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과 인생

by 플로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무엇인가. 오늘 해야 할 일들, 달성해야 할 목표들, 그리고 어쩌면 나보다 앞서가는 누군가에 대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30년 전보다 훨씬 잘 살고 있다. 더 자유롭고, 더 풍요롭고,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 한국사회와 기술은 분명히 진보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행복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왜일까.



통계학에서 정규분포는 종 모양의 곡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앙에 모여 있고, 양 끝으로 갈수록 사람이 적어진다. 경제력, 사회적 지위, 성취도 모두 이런 분포를 따른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이 곡선의 오른쪽, 그러니까 상위권으로 가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벌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간다. 상위 30%에 들어가면 만족할 줄 알았는데, 막상 그곳에 도착하니 상위 10%가 보인다. 상위 10%에 들어가니 이번엔 상위 5%가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더 가파르고, 더 치열하고, 더 불안하다.
이것은 확률의 함정이다. 정규분포라는 게임의 본질은, 누군가는 반드시 중간에 있어야 하고 누군가는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상위권에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30년 전 최상위 1%만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을 생각해 보자. 해외여행, 자가용, 컬러TV, 에어컨. 지금 이것들은 중산층의 기본이 되었다. 우리 부모 세대가 꿈꿨던 삶을 우리는 이미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들보다 더 행복하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과거와 비교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와 지금의 남을 비교한다. SNS를 열면 누군가는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멋진 곳을 여행하고, 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다. 절대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상대적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낀다.
기준점은 계속 움직인다. 우리가 올라가는 만큼 비교 대상도 함께 올라간다. 이것이 진보가 행복을 보장하지 못하는 이유다.



정규분포 안에서의 경쟁은 본질적으로 제로섬에 가깝다. 내가 한 칸 올라가면 누군가는 한 칸 내려온다. 상대적 위치가 중요한 게임에서는 모두의 절대적 상승이 아무도 더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마치 영화관에서 앞사람이 일어나면 나도 일어서야 하고, 결국 모두가 서서 영화를 보게 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지쳤다. 끝없는 비교에, 멈추지 않는 경쟁에,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상위 1%에 들어가도 행복하지 않다는 사람들의 고백이 이를 증명한다. 도착점이라고 믿었던 곳이 또 다른 출발점이 되는 경험을 우리는 반복한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 정규분포의 맨 오른쪽으로 가려는 생각 자체를 버리는 것. 이것이 어쩌면 행복을 찾는 가장 쉬운 길일지도 모른다.
'생각을 버린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다.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남들과의 상대적 위치로 나를 측정하는 대신, 나만의 좌표계를 만드는 것이다. 어제의 나보다 나은 오늘의 나.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 분포 위의 점이 아닌, 나만의 궤적.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 몰입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시간. 이런 것들은 정규분포 위에 표시되지 않는다. 순위가 매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소중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확률 게임에서 벗어나 의미의 게임으로. 비교에서 벗어나 존재로. 그곳에서는 모두가 자기만의 정상에 설 수 있다. 왜냐하면 각자의 산이 다르니까.



행복은 어쩌면 도착지가 아니라 방향이다.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의 문제. 그리고 그 방향을 정하는 것은 정규분포가 아니라, 오직 나 자신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