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이야기다. '아, 제발 이런 꿀꿀한 기분으로 출근 안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아침마다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단순히 일하러 가기 싫다는 느낌뿐만이 아니었다. 정신이 또렷하지 못하고 뿌연 안개로 뒤덮인 기분은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웠다. 무슨 활동을 해도 즐거운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활력 있게 산다는 느낌을 알고 싶었다. 그만큼 마음이 늘 찌뿌둥한 날씨처럼 흐리멍덩하고 우울했다. 퇴근 후 술을 마셔봐도, 이를 악물고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을 해 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도저히 못 버틸 거 같아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대기실에는 무표정한 표정의 사람들이 흩어져 앉아 있었다. 의사를 만나서 몇 마디하고 나자 설문지로 검사해 보자고 했다. 30분 동안 설문지를 작성하고 얼마 후 다시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힘드셨겠어요. 검사결과 전형적인 우울증으로 나왔습니다."
별로 놀랍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좋아질 수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의사는 1주일 단위로 약처방을 해 줄 테니 매주 만나서 간단한 상담을 병행하자고 했다. 나는 상담은 근무시간 때문에 어렵다는 내색을 하고 약만 처방받길 원했다.
다음 날 아침, 약을 먹고 1시간쯤 지나자 평소보다 장이 편안한 느낌이었다. 출근길 바깥공기가 상쾌하게 코로 들어왔고 발걸음도 가벼운 느낌이었다.
'기분이 나아진 것 같은데?'
오전 근무시간 동안 그전보다 긴장감이 덜한 것 같았다. 근데 문제는 약발이 오래가지 않는 것이었다. 오전은 비교적 잘 지냈지만 오후가 되면 또 불안해졌다.
좋아질 땐 이제 곧 정상으로 돌아오겠지라고 희망을 가지기도 했지만, 심할 땐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약을 중복 처방받기도 했다. 평소 먹던 양보다 2배 복용했을 땐 약 먹은 병아리 마냥 업무 시간에 책상에 앉아 고개를 꾸벅거렸다.
사회 초년생이라 아직 긴장을 많이 한 탓이겠거니 하며 5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도 사람관계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는데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으니 너무 답답했다. 약을 먹어야지만 하루를 지탱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나는 이대로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닌가 노심초사하며 다른 방법은 없을지 인터넷을 뒤졌다.
약은 오랜 기간 써봤으니 전문 심리상담사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정서적 문제가 있다면 찾아서 해결하고 싶었다. "우울증 심리 상담", 이렇게 검색하니 심리상담센터 몇 곳이 눈에 띄었다. 그중 한 곳을 골라 전화번호를 눌렀다.
"어떻게 저희 센터를 찾으셨나요?"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였다.
"아.. 저 상담 좀 받고 싶은데요..."
막상 전화하고 나서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를 몰랐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셔야 안내를 드릴 수 있어요."
약간 딱딱한 어조로 바뀐 그가 말했다.
"저 우울증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요.. 약을 오래 먹었는데도 개선이 안됩니다. 상담으로 치료효과를 보고 싶어요"
그제야 주저할 것 없이, 난 용건을 또박또박 말했다.
며칠 후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50대 남짓 되어 보이는 남자분과 40대 초반쯤 된 듯한 여자분이 나를 맞이했다. 남자분이 센타장이었다. 그는 목사 자격이 있다고 하였고, 상담사분은 직원 내지는 협업하시는 분 같았다. 여자분이 내민 심리검사지를 건네받고 1시간 반 정도 시험을 치르듯 검사지를 작성했다.
하루가 지나고 결과가 나왔다. 우울증 상태가 심각하다고 했다. 하긴 당시 나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아내를 혼자 방에 두고 옆방에 가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쨌든 30분 정도의 상담 끝에 목사님이 권하는 심리치료프로그램 8주 과정에 참여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심리상담치료를 받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까.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10년 전 50만 원이라는 거금이었다.
아내와 의논 끝에 내가 이토록 힘들고 약으로 한계가 있으니 그만한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시도해 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잘 돼서 약을 끊고도 젖은 솜처럼 무거운 내 마음이 가벼워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희망을 가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심료치료란 건 마음 챙김 명상이었다. 당시엔 우리나라에 막 도입하기 시작할 무렵이라 비용이 비쌌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절실했기에 큰 금액을 지불하고 첫 세션을 기다렸다.
솔직히 첫 세션을 시작할 땐 신기한 경험이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것도 아닌데 나의 호흡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그랬고 나 자신을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자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새로웠다. 더군다나 나 혼자가 아니라 5명이 함께 참여하는 그룹 명상훈련 프로그램이어서 다른 분들과도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것도 내게 의미가 있겠다고 여겼다.
그런데 나를 매우 실망시키는 일이 생겼다. 마음 챙김 명상을 지도해 주었던 목사님이 "혹시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 저에게 전화하지는 마세요."라고 쉬는 시간에 지나가듯 말했던 것이다. '나는 그냥 명상을 가르쳐 주는 사람일 뿐이지, 당신의 우울증으로 인한 다른 문제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힘든 사람에게 전화로 몇 분간 대화를 하면서 위로해 주고 힘내자라는 말을 해 주는 게 그에겐 그렇게 피하고 싶은 일이었을까. 아마 지금의 나였다면 당장 환불을 요구하고 그다음 세션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땐 마음이 워낙 허약할 대로 허약해진 터라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쨌든 그 뒤로 이어진 세션도 내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도자에게 신뢰가 가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 후,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몇 달 전 다시 명상이 찾아왔다. 계기는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 목디스크였다. 회사에서는 간신히 버티며 근무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 몸을 움직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컴퓨터 앞에서 글쓰기를 10분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나마 가장 편한 자세는 의자를 뒤로 약간 젖혀서 목받이에 목을 기대어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 명상이 떠오른 것이다. 유튜브에 명상이라고 검색했더니 엄청난 자료가 쏟아져 나왔다. 옛날엔 큰돈을 주고 배웠는데 지금은 더 알찬 내용으로, 친절하게 유튜버들이 공짜로 가르쳐주니 너무 좋았다. 목 디스크가 생긴 게 어쩌면 내게 명상을 다시 만나게 해 주려고 그랬나 싶을 정도로 기뻤다.
이후 나는 조금씩 명상 연습을 하고 있다. 30분 이상의 긴 시간은 아직 어렵지만 짧게라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다.
명상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져 이런저런 책을 찾았다. 샤우나 샤피로의 '마음 챙김'이라는 책을 읽고선 '와, 이거 내 인생책이다'란 생각이 들었다. 명상의 원리를 깊이 알고 계속 연습하면 우울증 약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날이 머지않으리라는 직감이 들 정도였다.
명상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원리가 아니라 물리적 실체로 수행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신경가소성으로 설명되는 명상의 효과는 아주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내가 느끼는 감정, 생각, 기분을 명상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경이로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