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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Nov 14. 2023

이삿날

 이삿날이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짐을 확인하고 문을 닫기 전 2년 동안 탈 없이 지내온 1423호의 방안을 바라보며 합장을 했다. 무탈함에 대한 감사인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하강한다. 14.. 10.. 7.. 1.. 

 줄어드는 층수 끝에 로비에서 1423호의 임대인과 만났다. 


 내 앞에 이 남자는 내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인 지긋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존댓말과 함께 내 이름에 꼭 씨를 붙여 불렀다.  


… 해영 씨 2년 동안 첫 입주인 하자 신청부터 수리까지 귀찮았을 텐데도 부탁드린 데로 잘해주셨어요.

그리고 깨끗하게 써줘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하시는 일 잘되시길 바라고요. 어디로 가시죠? 

… 그렇게 멀지 않아요 바로 다음 역이에요. 전세구요.

… 그래요.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젊은 날 많은 꿈들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 


남자는 악수를 청했고, 조그마한 봉투를 건넸다. 


… 이건 다른 것보다. 깨끗하게 써주셔서 임차인으로 드리는 호의입니다. 이사는 정신없잖아요. 식사라도 드시면서 하시고, 이사 잘 마무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에게 진심을 담아 꾸벅 깊이 인사를 했다. 거리도 가까울뿐더러 여덟 박스에 자잘한 짐뿐이라 기사님과 내가 몇 번 왔다 갔다 하니 이사는 금세 끝났다. 나머지 짐정리는 내 몫이다. 아무래도 들어있는 것들이 중요하다 보니 컴퓨터 연결에 우선적으로 손이 가게 된다. 


작동하지 않는다. 깜깜무소식이다. 


 그럴 수 없어. 마감기한이 일주일 남은 보내야 할 외주, 그동안 써왔던 글, 만들어 놓았던 포트폴리오 영상, 

이안에 20대의 내가 들어가 있는데. 너 불러져 있는 짐들 사이로 애처롭게 고장 난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굳이 다가올 불운이라면 빗겨나가지 않게 내게 오게끔 해달라는 기도들을 참회한다. 신은 이러한 부탁은 잘 들어주는 편인가 보다. 


 시작이 심상치 않다. 하지만 사는 건 원래 심상치 않다. 사단이 날려면 이렇게 난다. 


 혹시 컴퓨터 안 쪽 설치된 부품이 흔들릴까, 고대 유물 다루듯 내부 외부 과할 정도의 포장을 했지만, 품 안에  모시지 않고 덜렁이는 트럭 뒤에 실어버린 내 잘못이다. 몇 시간이고 작동하지 않는 컴퓨터와 씨름하는 동안 짐들은 요란스럽게 쌓여있고 J 홀로 정리를 하자니 짐정리에 진척이 없이 어질러지기만 더했다.   


…쿵쿵쿵쿵 

… 누구세요? 

…어 할아버진데 

…네 어르신. 


 두툼한 와잠, 금 씌운 왼쪽 아랫송곳니, 여전히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아랫입술을 삐쭉 내밀고 있는 노인.

집주인 기택이다. 


… 이백사호 벌써 이사하고 있어? 온 줄도 몰랐네.  

…아 예 어르신 아직 하고 있습니다.

… 정리는 잘 돼가?

… 이제 천천히 해야죠. 하하하. 


 고장 난 컴퓨터, 물게 될지도 모르는 수백의 위약금, 엊그제 기택이 맛있게 차려준 상욕들이 

머릿속에 비벼져서 아직 더부룩하다. 기택의 방문이 달갑지 않았다.

빨리 사라지길 바랐다. 


… 들어가도 돼? 

그럼 그렇지. 

… 그럼요. 

…그 저 뭐야. 다름이 아니고, 그 어 이래 싸구려 도배지를 해놓고, 청소도 옳게 안 하고 말이야. 청소비 ‘5만 원’을 주고 사람 써서 청소를 했는데,  근데 그렇게 개차반으로 집을 해놓고 가서 80 먹은 할아버지가 이걸 다 청소하고 옮겼다니까? 다른 것보다 내가 다 치우고 했단 말이야  할아버지 혼자서 몸도안 좋은데 이거 어쩔 거야? 

