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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Apr 23. 2024

지휘자와 리더십

세계 몇 대 오케스트라는 어디인지를 묻는 것은 서열을 매기고 격을 정해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구분하려는 심리가 은근히 잠재돼 있다. 음악전문지나 음악평론가들은 늘 신성들을 찾기도 하고 역사적인 내력을 살펴보며 리스트를 매기기도 한다.


오케스트라의 서열을 묻는 후배의 질문에 대답을 망설이다가도 "그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사랑하면 그만이고 당신 동네 오케스트라의 구민회관 공연도 정말 멋진 공연이 될 수 있으니 쓸데없이 겉멋에만 취하지 말라"라고 무뚝뚝한 대답으로 끊어냈다. 그렇지만 내심 평가의 회로를 돌렸다.


오케스트라의 월드 클래스를 말할 때 단연 베를린필을 꼭대기 자리에 앉히는데 반대하는 이도 드믈 것이다.

신년음악회로 친숙한 빈필도 취상위권에 들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뉴욕필이나 런던필 또한 도시의 매력도에 비례해 앞자리가 예상된다.


그렇지만 3대를 말할 때 내 마음에서  뺄 수 없는 건 언제나 베를린필과 뉴욕필, 그리고 카라얀과 번스타인의 존재다. 베를린필에게는 유감일지 모르지만 인간적으로는 번스타인의 뉴욕필에 점수를 더 주고 싶은 심리 때문인지 애써 둘을 라이벌의 위치에 올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토스카니니부터 뉴욕필의 포디엄을 거쳐간 거장의 면모 또한 화려하다. 로린 마젤은 평양 공연을 이끌어 화제가 된 바도 있다. 상임지휘자보다 객원지휘에 신년 음악회에 많은 노력을 쏟아붓는 빈필은 아무래도 3대 오케스트라에서 말석에 두고 싶다.


바흐, 베토벤, 브람스, 3B 작곡가가 무게감을 더하는 전통의 독일과 베를린은 언제나 라이벌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카라얀의 35년 왕국, 푸르트뱅글러, 사이먼 래틀을 거쳐 이제는 12번째로 키릴 페트렌코가 선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베를린필의 역사에 한 세대를 관통하는 긴 시간을 점유한 카라얀의 존재는 황제와도 같은 위엄이 있다. 실제로 카라얀은 음반시장의 전성기에 베를린필에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안겨준 슈퍼스타로 자신은 5억 달러 이상의 개인 재산을 남길 정도로 오스트리아 역사에서 20세기에 가장 출세한 인물의 하나가 되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발트하임 유엔 사무총장을 아는 이도 드물 것이기에 단연 우뚝한 이름이다.


카라얀은 특유의 신비주의 탓인지 찬바람이 쌩쌩 부는 스타일이라 단원들과의 사적인 어울림은 거의 없었다. 리허설에는 언제나 추상같은 지적과 정확한 연주에 대한 불호령이 있었지만, 그의 카리스마는 언제나 최상의 대우와 최고의 자리에 베를린필과 그 단원들을 앉혔기에 불만을 표출하기도 쉽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의 퇴임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알려져 있다. 단원 채용 시 부당한 특혜가 있었다는 내부의 불만이 도화선이 되어 카라얀 왕조를 무너뜨렸다. "인사가 만사", "일방통행식 소통의 한계" 같은 우리가 신문에 자주 보는 언어가 당시 유력지의 지면을 장식하며 카라얀의 발목을 잡았다.  

 

반면에 카라얀이 발밑에 두고 잘 응대해주지 않았던 번스타인은 뉴욕필의 침체기를 탈출시킨 최초의 미국인 지휘자로 소통과 화합의 달인이었다. 동성애 논란, 매카시즘의 광풍에 쓸려가기도 했지만 현대음악을 클래식에 부단히 접목시킨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작곡가로도 명성을 더했다. 단원들과 세심하게 소통한 번스타인은 따뜻한 리더십으로 뉴욕필을 이끌었다. 단원들의 생일, 부모의 고향까지도 꿰차고 챙길 정도로 단원 한 명 한 명에 정통했고, 잦은 식사로 그를 진심으로 따르는 단원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 화음은 절정의 아름다움으로 빛났다.


소통의 협화음을 찾는 건 포디엄 위의 지휘자에게서만이 아닐 것이다.


Bernstein: Symphonic Dances from West Side Stories / Dudamel · SBYOV · BBC Proms 2007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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