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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Oct 30. 2022

죽을 준비를 합니다.  

떠날 준비를 한다는 것

 언제고 죽음의 문턱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여전히 살아있네요. 

그날 이후로 난 우리네 삶이 언제고 급작스럽게 아무런 의미 없이 종료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죽어보진 않았지만 떠나가는 자들을 배웅할 때면 안타깝게도 죽음이 우리가 그리 바라는 것처럼 의미가 가득 담겨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삶을 더 사랑하겠다느니 순간을 만끽하기 위한 동기적 마음가짐이 아닙니다. 오늘도 그리고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절대적 믿음입니다. 


 난 매일 밤 죽을 준비를 합니다. 오늘 하루는 다행히도 아무 일 없이 지나왔습니다. 잠들기 전 잠깐의 고요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하루의 끝입니다. 나를 돌보고 돌아볼 수 있는 파수꾼의 시간입니다. 진실 되도록 떠날 준비를 하게 될 때면 이루지 못한 미래를 그리기보단 지나온 나날들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죽음이 아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문턱을 넘어 하루가 더해져 오늘이 오기까지 뜨겁게 사랑했고 으스러지게 열심히 살아왔으며 한치의 부끄럼 없이 살아오려 했습니다. 비록 조금의 부족함은 있을지 몰라도 이 정도라면 기꺼이 내 삶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수 있습니다. 눈을 감습니다. 


 요란한 알림이 베개 속 파묻힌 귀를 울리는 걸 보니 지난밤 동안 난 죽지 않았습니다. 적당하게 눈이 부십니다. 불편한 갈증이 느껴집니다. 내 눈앞에는 내가 무어라고 모든 걸 믿고 내려놓은 채 통통히 부은 얼굴로 평안히 잠들어 있는 연인이 있습니다. 의지하는 종교가 없어 경건하지 못한 자세이지만 난 매일 아침 새로운 삶에 감사를 전합니다. 다행입니다. 살았습니다 오늘도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끝과 삶 사이에 다시 한번 하루를 얻었습니다. 치밀한 놈이라면 1년 10년 수십 년 대계지계를 세우며 살겠지만 난 그 정도로 똑똑하지 않습니다. 그저 떠나는 날인지도 모른 채 영원을 살 것처럼 낭비한 채로 돌아가기가 죽을 만큼 싫을 뿐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 순간이라도 더 만날 수 있어 감사합니다. 


나는 매일 밤 죽을 준비를 하고 매일 아침 조용히 되뇝니다.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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