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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Apr 19. 2024

체르니를 다시 펼치며

#장면 1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라고 말한다. 고교를 마쳤지만 읽고 쓰는 걸 익힌 초등학교 이후로 학교는 건성으로 다니며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체육특기자 출신이기에 그랬을 것으로 짐작한다. 놀랍게도 지금은 일 년에 책을 200~300권은 읽는다고 한다. 그 유명한 자신의 아들에게는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는 않았고, 그저 책 읽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밑줄 친 책을 아들이 잠자는 머리맡에 갖다 놓은 적은 있었다고도 한다. '기본'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체력훈련과 기본기를 중시하며 유망주의 싹이 보였던 청소년을 혹독하게 몰아붙인 이야기는 유명하다. 여전히 '월드 클래스'는 아니라며 아들이 겸손을 잃을까 두려워서인지 과대포장되었다며 연신 깎아내리기 바쁘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이야기다.      


#장면 2

혼자 내던져진 방에서 소녀는 울고 또 울었다. 손이 아플 정도로 했지만 진도는 엄마의 요구에 미치지 못했다.두 손이 건반 위에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듯한 대가의 음반을 들을 때면 언제 저런 경지에 오를까 거대한 벽을 느꼈다. 그래도 몰아붙이는 엄마가 괴물처럼 느껴져 피아노를 부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화려한 경력을 쌓고 '월드 클래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시기에는 유방암이 찾아왔다. 피아니스트는 기도했다. 제발 제 손의 감각을 잃게 하지는 말아 달라고. 피아노가 없는 삶은 죽음과 같다며. 다행히 명의의 치료를 받고 손의 감각을 잃지는 않았고 무대에 복귀했다. 재미 피아니스트 서혜경은 어린 시절 체르니를 익히며 한 단계씩 벽을 넘으면서 좌절했던 순간이 없었다면 '월드 클래스'는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장면 3

어둠 속을 가로질러 도서관으로 향하는 청년의 모습이 힘들고 외로워 보였다. 고시공부가 힘들다며 보채지는 않았지만 자신감을 잃고 어깨가 쳐진 것 같았다.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며 아이스 브레이킹 겸 전하고자 한 것은 싱겁기 그지없는 '기본'에 대한 것이었다. 양념을 쳐서 얘기하려다 보니 생각난 대로 몇 가지 장면들과 직접 만나서 들은 생생한 이야기들을 전했다. 학위 논문 막바지에 이런저런 벽을 느끼며 배추 한 '포기'가 생각날 때 느낀 순간의 경험도 곁들이며 어깨를 토닥였다.


책을 읽고 기본기를 다지고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일을 강조하는 것,  어린 세대에게 '턴 투 더 베이직'이라는 싱거운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일 것이라 '꼰대 프레임'에 빠질까 늘 두렵기도 하다. 피카소는 아이가 되는데 평생이 걸렸다며 꼰대스러운 생각에서 탈피하고자 발버둥 친 예술가다. 미술교사였던 파카소 아버지는 손웅정 감독과 닮았는지 데생과 소묘를 가르치며 고사리손 피카소를 미술의 세게로 이끌었다. 그 때문인지 누구보다 정밀한 묘사로 주위를 놀라게 한 미술 신동 피카소 시절도 있었다. '아비뇽의 처녀들'과 입체파는 기본 과정을 건너뛰고 태어난 괴물은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의 여명은 어둠을 가를 것이고,  기본을 탄탄하게 다지는 이들에게 찬란한 태양은 언젠가 그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한글,이탈리아자막]Tosti-L'alba separa dalla luce l'ombra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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