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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Apr 01. 2024

낡은 책 한 권 앞에서

책장을 정리하다 낡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불필요한 물건들도 정리하며 한 스님이 준 가르침도 되새겨 보았다.


팔만대장경은 불교계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단한 문화유산이다. 해인사에 보관된 이 대장경 앞에서 어떤 방문객이 무심코 던진 "이 빨래판 같은 것들이 무슨 가치가 있냐?"는 말이 들려왔다. 다른 이들이라면 농담 정도로 흘려들었을 법한데 이에 큰 충역을 받은 이가 있었다.


젊은 수행자였다. 이 스님은 그 충격에서 헤어나 쉬운 언어로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데 평생을 바쳐 불교대중화에 기여했다. 후일 수필가이자 명문장가로 필명이 높은 스님이 되었다.


스님은 그 후 대장경의 법어를 해석하는 역경 일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 결실을 맺었다. 나아가 불가에서 스님들만의 방식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그치지 않고 대중들이 이해할 있는 쉬운 말로 글을 썼다. 그렇게 태어난 책이 <무소유>라는 베스트셀러였다.


늘 실천이 어렵지만 단순하게 살며 정신을 가다듬으려 하는 것은 어릴 때 아버지의 손때가 묻어 있었던 작은 책,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었던 영향이 컸을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수십 권의 법정의 저서는 무소유 정신과 자연 속에서 느낀 수행자의 담백한 마음을 담고 있다. 그렇게 모은 수십억 원의 인세는 어떻게 했을까. 궁금증이 일어났지만 이내 그 용처를 알 수 있었다.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으로 전액을 기부하거나 꼭 필요한 사업에 기탁하고 남은 낡은 가사 한 벌과 원고지에 몇 자루 필기도구가 전 재산이었다. 


출판사 사장은 2월 무렵이면 인세를 독촉하는 법정의 성화에 돈을 밝히는 속된 성직자로 오해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어려운 학생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는 것임을 알고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송광사 불일암과 강원도 오두막에서 수십 년을 혼자서 생활하며 그 흔한 불교계의 벼슬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산 수도승의 삶은 그 책의 내용과 다를 바가 없었다. 스님을 기리는 마음에 도심 한켠에 있는 길상사를 찾곤 했다.


“어리석은 탓에 저지른 금생(今生)의 허물은 앞으로도 계속 참회하리라.” 

“내 것이라고 할 것이 남아 있다면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위해 써 달라.” 

“번거롭고 부질없고 많은 사람에게 수고만 끼치는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라.”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 

“내 이름으로 출판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


2010년 타계하고 더 이상 스님의 정신이 담긴 책들도 저자가 글 빛이라 여기며 모두 거두어 달라는 유언에 모두 절판되었다. 맑고 향기롭게 살라는 정신은 욕망의 도시에 쉬이 스며들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스님의 쉽고 담맥한 글은 가끔 보면 울림이 크다.  


J. Massenet - Méditation (Yoon Kyung Cho) 첼리스트 조윤경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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