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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미 Oct 22. 2024

어린이 상담사의 진짜 모습

아동전문 상담사가 되면 내가 만나는 모든 아이들이 기적처럼 변하고 부모들도 자신들의 잘못된 양육방식을 고치면서 가정에 평화와 기적을 가져다줄 알았다. 그런 기적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나에게 무척 고마워하면서..

지금도 가끔 이런  꿈을 가지고 나에게 어린이 상담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종종 있다.  그만큼 보기엔 뭔가 그럴듯하고 의미 있어 보이는 직업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만나는 아이들 중에 상담을 하면서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는 경우는 50%도 되지 않는다. 그건 성인 상담과 어린이 상담을 무척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상담을 오는 경우보다는 부모나 선생님의 손에 이끌러 오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자신이 뭐가 문제인지 혹은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인식이 없다. 그래서 상담이 맘에 들지 않는 경우 어마어마한 저항과 거부를 보인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의 마음문을 얼마나 빨리 열 수 있느냐가 상담의 관건이 된다.


두 번째는 아이 상담은 아이만 상담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거의 같이 해야 하기에 가족상담에 더 가깝다. 부모가 달라지지 않으면 아이의 상태는 늘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리곤 대부분의 부모들은 '상담을 받고 있는데도 달라지지 않는다'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당신들이 내가 시키는 대로  꾸준히 하고 있지 않아서 그런 거야!'


세 번째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학교에서건 가정에서건 아이들의 행동이나 심리상태가 좋아지는 건 나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아이의 문제행동이 나빠지거나 안 좋아지면 제깍 나에게 불평불만이 떨어진다. 이번주에 얘가 이랬고.. 저랬고.. 등등


마지막으로 아이가 정말 좋아지면 우린 헤어진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아이의 문제행동이 개선이 되면 부모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바이바이 이다.


처음 이런 일을 겪을 땐 참 서운하고 서러웠다. 열심히 하는데도 달라지지 않는 아이들이 나도 답답한데 부정적인 피드백만 자꾸 받으니, 내가 심리 치료사로서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배 치료사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우리 직업자체가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 어려운 직종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자신이 뭐가 문제였고 뭐가 좋아졌는지 잘 모를 때가 더 많다. 그냥 대부분은 상담시간이 노는 시간이라 여기고 좋아할 뿐이다. 그러니 '아 제가 선생님을 만나고 000 것이 달라졌어요. 이런 것이 좋아졌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그냥 아이들이 더 나빠지지 않고 혹 선생님이나 부모로부터 아무 피드백이 없으면 무척 잘하고 있는 것이라 여기라 했다. 그러기를 몇 년 지나고 나니.. 나도 많은 기대를 내려놓게 되었다.


그래서 아주 가끔 이런 편지라도 받으면 에너지가 100% 충전되고 사라질 뻔한 내 소명을 다시 붙잡게 하곤 한다. '그래 이 일을 하길 너무 잘했어'라며.. 감정조절이 힘들어서 자주 울고 떼쓰며 엄마아빠를 지치게 만들었던 소녀였다. 여리고 섬세한 기질이라 상담실에서 어떤 활동을 해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마 이런 아이의 기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이라면 느려터지고 답답한 아이로 비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다그치거나 윽박지르게 된다.


 나와의 신뢰가 좋아지기 시작하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50분 내내 쫑알쫑알 쏟아내기도 했다. 아이 상담도 하고 부모와 상담을 하면서 아이의 속도를 맞춰주고 섬세하고 내향적인 아이의 기질에 맞는 양육법을  가르쳐주자 아이는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와 한 10개월 정도 상담을  하고 몇 달 전에 상담을 마쳤다. 그리곤 방학이 되었다며 나에게 카드를 보낸 것이다.


사실 이런 감사카드나 칭찬을 받기 위해 어린이 심리치료사가 된 것은 아니다. 이런 걸 바랐다면 오히려 선생님이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내 과거를 나름 보상해 주고 있기도 하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위로를 다른 아이들에게 해주고 있는 셈이다. 홀로 우울하고 외롭고 불안하던 시절에 그때 누구 한 사람이라도 지금의 나처럼  나의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나 만들기를 함께 하며 나를 지켜봐 줬다면 덜 힘들고 덜 아팠을 테니까.  지금도 심리치료사는 열매를 거두는 농부가 아니라 씨를 뿌리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리 뿌려도 내 눈엔 척박한 흙밖에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언제 간 세월이 흐르면 내가 뿌린 씨앗이 흙을 뚫고 나오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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