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혁 Dec 10. 2022

긴 감상 4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스스로에 대한 '정의', 아니면 '선언'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뭔가 볼 게 없나 하다 우연히 최근 시작한 '알쓸인잡'을 보게 됐는데 거기서 패널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여러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인간에 대한 궁금증이 결국 패널들 자신들에게까지 간 모습인데 이 질문은 너무나 간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중요하고, 그래서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인 것 같다. 방송에서도 바로 답을 내놓은 패널들도 있지만 바로 답을 내놓기 어려워 프로그램이 끝날 때 다시 대답하겠다고 한 패널도 있다. 그만큼 '나'라는 사람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사실 사람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오히려 맞는 것처럼 느껴진다. 애초에 인간은 한 문장으로 정의할 만큼 단편적이지 않다. 이런가 싶으면 또 다른 상황에서는 이렇지 않고, 저런가 싶다 보면 또 다른 사람을 만나서는 저렇지 않은 게 인간이다. 입체적이라고 해야 하나.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우리가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을 보면서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우리가 스스로를 그렇게 느끼고 있기에 그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간은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저 질문이 의미 있는 이유는 저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원하는 방향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 질문에 대해 누군가 답을 했다면 그 의미는 '내가 이런 사람입니다'라기보다는 '내가 가진 특성 중에 나는 이 특성을 가장 선호합니다' 혹은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기에 스스로를 한 문장으로 정의했다는 건 그 문장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그러면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할까, 아니 정의하고 싶을까.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

사실 그렇게 질문을 바꿔봐도 대답하기 쉬운 질문은 아니다. 수많은 특징 중에 하나를 고르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던 답은 '좋은 사람'이다. 좋다는 말은 무수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도 좋다에서 느껴지는 친절함,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 인정받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타인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날카로운 스마트함이 있고 둥그런 따뜻함이 있다고 할 때 전자보다는 후자가 되길 원하는 느낌이다.


물론 저 정의도 내가 선택한 것이기에 내가 저런 사람이다라는 의미보다는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미에 가깝다. 보통 뭔가를 부르짖으면 그걸 잘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런 경우가 많다. 혁신하는 기업은 혁신을 외치지 않는다. 그저 할 뿐이다. 혁신을 부르짖는 기업이 있다면 아마 혁신을 못 하고 있기에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좋은 사람,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에는 스스로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체로 친절할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는 언듯 냉소적인 순간들을 느낀다. 누군가를 돕는 게 마음에서 우러나온다기보다는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이성에 의한 경우도 많고, 타인의 마음에 진심으로 공감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겉으로는 친절해 보이지만 친절을 베풀고 있는 속에서는 마음이 거기에 동하지 않는 느낌이 든달까.


그래서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아니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좀 더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진심에서 우러나는 친절을 베풀길,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내가 베풀 수 있는 친절함을 다하는 사람이 되길, 그런 바람으로 정의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