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인생 일력'데일리 명언 에세이 21 -2021년 1월 21일
모든 발자국 가운데
코끼리의 발자국이 최고이고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 가운데
죽음에 대한 명상이 최상이노라.
-대반열반경
아- 오늘의 문장에서 내가 발견한 단어는 '죽음'이다.
1월 16일에 주절거렸던 극락세계보다 현실이 낫다는 이야기한 날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오늘 다시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생각할 때 가장 삶에 대한 간절함과 의지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 혹여나 누군가의 죽음을 생각할 때, 슬프고 간사하게도 내가 살아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그만큼 나는 사는 것을 좋아하고, 삶에 집착한다.
지구 상의 살아있는 모든 개체가 도달하는 마지막 여정, 죽음
죽음을 논하는 철학은 모든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명제에서부터 출발한다. 철학이라는 어려운 학문들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죽음은 많은 생각을 수반한다. '죽음'에 대한 고찰은 죽음은 무엇인지, 죽음의 형태와 범위는 어디까지 놓고 논해야 할 것인지 (가령 뇌사 상태에서 죽었다고 할 수 있을지, 낙태를 살인이라고 봐야 하는 것인지라는 보편적으로 많이 알려진 이슈들을 보더라도-) 신체가 멈추고 숨이 끊어졌다는 식의 단순하게 정의 내리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은 자들이나 혹은 인간이 아닌 생과 사의 루틴이 동시에 적용되는 다른 생물들과 이 막연한 '죽음'이라는 이슈로 토론도 대화도 나누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 그렇게 평소 우리의 관념 속에서, 아주 먼 이야기 같다.
그러나 지구 상의 살아있는 모든 개체가 도달하는 마지막 여정은 '죽음'이다. 한 생명이 소멸하는 죽음은 단순히 한 개체가 지구 상에서 사라지는 것 너머, 그 생이 사라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나는 이 '죽음'이 문득 바로 앞의 날에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복잡 미묘한 마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다.
죽음에 대한 명상은 삶에 대한 성찰의 과정이다.라고 한다.
죽음에 대한 명상, 죽음에 대한 고찰은 역으로 삶을 생각하는 시간과 맞물린다. 죽음이 끝을 내는 대상이 바로 '삶'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죽음을 생각하는 그 순간,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타오른다는 것은 단순히, 살아있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해야 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살아있음에 대한 안도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이렇듯 생을 생각하는 것은 한 숨, 한 숨마다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용기 있게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까. 죽음이 막연한 먼 시간이 아닌, 내 발 앞에 놓여 있다면, 그만큼 나의 신체의 쇠약과 병이, 환경이 벼랑 끝으로 몰고 갔을 때 - 나는 이렇듯 태평하게 글을 쓰며 생과 사를 논할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진격의 거인>에서 거인 계승자의 시한부 시간 13년
생뚱맞을 수도 있지만 최근 방영되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보면서 나는 또 한 번 '죽음'에 대해 연결 지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동안 여러 논란도 있었지만, 거대한 장벽을 뚫고 초대형 거인들의 무자비한 습격과 파괴, 특히 인간을 잡아먹는 그로테스크하고 엽기적인 장면으로 큰 화제를 낳은 것으로 시작하여, 곧 완결을 맞이하는 현재까지 장벽의 좁은 공간을 너머 광범위한 세계관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 만화(단행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의 독특한 설정 중 하나는 '거인의 계승'이라는 점에 있다. 이 만화에서의 세계에는 아홉의 거인이 있고, 엘디아인에게 계승이 되는데 이 특정 거인이 계승된 자가 계승 이후 살 수 있는 시간은 13년이라는 것이다. 계승받은 자들은 거인이 가진 힘을 쓸 수 있고, 이 강력한 힘은 서로가 뺏기 위해 싸우지만 정작 당사자는 시한부라는 생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이 나에게 이 만화에서 강렬하게 다가온 것들 중 하나였는데, 실제로 죽음을 코앞에 두면서도 어떤 신념, 혹은 세뇌, 선택의 여지들이 때로는 그들의 죽음보다 앞세우거나 삶이라는 것은 뒤로 물러나게 된다. (이 부분은 이 만화에서도 한때 우익논란이 일어났던 장면 중 하나인 전쟁을 이기기 위해 다수를 희생양으로 몰아넣는 장면들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카미가제를 연상하여 더욱더 논란이 되었으며, 현재 반영 중인 4기 1화 장면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을 연상케 하는 전쟁 모습과 총알받이를 내세우는 점 등 회차를 거듭할수록 이 만화는 20세기 초반까지의 제국주의 시대를 떠오르게 하는 장면들이 다수 나온다. 이것이 제국주의와 전쟁이 낳은 비극을 비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회상하고 옹호하는 것인지는 완결까지 나왔을 때 완전히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
정해진 죽음, 시한부의 인생임에도 (그것이 자신이 선택이던, 타의에 의한 결정이었든 간에) 해야 할 역할과 상황 속에서 다수를 희생시켜야 하는 순간 캐릭터가 가진 모순과 그로 인해 그들은 때때로 고통스러워하거나 고뇌하는 장면들을 읽는 과정은 내 삶이 이 만화와 같이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한 번쯤 상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