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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May 07. 2024

술.. 너를 보내며

마실만큼 마셨으니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보내주마

술과 이별하기로 마음먹었다.

절주 하자고 여러 번 다짐했으나 평일만 절주를 지킬 뿐 주말이면 어김없이 술에 절어 사는 것 같다.

평일에 안 마신다는 이유와 주말에 운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나에게 주는 일종의 포상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고 있다. 

유지어터로서 평일엔 먹는 것도 칼로리 따져가며 가려먹지만

주말이 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과자도 빵도 술도 고기도 배가 찢어지도록 먹는다.

먹는 것이야 다시 조절하면 그만이지만 술은 점점 나를 우울감에 빠지게 만든다.

이제는 절주가 아니라 단주가 필요한 시점이다. 




건강을 가르치는 보건교사가 술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술을 좋아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쭉 사랑하고 싶었다.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맛있는 음식과 함께 하는 술은 최상의 기쁨을 선사하지만, 

 2차, 3차로 이어질 때는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인지, 술이 나를 마시는 것인지.. 더 이상 구분하기가 어렵다.

숙취가 없는 날에도 그다지 기분이 좋진 않다. 머릿속에 맑지 않고, 

볼록한 뱃살과 부은 얼굴은 나를 한없이 자괴감이 빠지게 한다.

특히 숙취로 인해서 하루를 그냥 침대에서 보내야만 하는 날은 나 자신이 그렇게 한심하기 짝이 없다.




술을 잘 마시는 체질도 아니면서 나는 왜 그렇게 술을 좋아할까?

술이 좋은 이유는 일단 맛이 있다. 각각의 술마다 가지고 있는 맛이 다르고 어울리는 음식도 모두 다른데, 

음식과 술의 합이 딱 맞았을 때의 그 기쁨은 뭐라고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다. 

입안에 느껴지는 음식의 맛과 술의 향이 온몸을 펴져가며 세포 하나하나를 깨운다.

몸이 약간 나른해지면서 일주일간의 긴장과 피로가 사르르 녹는 그 편안한 느낌도 너무 좋다. 

또 술이 한두 잔 들어가면서 사람들과의 친밀감이 깊어진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사람들과의 만남에선 

쭈뼛거림이 있는데, 술을 마심과 동시에 금세 죽마고우가 되고, 흥이 넘친다.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 나의 여가시간의 모든 것은 술과 함께였던 것 같다.

운동을 해도, 음악을 들어도, 쇼핑을 해도 마무리는 늘 술이 있었다.

잦은 음주에도 불구하고 아직 건강히 잘 살아 있는 것을 보면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술들아..  헤어지기 아쉽지만 이제 너희를 보내줘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임신, 출산, 수유, 임용고시 등 몇 년을 제외하면 나의 주말에 술이 빠진 적은 흔치 않았으니

마실만큼 충분히 마시긴 했어. 

이제  주말도 맑은 정신과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네 생각을 그만하고 싶어

술이 먹고 싶다고 생각하고, 술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고 또 생각하고, 

술 때문에 쓴 돈 때문에 또 생각하고.. 

내 돈도 시간도 건강도 너 때문에 망가져가고 있어. 이제 그만 나를 놓아줘. 제발



하지만 당장 떠오르는 술친구들이 내 발목을 잡는다.

남편과의 운동 후 마시는 시원한 소맥- 매주

언니와 형부와 가끔 만나 마시는 따뜻한 소주, 와인 - 두세 달에 한번

직장 동료들과 가끔 마시는 즐거운 소맥-두세 달에 한번

적고 보니 남편과 매주 마시는 것 이외에는 술친구들과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었구나.

그렇다면 훨씬 더 술과의 이별이 쉽겠군.

잠시 마시고 싶은 욕구만 떨쳐내면 그 후에 찾아오는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무척 크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제 막 재미가 붙은 러닝을 새벽에 벌떡 일어나 잘하기 위해서라도

음주 후 찾아오는 끔찍한 우울감과 자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점점 가벼워지는 통장을 보며 내쉬는 한숨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술과의 이별을 반갑게 맞이하겠다.

술들아.. 그동안 즐거웠다. 이제 다른 즐거움으로 환승이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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