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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K Mar 04. 2024

[몬테크리스토] 가자, 몬테크리스토 섬으로!

정의는 갖는 자의 것, 사랑은 주는 자의 것

2월 25일을 기점으로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국내 육연이 막을 내렸습니다. 연출부터 넘버 구성, 캐스트까지 완전히 새로워진 항해의 시작, 'All New Monte Cristo'를 표방한 시즌이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첫 관극이라, 더 큰 설렘을 가지고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철몬테 - 허메르 페어로 보고 왔어요.


포토존도 배 콘셉트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어요. 극장에는 50분 가량의 여유를 두고 도착하시는 편을 추천합니다!



줄거리 소개


19세기 초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삼총사』의 저자로도 잘 알려진 알렉상드르 뒤마의 1846년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원작으로 두고 있어요. 영화 「올드보이」에서는 직접 이름이 언급되기도 할 만큼 후대 많은 작품의 영감이 된 위대한 고전입니다.


주인공 '에드몬드 단테스'는 마르세유의 촉망받는 일등 항해사입니다. 능력을 인정받아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도 곧 상선 파라온 호의 선장 자리를 물려받을 예정이었고, 긴 항해를 마치고 돌아와 아름다운 연인 '메르세데스'와 약혼합니다.


메르세데스를 사랑해 그녀를 빼앗고자 했던 '몬데고', 선장 자리를 탐냈던 파라온 호의 회계사 '당글라스', 그리고 정치적 야심을 가진 검사 '빌포트'는 에드몬드를 시기해, 또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에드몬드를 나폴레옹에 협력한 반역자로 모함합니다. 에드몬드는 수감된 이유도 모른 채 악명 높은 감옥, '샤또 디프(Château d'If, 이프 성)'의 지하 감옥에서 14년간 갇혀 지내게 되어요.


에드몬드는 옥중 대단한 학식을 가진 '파리아 신부'를 만나는데, 파리아 신부는 에드몬드를 아들처럼 여기며 정치, 경제, 외국어, 검술을 비롯한 여러 학문을 가르치며 그에게 몬테크리스토 섬에 숨겨진 어마어마한 보물에 관해 알려줍니다.


지병을 앓던 파리아 신부는 결국 옥중에서 숨을 거두고, 그의 죽음으로 탈옥 기회를 얻은 에드몬드는 샤또 디프를 탈출해 몬테크리스토 섬의 보물을 찾아 엄청난 재력가가 됩니다. 이후 자신이 믿던 사람들에 의해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에드몬드는 스스로에게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새 신분을 부여하고 이들에게 복수를 합니다.



관극 포인트

원작 소설, 이전 프로덕션과의 차이점


Fiat iustitia et pereat mundus

팀파니와 앙상블의 화음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프롤로그 넘버, <살아남아야 할 이유>로 1막이 시작됩니다. 첫 넘버의 첫 가사는 'Fiat iustitia et pereat mundus'라는 라틴어 가사예요. 영어로는 'Let justice be done, though the heaven may fall', 한국어로는 '하늘이 무너질지라도 정의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정도가 되겠어요. 전체 극을 관통하는 주제와도 같은 가사라고 생각합니다.


이어 나오는 가사는 'Kyrie eleison'인데, 이 가사는 짐작이 되실 수도 있겠어요. 'Lord, have mercy'라는 뜻입니다. 마지막 가사는 또 'Dona nobis pacem', 'Give us peace'라는 의미고요. 라틴어로 된 가사만 보더라도 복수와 정의, 자비와 평화라는 주요 키워드가 모두 담겨 있어 앞으로 전개될 서사와 극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비단 돛에 보물 가득 채우고
온 세상을 항해해

에드몬드와 옥중에서 임종을 앞둔 파리아 신부님이 함께 부르는 넘버, <우리가 왕이 된다면>은 아마 모든 관객이 눈물을 흘린 포인트였을 것 같아요. 이 넘버도 리뉴얼 과정에서 가사 번역이 수정되었어요. 기존 가사가 영어 원곡에 더 충실하다면 뉴 프로덕션 버전에서 파리아 신부님은 용서 그 자체보다는 그 이후의 삶에서 에드몬드를 버티게 해 줄 '희망'을 살 것을 더 힘주어 당부하고 있어요. 에드몬드 역시 '돌아와 이곳을 파괴하겠다', '배신에 대한 복수를 하고 원래 자기 것이었던 것을 되찾겠다'는 마음보다는 파리아 신부님과 함께하는 희망과 세상을 향한 거시적인 관점의 정의를 더 많이 노래하고 있는 게 보였어요.


