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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May 02. 2023

어니스트 베커, '악에서 벗어나기'

인간의 악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악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역사 속에서 우리 스스로도 악이라고 부를만한 일을 끊임없이 만들어왔다.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재산을 뺏고, 죽이고,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지워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악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역사도 길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악한 것인지, 악해지는 것인지, 악은 어디서 발생하고 그것의 성격은 무엇인지 고민했던 많은 철학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책 '악에서 벗어나기'도 그런 노력의 하나다. 베커가 이 책에서 짚어내는 악의 기원은 '불멸성에 대한 추구'다.


인간은 스스로의 필멸성을 인식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의 무의식 어딘가에는 사라지고 싶지 않은 욕망, '불멸성에 대한 욕망'이 존재한다. 베커는 이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욕망이 악을 키워왔다고 말한다. 죽음이라는 '악'을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악'을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베커는 인간 역사에 기록된 몇 가지 악을 불명성의 추구를 가지고 설명한다. 죽음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죽음을 통제하기 위한 '제의'로 이어진 것, 사라지지 않는 영향력을 남기고 싶기에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어 했고, 그렇게 '권력'이 만들어진 것, 그 권력이 실현된 부와 불평등,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영향을 확인하려 했던 '대학살'의 현장까지 모두 필멸성에 대한 거부에서 기원한다고 이야기한다.


불멸성에 대한 추구가 권력, 혹은 자기 영향력의 추구로 이어지는 지점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 점을 잠시 놓아둔다고 하더라도 불멸성의 추구나 자기 영향력의 추구가 악을 만들어왔다는 것은 생각해 볼 만한 여지가 있다. 사실 두 가지는 자신을 남기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죽음을 피하려 하는 것은 자신을 남기고자 하는 인간 욕구의 '생물학적' 표현 방식이며, 자기 영향력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의 '사회적' 표현 방식이다. 둘의 선후관계,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들은 '자신을 남기고자 하는 인간 욕망'의 표현형으로서 악의 사건에 기여해 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을 남기고 싶다는 인간 본성이 악의 사건에 등장해 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본성 자체를 '악'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 욕망이 그 자체로 악이라면 우리는 인간인 이상 악을 피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분명히 세상 모두가 악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욕망을 악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 본성이 악이 되는 순간은 그 본성에 욕심이 결합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자신을 표현하는 본성은 그 자체로 악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의 성장을 위한 동력이 되어 선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 본성이 과해져서 자신의 능력을 통해 이루려 하지 않고 타인을 통해 이루려 할 때 발생한다. 삶과 죽음에 영향을 행사하고 싶다고 해서 타인을 희생물로 바치던 제의, 자신의 영향을 과시하기 위해 타인의 것을 빼앗는 행위, 그리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하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학살하는 순간에 본성은 악이 된다. 인간 본성이라는 자기표현의 욕구는 자연적으로 충족되기 어렵다. 그리고 만족하기도 어렵다. 끊임없이 더 큰 영향력을 원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그 욕심이 과해져 자기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게 되면 악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악의 발현은 인간 사회의 변화와 결합되어 더욱 강화된다. 인간 사회는 점점 더 하나의 가치만을 숭배하는 방식으로 굳어져왔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기보다는 사회가 인정하는 하나의 삶의 방식과 하나의 가치만이 인정받게 되었다. 스스로 돋보이는 것을 모두가 원하는데, 돋보이기 위한 방식이 하나라면 그 사회는 돋보이기 위해 한 가지 길을 향한 무한한 경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좁은 문을 향해 모두가 달려가는 상황에서는 욕심이 만드는 악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니 악을 피할 수 있는 사회적 방법은 길을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다. 길을 다양하게 만들어가 각자의 길 위에서 모두가 빛날 수 있도록 하면 과도한 경쟁, 욕심을 통하지 않더라도 나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 길은 생각보다 더 다양해질 수 있다. 그저 직업의 개수를 세는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 그 모든 삶의 방식이 하나의 길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모두가 각자의 길 위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각자의 길을 '인정'해줄 수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말 뿐인 인정으로는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받기 쉽지 않다. 누군가는 진심을 다해서 사람들의 삶을 존중해 주고 인정해 줄 수 있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지는 않다.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인정이라는 것은 가격으로 표현된다. 내가 하는 일이, 나의 삶이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가 우리가 느끼는 가치에 영향을 준다. 자신의 가치를 돈으로 느낀다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돈 문제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아무도 내 일에 적절한 돈을 지불하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는 것을 모두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치 있는 일에 돈을 주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게 되면 가격을 매기는 방법은 한 가지로 정해진다. 시장은 '수요'에 가격을 매길 뿐이다. 더 많은 수요를 획득하는 것이 더 비싼 가격을 얻고,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는다. 수요가 모든 것의 가치를 결정하는 사회는 하나의 길을 향해 모두가 달려가는 사회다. 수요가 아닌 다른 것으로도 가격이 평가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공공성, 독창성, 과거의 보존과 같이 긍정적 외부효과를 주는 것들에 그에 합당한 가격을 붙여줘야 한다.


가격이 가치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가치가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합의한 일에 우리가 주고 싶은 가격, 그리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악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의 본성이 악으로 넘어가는 지점을 스스로 인식하고 억제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남기고 싶어 하고, 영향력을 주고 싶어 한다. 생물학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남기려고 하는 것이 본성이라면 그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니 그 본성을 잊으려 하고 모른 체 하기보다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식하고, 그게 우리 자신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영향력을 키우는 방법은 우리 자신의 그릇을 키우는 것뿐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그릇은 그대로인데 영향력만을 키우기 위해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면 거기서 문제가 만들어진다. 악은 그렇게 시작된다. 욕심부리지 않기, 본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올바른 방법으로 우리 자신의 그릇을 키우는 것, 그게 한 개인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악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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