… 아이고, 죄송합니다. 노여움 푸시고 있는 동안 깨끗이 잘 살다나 가겠습니다.


J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건 무슨 일인가 싶었겠지. 슬슬 그의 말에 욕이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 아니 깨끗이 살다 나가는 건 이백사호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인건비를 주고 청소를 했는데 개판을 쳐 만들어놓고 갔어 가구는 다 빼놓고 말이야. 할아버지가 혼자서 다 청소를 했어. 그리고 우리 집 벽지 최고급 외진데 이런 싸구려 벽지를 한 거야? 

… 말씀드렸다시피 이전에 벽지가 누렇게 물들어있고 갈라져서 안에 시멘트가 보였어서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여기 사진 보시겠어요? 

…그럼 수준에 맞는 벽지를 하던가! 그건 난 모르겠고, 중요한 건 몸도 안 좋은 내가 이걸 다 ‘청소’를 했다니까. 이백사호는 2년 살고 나가지만 가고 나서는 내 집이라고! 다음 사람도 들어와야 할 건데, 싸구려벽지에 옆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딴 데다 맡겨가 집이 더러워서 내가 견딜 수가 없어서 내가 다! 청소를 했다니까!  


기택에겐 이전에 누런 자국과 찢어진 벽지 노출콘크리트가 더 취향에 맞나 보다. 


… 저한테 연락을 주셨으면 제가 와서 다 청소했을 텐데요.

 … 젊은 사람 바쁜데 뭐 그런 거 연락한다고 오나? 가구는 왜 빼놔 가구가 좀 무거워? 

… 말려야 해서 하루이틀 빼놓는 게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두툼한 얼굴은 금세 시뻘게지고 기택빌이 울리도록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기 시작한다. 반복에 반복. 청소비 5만 원. 자신의 노고. 고급 벽지. 반복에 반복. 청소비 5만 원. 자신의 노고. 고급벽지 실크벽지, 5만 원, 5만 원, 5만 원 


… 어르신 아직 짐정리도 못 끝내서 여기 서계시기도 힘드시잖아요. 끝나고 제가 음료수라도 사서 올라가겠습니다.


 꼼짝 않고 눈을 부라리며 시뻘건 아갈머리에서 육두문자를 뽐내는 걸 보니 이것도 아닌가 보다.   


… 어르신 그러면 제가 청소비 5만 원 입금을 했으면 하시는 거예요? 


 곧 넘어갈 듯 소리 지르던 기택의 얼굴이 혈색을 찾아갔다. 쩝 소리를 내며 입맛을 다시고는 두터운 입술을 다시 놀려댔다. 


… 아니~ 5만 원이 돈이야? 그 돈 받겠다고 그러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힘들었다 이 말이야 할아버지가!! 


 결국엔 이거였나 싶어 허리를 굽혔다. 


… 어르신 제가 지금 집이 정리가 안되었는데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청소비 보내드릴게요 

 노여움 푸셔요. 


 딱 맞는 간식거리였는지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공갈젖을 물린 듯 금세 기택의 고성방가가 멈췄다. 


… 이백사호! 태도보고 할아버지가 그냥 이렇게 넘어가는 거야. 다른 사람은 이렇게 안 넘어가! 

바쁠 텐데 어서 얼른 짐정리해. 


그는 사라졌다.  


이대로 이삿짐과 고장 난 컴퓨터 사이에 있다가는 무너져버릴 것 같아 곧장 편의점으로 달려가 2년간 끊어버렸던 독한 담배를 구매했다. 한 개비 두 개비, 열 개비가 되도록 연기하나 새어나가지 않게 폐 속 깊이 가둬둔 채 피워댔다. 헛구역질이 났다. 하늘이 빙빙 돈다. 이윽고 빈속에 쓴 물만 계속 토해냈다. 뭐라도 게워내어야만 할 것 같다. 


구웨에에엑. 구웨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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