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잔치 소감문을 준비하며
단도박 기념 잔치를 앞두고
100일, 1년, 2년, 3년 ···, 나의 단도박 경력 기간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GA(Gambler's Anonymous, 익명의 도박중독자들) 모임에서 이번 주 잔치가 있다. 나의 3년 잔치, 우리 모임 최고참 선배님의 8년 잔치를 합동으로 연다. GA에서는 각자 또 하나의 생일로 여기는 단도박 시작일이 비슷한 연유다.
단도박 잔치 행사에서는 중독 당사자뿐만 아니라 배우자나 가족이 함께 참여해서 소감문을 발표하고 서로 축하와 격려의 말을 나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100일부터 돌잔치, 그 후 매년 생일을 기념하는 것처럼 도박중독에서 벗어나 단도박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제2의 삶을 잘살고 있다'는 축하와 격려의 의미를 함께 나누는 이 날을 GA에서는 매우 중요한 행사로 챙긴다. 자신이 속해 있는 모임의 잔치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모임에서 열리는 잔치에도 시간을 내서 참석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 부부는 수십 명의 참석자들 앞에서 소감문을 발표하기로 되어 있다. 이미 지난 3년 동안 3번의 발표 경험이 있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지만, 아내는 벌써 소감문 작성에 여념이 없다. 내게도 소감문을 미리미리 쓰라고, 제발 건성으로 적지 말라며 채근한다. 나와 정반대 성향인 아내는 1주일 내내 소감문을 썼다가 수정하길 반복한다. 반대로 마감이 임박해야 움직이는 나는 하루 전에서야 시작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단도박 3년 차가 되고선 소감문을 일찍 준비하고 있는 스스로를 바라보니 대견하다.
이번 토요일 저녁이면 포항에서, 거창에서, 심지어 서울에서도 많은 분들이 찾아오실 예정이다. 그들은 우리의 소감문을 들으며 자신들도 비슷하게 경험했을 과거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위안을 얻을 것이다. 소감문을 정성 들여 써야지 그분들이 시간을 내어 먼 길을 온 보람이 있을 테니 소홀히 할 수 없다. 도박 문제라는 공통의 난관을 겪었거나 오늘 당장이라도 문제를 이겨내야만 하는 사람들에겐 도박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사람의 경험담이 얼마나 값지게 느껴지겠는가.
동병상련의 느낌과 내일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위해서 진심 어린 소감문을 작성해야겠다. 회복의 길에 어떤 기쁨과 희망이 있는지 그들은 발표자에게 눈과 귀를 열고 초집중할 테니까.
'망각'이라는 키워드, '잊지 말자'라는 것에 대해 중심을 두고 말하려고 한다. 인간의 나약함이자 과거의 고통을 잊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양면성을 가진 망각. 그냥 놔두면 잊혀 버릴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웠던 시간을 GA 모임을 통해 기억하자고 말해야겠다.
지금은 가정과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지만, 도박에 빠져 있을 땐 산책하는 즐거움이며, 갓 어린이집에 들어간 아이가 자기와 놀아달라고 보채는 애교가 내겐 신경에 거슬리고 귀찮고 심지어 짜증 나는 일이었다. 아이가 부모에 대한 애착이 큰 시기였기에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과 후회가 있다. 잠도 줄여가며 주식과 코인에 미쳐있어 가족에게 소홀했던 수년간의 시간을 반성하기 위해 GA 모임에 참석하는 만큼, 방심하면 다시 예전처럼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경각심을 놓지 말자고 말하면 좋겠다.
중독에 심하게 빠졌을 때를 반성하고 성찰하면 할수록 도박하지 않는 지금의 하루하루는 편안하고 감사할 일이 많아진다. 무엇보다 더 늦기 전에 정상궤도에서 너무도 벗어나 있었던 내 마음을 가정으로 되돌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먹고 쉬며 대화하는 즐거움 속에 나를 들여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