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서 인간은 위인이든 범죄자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모두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한다고 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릴 적 부모님에게 내가 해야 할 일을 잘해 내는 것으로 인정받으려 했고 학창 시절엔 잘 놀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들 무리에 끼어 존재감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어떤 칭찬과 인정도 내가 스스로 그러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별 볼일 없는 일로 끝났다. 나는 더 큰 야망을 향해 질주했다. 나의 노력에 절대 만족하는 법이 없었다. 몸이 망가지더라도 더! 더! 더! 를 외치고 있었다. 아마 모든 일이 잘 풀렸다면 나는 아직도 그렇게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수십 년 그렇게 살아왔지만 나아진 건 없었다. 이제야 손 닿지 않는 멀리 있는 것을 좇지 않고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을 바라보고 지금 여기에 충실하기로 했다. 계기는 최근 아내가 수백 명의 사람들 앞에서 읽은 한 편의 소감문이다. 단도박 2년 기념 소감문에서 아내는 청중이 아닌 나를 향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흘린 나의 회심의 눈물과 앞으로는 정도를 걷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 아내의 글을 이곳에 남긴다.
안녕하세요 저는 Y선생님의 배우자인 가족 P입니다. 이렇게 소중하고 뜻깊은 자리에서 소감문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GA(단도박 회복 자조모임) 선생님들과 가족분들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Y선생님은 10년 전 다단계에 빠지면서부터 중독의 뿌리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회사는 뒷전이었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다단계 사업에 몰두하더니 저와 상의 한마디 없이 회사에 휴직계를 냈습니다. 돈을 벌어 오기는커녕 생활비가 모자라니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식 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 후 알게 됐지만 그건 투자가 아니라 투기요 도박이었습니다. 빚까지 내서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주식 거래를 하더니 나중에는 불법 사이트에 들어가 선물 거래를 했습니다. 제가 큰 아이를 돌보고 둘째도 뱃속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문제의 심각성을 모른 채 시간은 흘렀고, 수년에 걸쳐 남편은 전세보증금과 시댁 어른이 살고 계신 집을 담보로 대출한 돈을 순식간에 탕진했습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이후의 사건들로 저는 Y선생님이 도박중독이라고 판단하고 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은 Y선생님은 자신이 도박중독자라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어려 함께 센터에 갈 수 없었던 저는 Y선생님 혼자서 센터 자조모임에 잘 참석하고 오라 했습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그는 제게 센터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차 안에서, 지하철 역에서 비트코인 거래를 했습니다.
저는 남편과의 이별을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우리 가족 모두 불행해질 것이 자명했기 때문에 저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정말이지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센터에는 도박중독자의 자조모임처럼 중독자의 가족들끼리 모여 회복을 도모하는 가족모임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저보다 먼저 남편의 도박중독을 경험한 모 여사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다시 한번 희망의 끝을 붙잡아 보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저와 Y선생님, 그리고 둘째 아이까지 셋이 함께 GA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당시 4살이던 둘째 아이가 7살이 되었습니다. 여태까지 잘 따라나서 준 착한 둘째 아이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모임 초기, 남편은 도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 달 만에 재발하였고 빚은 더 늘어났습니다. 그때서야 남편은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내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안도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사실을 모임에 참여하면서 익히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1년 반쯤 지나자, 다행히 도박은 멈추었지만 Y선생님 변화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가족은 안중에 없고 무엇이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블로그를 운영하겠다며 틈만 나면 블로그와 카페, 카톡 메신저에 매달려 일상생활은 스마트폰 중독으로 옮겨갔습니다. 반면, 매주 토요일 GA모임에 참석하는 날에는 아침부터 시큰둥한 표정으로 누워있다가 모임에 겨우 참석해서도 집중하지 않고 딴생각하기 일쑤였습니다. 꼬투리 잡을 일이 생겨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하면 이때다 싶어 '앞으로 GA모임에 나가지 않겠다'라며 협박 같은 말을 쏟아냈습니다. 아이들 걱정에 저는 한 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의 자기중심적인 행동은 그대로였고 거짓말을 수시로 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그토록 고통을 겪고도 왜 변하지 않는 거야?'라며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미움, 불만과 짜증에 남편 얼굴을 쳐다보기도 싫었습니다. 이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GA가족 모임에서 터 놓고 얘기할 수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 부부가 이곳에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년이 지난 시점, 모임에서 배운 대로 저는 그 사람을 내 남편, 아이들의 아빠로 생각하지 않고 환자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행동 중에 조금씩 이해되는 면이 보였습니다. 가족이 스스로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하며, 씁쓸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희한하게 환자로 바라보니 남편은 본인 스스로도 답답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구나, 나아지려고 발버둥 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다툼은 줄어들었고 저의 마음은 평온을 찾았습니다.
2년 반이 지난 지금 시점에 Y선생님은 아주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변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GA모임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임에 가는 매주 토요일, 아침부터 축 쳐져 있던 모습이 줄고 모임에 빠지려고 꾀를 부리는 일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남편이 먼저 저와 대화를 시작하고 틈나는 대로 책을 읽는 모습도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모두 GA협심자 선생님들과 가족분들이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과거 사건들이 지금은 감사할 일들로 바뀌었습니다. 남편의 자살시도가 실패로 그친 일, 전세금을 다 잃었음에도 우리 가족이 살 곳이 있다는 것, 사랑하는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는 것, 무엇보다 우리 가정이 깨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모두 감사합니다.
평범했을 저의 삶이 남편의 도박으로 인해 특별해졌습니다. GA 안에서 '기다림, 배움, 이해'라는 세 가지 깨달음을 얻었고 저는 하루하루를 다시 특별하게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어느덧 남편의 단도박 기간이 3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3년 잔치에 저는 또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까요? 예전 같았으면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 두려움이었을 텐데 이제는 조금의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도박과 맞서 싸우고 있는 Y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 싸워왔고 앞으로도 잘 싸워서, 도박을 꼭 이겨내 보자고요! 다만 그 싸움이 잦아들었으니 머지않아 Y선생님의 관심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으로 바뀌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부디 느낄 수 있기 바랍니다.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흐르고,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 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께서는 Y선생님의 단도박뿐만 아니라 저와 Y선생님, 그리고 우리 가정의 회복을 계속해서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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