으로 수십 번 되뇌었다.


 이제 겨우 감기가 나아간다. 계속 흐르던 콧물도 멈추고 염증으로 부어있던 목 통증도, 몽근하게 아파오던 근육통도 잦아들고 있다. 기지개를 켜고 멀리 시선을 두며 올해 계획한 일들을 해보자고,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나 그렇다고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으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을 감사히 살아보자고, '나의 일'에 마음을 모아보자고, 홀로 헤쳐나가야 하는 길 위에서 흔들리지 말자고,


 2024년 1월의 시리도록 푸른 겨울 하늘에 시선을 두고 조용히 다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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