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생활에서 가장 애석한 점은 사람들이 대부분 완전히 태어나기도 전에 눈을 감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방관하거나 관찰하는 일에서 나아가 자신의 삶을 사는 방법을 잊어버린 이들이 많다. 스스로 돌아보니 이 말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직하지만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을 바보라고 욕할 시간에 자신의 나무를 심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우리 편에 있거나 속도를 늦추어주지 않는다.
'AI'라는 문구가 홍보에 활용되지 않은 전자제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AI는 일종의 유행어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인간을 기계가 지배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꾸준히 제기된다.
지치지도 않고 거대한 정보 덩어리를 뚝딱 학습하고 질문에 그럴싸한 답을 내놓는 모습에 이제 우린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지 거대한 질문의 파도가 몰려왔다.
그렇다고 번민 속에서 정작 하고 싶은 것들을 놓치고 우물쭈물하며 기계보다 더한 내면에서 오는 두려움의 지배를 받고 살 수만은 없다. 인간은 그런 불완전을 안고 살지만 불완전한 지식으로 글을 쓰고 가슴으로 소통하는 일은 다른 사람의 비판의 도마에 기꺼이 오르겠다는 작은 용기이기도 하다. 작은 책을 퇴고하니 부끄러움이 더 커진다.
어떤 면에서 인공 지능에 비하면 자연 지능은 지극히 비효율적이고 에러가 많다. 그렇다고 이 결점 투성이 자연 지능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성능에 대한 걱정보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기능을 가다듬어 우직한 행보를 하다 보면 작은 언덕을 넘는 성취의 보람도 찾아온다.
지구가 출현하고 수많은 생명체가 명멸해 간 세월이 한 달 정도라고 하면 인류가 존재한 기간은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다. 게다가 넉넉잡아 100년 정도 되는 인간의 수명은 금세 지나가는 시간이다. 찬바람이 불고 달랑 한 두 장 남은 달력이 우리를 지켜볼 때면 늘 마음이 쫓긴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로 많은 이들이 죽음에 임박해서 느끼는 심리 상태를 관찰하고 '죽음학'이라는 영역을 개척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명언이 떠오른다.
평생을 죽은 채로 살았던 사람들이 정작 눈을 감는 순간이 오면 가장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