그 후로 당테스는 완전히 행복해졌다.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게다가 어쩌면 자유의 몸이 될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에 그대로 감옥에 갇혀 있게 된다 하더라도 친구를 갖게 되는 것이다. 갇혀 있더라도 둘이 있으면 반은 자유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입을 모아 같이하는 탄식은 거의 기도와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둘이서 기도를 하면 그것은 거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 알렉상드르 뒤마, 『몬테크리스토 백작』 34호와 27호 中

에드몬드를 아들로 여겼던 파리아 신부님이라면 정말 그런 말씀을 해 주셨을 것 같습니다. 에드몬드에게 파리아 신부님은 외로운 옥살이 중 만난 동지, 또는 단순한 스승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 '말하는 법'을 모두 가르쳐 준 영혼의 아버지였던 것이죠. 에드몬드에게 몬테크리스토 섬의 보물을 유산으로 남기며 그가 오래 품은 복수를 실현할 도구를 마련해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마음을 다해 아낀 아들이었던 에드몬드가 스스로를 위해, 자비와 용서를 알고 복수에서 해방되어 행복한 삶으로 항해해 나갈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인도해 준 것 역시 파리아 신부님이고요.


파리아 신부님의 죽음으로 탈출 기회를 얻은 에드몬드가 샤또 디프를 빠져나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해적 '루이자'와 그 일당이에요. 루이자가 에드몬드의 이름을 물었을 때 에드몬드 '단테스'가 아니라 에드몬드 '파리아'라고 답하는 장면이 있는데, 원작에는 없는 부분입니다.  제작사가 관객을 울리려고 작정한 게 아닌지 ..



돛을 펴고 노를 저어라
자유를 향해

이 세상엔 진짜도 가짜도 없다네

루이자 뱀파의 호쾌한 매력이 돋보이는 넘버, <진실 혹은 대담> 무대 연출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기존 무대의 크고 화려했던 해적선이 사라져 아쉬워하는 팬이 많았어요. '돛을 펴고 노를 저어라'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럴 배가 없다며 ...


하지만 원작 소설에서 루이자는 산적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심지어 '루이지'라는 이름의 '남자' 산적입니다. 해적 루이자라는 캐릭터는 원작에 등장하는, 샤또 디프를 탈출해 표류하고 있는 에드몬드를 구해 준 밀수선의 선장과 선적 루이지를 결합해 탄생한 것으로 보여요. 화려한 연출이 묘미인 대극장 뮤지컬로써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어도 이런 점을 생각하면 저는 이번 연출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선물할게 끔찍한 지옥 너희들에게
분노한 신의 뜻을 대신하겠어

'지옥송'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몬테크리스토의 대표 넘버죠.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은 의뭉스러우면서도 신비롭고, 속을 알 수 없는데 그 점이 또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인, 아름다운 뱀 같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부른다고 생각했을 때는 EMK 뮤라스에서 김성철 배우님이 부른 것처럼 서늘한 해석이 꼭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불타는 지옥 같은 무대 연출, 신의를 다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해 가장 찬란한 미래와 사랑을 한 순간에 송두리째 빼앗긴 열아홉 청년의 한이 응축된 넘버라고 생각하면 토해내는 분노, 쏟아내는 절규가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파리아 신부님, 당신이 틀렸길 간절히 바랐는데....... 이제 저는 복수라는 악마에게 제 영혼을 팔 겁니다!"라는 한 줄 대사,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렸다 고개를 치켜드는 모션 한 번에 에드몬드 단테스에서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눈빛부터 돌변하는 걸 '철몬테' 김성철 배우님이 정말 잘 연기해 주셨어요.


영상으로만 볼 때는 소름 돋는 넘버라고만 생각했는데, 극장에서는 이 무서운 가사와 폭풍 같은 연기 속에서 눈물이 났어요. 눈에 별이 가득하고 천진한 희망을 보던 에드몬드가 분노 하나로 사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되기까지 겪어야 했던 잔인한 세월이 너무 슬프고 억울했고, 거대한 부를 손에 쥐게 되었다고는 하나 에드몬드가 사랑했던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은 상황, 가장 빛나는 젊음의 때와 사랑의 순간을 몽땅 빼앗겨버린 것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참 아프게도 느껴졌습니다.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은 1막의 마지막 넘버이기도 합니다. 2막으로의 관문이기도 하지만, 바다와 메르세데스밖에 모르던 순수청년 에드몬드 단테스에서 복수로 삶을 지탱하는, 잔인성과 냉정성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서의 인생 2막으로 가는 전환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기도 해요. 젊은 혈기가 있어 뜨겁게 사랑할 줄 알았고 뜨겁게 분노할 줄도 알았던 에드몬드 단테스의 마지막 모습이자 그에게 바치는 장송곡이라면 또 절규에 가까운 해석이 더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선의(善意)여, 인정이여, 은혜여, 안녕!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모든 가정이여, 안녕! 나는 착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대행하였도다....... 자, 그럼 이제부턴 복수의 신이여, 악한들을 벌하기 위해 그대의 자리를 내게 양보하라!"

