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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Dec 04. 2022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색채가 없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자키 쓰쿠루는 스스로 색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밋밋하다고 할까. 고등학교 시절 그는 그를 포함한 남자 둘, 여자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다섯이서 마치 하나인 듯한 친밀한 관계를 가졌다. 그를 제외한 친구들 넷은 모두 이름에 색깔을 표현하는 단어가 들어있었고 이름만큼이나 성격에도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쓰쿠루가 느끼기에 그 스스로는 이름에도, 성격에도 뚜렷한 색채가 없었다. 그런 쓰쿠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고향을 떠나 도쿄로 대학을 가고 어느 날 친구들로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외면을 당한다. 그렇게 친구들로부터 이유 없이 버려진 뒤 16년이 지나 쓰쿠루는 그 상처를 마주하려 한다. 왜 그들이 쓰쿠루를 버려야만 했는지를 알아내려 한다. 답을 찾아, 친구들을 찾아 순례를 떠난 쓰쿠루의 이야기가 하루키의 책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그려진다.


  알 수 없는 외면이라는 주제, 그 실마리를 풀어가는 이야기의 전개도 흥미로운 요소지만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 혹은 내가 하루키의 모든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주인공에게서 어딘지 모르게 나와 비슷한 부분, 내가 스스로에게 느끼고 있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종종 나에게 뚜렷한 색채가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색채뿐만이 아니라 모양도 그렇다. 뚜렷하게 돌출된 곳도, 반대로 움푹 파인 부분도 없다. 둥그런 무채색, 그게 내가 스스로에게 줄곧 느끼던 느낌이다. 쓰쿠루가 자기 자신이 색채가 없다고 느끼는 것과 동시에 다른 색채 있는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듯이 나도 뚜렷한 색채를 가지고 있는 듯한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언제나 신기했다. 자기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그 개성이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뚜렷하게 드러나는 장점이 되고, 어딜 가나 눈에 띄는 듯한 느낌을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신비감과 동경의 마음이 느껴졌다.


  물론 뭐든지 적당한 게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적당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종종 어떤 때는 확실한 것들을 가지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애매한 재능은 잔인하다고들 말하는 것처럼 애매한 성격도 때로는 잔인하게 될 수 있다. 색채가 없는 성격이라는 말은 모두와 잘 어울릴 수 있지만 어느 누구와도 딱 맞을 수 없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쓰쿠루가 책에서 4명의 친구들이 떠난 것 외에는 특별한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것, 별다른 마찰이 없는 삶, 적당히 인기 있고 적당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살고 있었던 것도 색채가 없다는 그의 성격에 잘 어울린다. 그리고 쓰쿠루는 모두와 무난히 잘 지냈지만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하나 된 느낌을 받았던 이후로 스스로는 다른 어떤 사람과도 그 정도로 합일된 느낌을 가지지 못했는데 그것도 어쩌면 색채가 없는 성격이 주는 잔인함일 수도 있다.


  그래서 쓰쿠루도 색채가 있는 4명의 친구들을 보며, 반대로 색채가 없는 자기 자신을 보며 조금은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쓰쿠루는 개성을 가진 친구들을 지켜보며 자기 자신에 대해 뭔가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자아를 가졌지만 개성은 없는 존재로서 모순된 느낌을 받는다.


'눈에 띄는 개성이나 특징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그리고 늘 중용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는데도 주위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뭔가 정상적이라 할 수 없는 부분이 자신에게 있다. 모순을 포함한 그러한 자기 인식은 소년 시절부터 서른여섯 살에 이르는 지금까지 인생의 이런저런 부분에서 그에게 당혹감과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어떤 때는 미묘하게 어떤 때는 나름대로 깊고 강하게.'


  스스로에 대해 색채가 없다고 느끼는 마음은 어릴 때, 더 강렬한 색채를 풍기는 나이대에 있어서 조금은 불만이 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무채색이 주는 장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싶고, 또 원 없이 표현하고 싶은 어린 시절에는 뚜렷한 개성, 튀는 자신의 모습을 원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사람들의 색채가 뚜렷해지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색채의 충돌 없이 다가와서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 아마 쓰쿠루도 나이가 들어서 색채 없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 과정에는 색채가 없는 것이 주는 장점을 진심을 담아 얘기해 준 여자친구 사라가 있었기도 하지만 쓰쿠루가 그 말을 받아들일 나이대가 되었다는 것도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된다. 색채가 없다는 것, 어떻게 보면 그게 그 사람의 색채다. 무채색도 색이다. 그리고 그 어떤 뚜렷한 색보다도 어떤 순간에는 무채색이 뚜렷하고 분명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는 내용 없는 텅 빈 인간일지도 모른다. 쓰쿠루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내용이 없기에 설령 일시적이라 해도, 거기서 쉴 자리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밤에 활동하는 고독한 새가 사람이 살지 않는 어느 집 지붕 뒤편에서 한낮의 안전한 휴식처를 구하듯이, 새들은 아마도 그 텅 비고 어두컴컴하고 조용한 공간을 마음에 들어 한 것이다. 그렇다면, 쓰쿠루는 자신이 공허하다는 것을 오히려 기뻐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터넷에서, SNS에서 타인의 모습을 더 쉽게 볼 수 있게 되면서 뚜렷한 색을 가진 사람들이 더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색채가 뚜렷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모든 무채색의 사람들에게는 마치 나 자신의 모습이 언듯언듯 이 책을 통해 보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뭔가 특별한 메시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만약 당신이 그렇다면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처럼 스스로를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냉정하면서 언제나 쿨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다자키 쓰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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