- 알렉상드르 뒤마, 『몬테크리스토 백작』 9월 5일 中


너희들이 사라져야 복수도 완성되지
너희들을 절망의 지옥으로 보내주마

이것이 정의

파리의 사교계에 자리를 잡은 에드몬드는 복수에 다다릅니다. 단순히 과거 자신에게 누명을 씌웠던 일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이전에 악당 3인방이 저지른 악행이 함께 드러나면서 파멸에 이르는 구조예요. 절망 끝에 흑화 한 몬테크리스토가 되었다고 해도 그 깊은 곳에 있는 자아, 에드몬드는 에드몬드였기에 완전한 잔인함과 악성을 가질 수는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원작에서 복수는 교묘하게, 천천히, 뱀이 먹잇감의 숨통을 조이듯 오래오래 공들여 말리는 과정으로 그려지는데 시간제한이 있는 뮤지컬에서는 넘버 하나 정도로 압축된 것이 조금 아쉽다면 아쉬웠달까요. 그래도 이전 프로덕션보다는 서사 구조와 원작의 디테일에 충실해진 점은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사실 2800 페이지에 달하는 규모의 소설을 세 시간 남짓의 뮤지컬로 담아낸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분노 버리고 이제 자유야
저 하늘의 우리 둘의 별이 날 그시절로 이끌어
아름답던 그 시절


복수의 끝에 선 몬테크리스토는 파리아 신부의 마지막 당부였던 '용서'를 기억해 냅니다. 그리고 지금껏 그를 움직여 온 분노의 감정과 복수를 내려놓고 자유해지기로 하죠. <우리가 왕이 된다면>에서 왕이 되면 되찾겠다고 했던 것이 바로 이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용서의 경이를 통해 희망을 보던 마음을 되찾은 거예요.


<과거의 나 자신> 넘버까지 오면서 꾸준히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별'입니다. "빛나는 저 별이 보이지, 빛나는 우리의 별 - 우린 사랑하니까", "작은 별 하나 온 세상 밝히듯 그대 비추는 나를 볼 수 있나요 - 언제나 그대 곁에", "저 별 하늘에서 빛나 밝게 저 달 너머에서 아직 약속 기억하며 사랑 기다리며 - 우리의 별", "밤새도록 기도해요 돌아와 달라고 우리 둘의 작은 별 바라보며 - 하루하루 죽어가", "별빛이 세상 밝히듯 내 소중한 사랑 - 진실 혹은 대담", "달빛 너머 별빛 따라 날 찾아온 당신의 달콤한 입술 느낄 땐 하늘을 날듯이 - 온 세상 내 것이었을 때"


저는 이 별이 '에드몬드'의 상징이자 희망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메르세데스와의 사랑의 상징이기도 하고요. 밝은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었던 때, 메르세데스와의 사랑이 굳건하다는 믿음이 있을 때 늘 '별'을 노래하던 에드몬드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된 이후에는 별을 바라보기를 그쳤거든요.


그래서 다시 '우리 둘의 별'을 기억해 낸, 이 넘버를 부르던 몬테크리스토의 모습에서 이프 성을 탈출하던 날 끝도 없이 어두운 바닷물에 함께 빠져 죽었다고 생각했던 '에드몬드 단테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았던 게 깊은 인상으로 남습니다.


Exit music도 <과거의 나 자신>이었던 게 참 좋았어요.



정의는 갖는 자의 것, 사랑은 주는 자의 것

이 세상에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상태와 다른 상태와의 비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불행을 경험한 자만이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막시밀리앙 씨, 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기 위해서는 한번 죽으려고 해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두 분은 부디 살아서 행복해지십시오. 그리고 신이 인간에게 미래를 밝혀주실 그날까지 인간의 모든 지혜는 다음 두 마디 속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당신의 친구, 에드몽 당테스
몬테크리스토 백작

- 알렉상드르 뒤마, 『몬테크리스토 백작』 10월 5일 中

원작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에드몬드가 모함받을 때에도 끝까지 그를 믿고, 결백을 밝히려고 노력했던 파라온 호의 선주 '모렐' 씨의 아들 '막시밀리앙'과 그의 아내에게 남긴 편지예요. 뮤지컬에서는 막시밀리앙이 등장하지 않지만, 이 편지는 에드몬드가 스스로에게 전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상상도 못 할 가장 큰 불행을 경험한 에드몬드이니 이제는 가장 큰 행복을 향한 항해를 떠난 거겠죠.


글의 끝에 다다르며,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슬로건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결국 정의도 사랑도, 희망의 눈을 들고 그 '별'에 닿기를 결심하고 항해를 나선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의미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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